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은 좋은 얘기를 전하겠습니다. ‘사랑이 창조하는 또 하나의 세계’를 부부는 잘 만나면 백년 동안 새록새록 사랑스러운 친구지만, 잘 못 만나면 잘 안 맞는 신발처럼 발 뒤꿈치를 깎고 다리를 절게하는 괴로운 존재입니다.
우리는 주변에서는 결단에 의해 맺어진 아름다운 부부의 사랑과 함께 새로운 창조의 힘을 키우는 예를 얼마든지 볼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현대 추상 미술의 아버지로써 지금은 누구나 그 이름만 들어도 존경하는 칸딘스키 같은 화가는 살아 생전에 별로 빛도 못 보고 러시아 외에는 알려지지도 못한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칸딘스키가 그의 나이 50이 되던해. 모스크바의 조그만 화랑에서 전시회를 열게 된 일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니나’라고 하는 모스코배 대학의 2학년 여학생이 중년이 된 것입니다. 이미 결혼을 한 처지이고 별로 가진 것도 없었던 칸딘스키였습니다. 그러나 니나라고 하는 그 19살 소녀는 당돌하게 칸딘스키 부인에게 달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인, 부인께서 이혼을 하시고 바깥분을 저에게 양보하신다면 저는 그분을 세계적인 미술의 거장으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인이 원하는 위자료도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칸딘스키와 니나는 부부가 될 수 있었고, 니나의 천재를 알아보는 눈과 헌신적인 뒷바라지 덕분에 칸딘스키는 현대 미술을 여는 선구자로 우리 미술사에 남게 된 것입니다.
칸딘스키는 딸과 같은 부인의 헌신적인 사랑에 힘입어 현대 추상 미술과 현대 조형 예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며 행복하게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칸디스키가 떠난 후, 부인 니나 칸딘스키에 의해서 그의 미술은 전세계에 알려지고 미망인은 칸딘스키의 작품을 값싸게 팔지 않고 오롯하게 지키면서 얼마 전까지 스위스 레만 호숫가에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칸딘스키 부부 못지않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예술가 부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1943년 일제 말엽의 어두운 시절 당시 최고의 명문이었던 경성여자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동경여자미술학교에 진학했던 박래현이라는 부잣집 딸이 있었습니다. 그 부잣집 아가씨는 그해 ‘화장하는 여인’이라는 그림을 대형 화폭에 담아서 요즘의 국전에 해당하는 ‘선전’에 출품하고 그때의 최고상인 총독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미술계의 선배가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시골 청년이 네 차례에 걸쳐 연속적으로 특선을 한 일이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자, 박래현은 ‘동경 유학을 하고도 특선은 못해 본채, 그것도 우연히 처음으로 행운을 잡았는데 네 번씩이나 계속해서 특선을 한 천재는 누구일까요? ’하는 야릇한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녀의 호기심은 결국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는 그 30대 초반의 청년을 찾아가 만나보게까지 했습니다. 허름한 한옥에서 부시부시한 모습으로 나온 그 청년은 말을 못하는 장애인이었습니다. ‘아니, 귀도 먹고 말도 못하고,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저 불우한 청년이 어떻게 저처럼 대단한 예술의 경지를 열었을까요?’
이러한 놀라움과 경이로움과 연민이 결국 신여성 박래현을 그 청년에게 빠지게 만들었고, 부잣집 부모들의 맹열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평생의 반려자이자 예술의 동료로 만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위대한 선택과 아름다운 사랑의 결단이 운보 김기창 화백과 우향 박래현 화백의 결합이었습니다.
그 후 운보 선생은 우향 선생으로부터 말과 글을 배우게 되고, 우향은 운보로부터 한국적인 예술의 혼을 전수받게 되며, 원시적인 힘과 예술의 역동성을 전이 받습니다. 그래서 박래현 선생은 중년기에 미국 뉴욕에까지 진출하여 한국적 예술의 진수를 전달하고 판화의 세계의 빠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두사람의 꿈 같은 사랑을 시샘이라도 하듯 하늘은 박래현 선생을 먼저 데려가고 운보선생을 외롭게 남겨 두었습니다. 그후 운보는 외로움을 ‘바보 산수화’라는 새로운 예술세계로 승화시키면서 충청북도에 있는 박래현 선생의 고향에 그녀를 추모하는 거대한 미술관을 건립 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멋도 없고 삭막하지만 한 산문적인 공간입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묘약에 취하고 예술이라는 향기에 취하면 그 속에서 보다 역동적인 사랑의 대서사시를 엮어갈 수만 있다면 이 세계도 변모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보다 창조적이며 새로운 차원의 드높은 예술 세계로…
오늘도 즐거움을 만들며 찾아 보십시요!
/한성디지털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박규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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