불현듯 영국의 추리작가 코난 도일의 일화가 생각나누나. 그가 어느 날 부정직한 몇몇의 유명인사들에게 「탄로났다. 도망가라」는 전보를 무기명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랬더니 그 전보를 받은 사람 전부가 도망을 가버렸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럴 경우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자못 궁금하며 흥미로와 슬프다. 무슨 말을 하랴. 잇따라 터지고 있는 대형 부패와 비리사건 앞에서. 정말 어느 한 구석도 성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터진 것은 氷山의 一角이라고들 수근대는데도. 비등하는 民聲을 어느집 개 짖는 소리쯤으로 여기는가?
어쩌다 부패라는 윤활유 없이는 굴러가지 못하는 나라꼴이 되었단 말인가? 한 마디로 썩어서는 안될 계층이 썩고 있어서이다. 화려한 어항 속 싸움에 진 금붕어가 썩으면 나머지도 다 죽는다.
개가 사람을 물었다고 해서 그게 뉴스 감이 못된다. 사람이 개를 물었다면 그건 뉴스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 主權者들도 受任者를 물어 뉴스 감이 되고픈 충동이 없는 건 아님을 알리고 싶다.
썩은 다음에 방부제가 무슨 소용이랴. 뚜껑을 덮었어도 속에서는 계속 부글부글 썩는다. 그러다가 폭발한다. 때는 늦는다. 대책이라면서 후지부지 끝나는 미봉책엔 이제 신물이 난다. 어디에도 믿고 기댈 언덕이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정말 구제불능일까?
왕년에 鄭乙炳씨는 「개새끼들」이라는 소설집을 내서 베스트셀러가 된 일이 있었고 나는 지지난 해 「개판시대」라는 수필집을 냈다. 진짜 개를 소재로 한 것이 아니고 충성면에서 개만도 못한 지도층을 빗댄 것이다. 개들이 짝짓기하면 개새끼가 나오는건 너무나 당연하다. 그런데 한꺼번에 여러 마리를 낳아서 탈이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세태가 생겨서 번창하기 때문이다.
中國大陸을 내어주고 간신히 대만으로 쫓겨간 蔣介石은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뇌물받기를 좋아하는 며느리의 생일 선물로 실탄이 장전된 권총을 보내 스스로 목숨을 끊게 했던 것이다. 이 사실이 보도되자 이후 대만정부는 깨끗이 淨化됐었다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는 깡패들을 소탕해 배에 실어 바다 복판에서 폭파케 하여 깡패의 씨를 말리기도 해 유명하다. 조폭과 한패라는 우리에겐 기대 가능하지 않다.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버틀러 선장이 한 말이 생각나서 차마 蔣介石의 흉내를 권하지 못하겠구먼.
『나라가 발전할 때가 재산을 모을 찬스다. 亡할 때는 찬스가 더 많아진다』 한 나라가 아무리 부패했다 하더라도 그 나라의 초등학교 교사와 순경이 부패하지 않았다면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하는데 우린 어떠한가? 도무지 흐린 눈으론 가늠되지 않는구나.
일제 때의 일이다. 급행열차 연착으로 급행료를 환불하는 광경을 본 일본인 기관차 火夫가 「죄송하다」는 유서를 남기고는 火통에 뛰어들어 재가 된 실화가 있었다. 우리 공직사회에서 이렇게까지야 아니더라도 실날같은 「책임의식」이 있어야지 않겠는가? 「탄로났다. 도망가라」면 다 도망갈 상황인데 어쩐담.
우리는 왜 자꾸 무너지는가? 빤히 보인다. 원칙이 무너져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기둥이 무너지면 건물은 폭삭한다. 무엇이 기둥인가?
여기서 例語 하나 듣고 싶다. 지금의 日本王이 皇太子로 대학에 다니던 때의 일이라 한다. 학기 중간에 그는 영국 엘리자베스 女王의 대관식에 참석하느라 여러 날 수업을 받지 못했다. 이것이 학기말에 교수회의에서 문제가 됐다. 「殿下는 정식 학생이기도 하다. 따라서 校則을 따라 모범적인 행동을 해야한다. 그가 1년 늦게 졸업한다고 해서 무슨 마이너스가 있겠는가? 그보다는 규칙을 깸으로서 생기는 불명예스러운 마이너스쪽이 더 크지 않겠는가? 또 하나 우리가 고려해야 할 문제가 있다. 아르바이트에 쫓겨 출석일수가 모자라서 이 때문에 진급이나 졸업이 늦어지는 학생들은 이 조치를 어떻게 볼 것인가? 皇太子라는 특별한 신분과 학생이라는 신분이 兩立되지 않는다면 정식 학생이 아닌 자유로운 청강생이 되는 것이 더 바람직스러운 일이 아니겠는가?」
한 젊은 교수는 대학의 권위를 위해 이렇게 주장하고 굽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日本 皇太子는 그 해에 졸업을 하지 못하고 말았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아첨배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상상만 해도 코메디 같이 가관이 연출됐을 것이 아닐까?
19세기 통일 이탈리아를 이룩한 카브리는 젊은이들을 향해 외쳤다. 그는 일생을 독신으로 지내면서 조국 이탈리아가 내 애인 이라고 말했던 위인이다. 『조국 이탈리아가 그대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은 저 푸른 하늘밖엔 없다』고. 우리의 각분야 지도자들이시여. 헛된 약속과 구차스런 변명으로 지새지 말고 저 푸른 하늘이 제대로 보게끔 우릴 내버려 주시라구요. 제발 부탁입네다. 하늘을 가리지 말라구요.
함경도 속담에 「갓같지도 않은 것이 갓 쓰고 장터엘 가네」라는 말이 있다. 눈만 뜨면 숱한 그런 꼴불견들 때문에 혹시라도 오염될까봐 나는 서둘러 오늘 예방접종을 마쳤다니까요. 올겨울은 괜찮을테지…
- 이기진 안산신문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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