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언 땅에서 파랗게 솟아난 보리가 봄을 부르고 있다. 아지랑이 꿈꾸는 개펄...봄은 낙조에 익고 있다. 풀과 벌레와 톤은 낮춘 바람의 소리를 들으며 파릇파릇 싹틔우는 삶의 지혜! 바야흐로 춘삼월이다. 오! 모두가 희망이로다.
새학년 새학기 교문으로 향하는 학생들의 얼굴에 너나없이 환히 새꿈이 넘실거린다. 햇빛받은 그림자도 크게 출렁댄다. 어려울수록 뭉치는 한민족의 힘 거의 절망이었던 IMF를 조기에 졸업한 민족의 저력 앞에 보릿고개 따위는 이젠 먼 전설이 됐다.
당장 우리 앞에 놓인 지상의 과업은 오로지 2002월드컵과 문화뿐이다. 호주의 유력지는 『음식과 음악에서부터 눈썹 모양 만들기와 구두 모양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화가 도쿄와 할리우드의 대중문화에 지배돼 왔던 아시아를 온통 뒤흔들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얼씨구나 좋을씨고...
외국 전문가들은 한국이 세계 일류국가의 대열에 들어갈수 있는 우수한 잠재력을 보유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높은 지적 창의력과 교육수준 문화적 감각 그리고 모험심을 가졌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엊그제 월드컵 시설물을 살피러 온 외국 기자들 중에는 『한국 여성들은 예쁜데 노란 빨간 머리가 웬일인가? 한국은 유교국가로서 경로 사상이 강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슨놈의 계단이 이다지도 많은가?』 라는 등 아픈데를 용케 골라 찌르고 있음이다. 우리가 대충 그냥그냥 지나치는 일에도 그들의 지적은 따갑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된다.
월드컵 무엇이 문제인가? 정몽준 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시설물은 오늘 경기를 치룬다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입니다만 16강에 지나치게 집착할 일이 아니라 승패보다 경기의 성패가 국민의 의식에 달렸음을 자각해 주었으면 싶습니다』라고 실토하고 있다. 그의 실토가 무엇을 말함인지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화합」이 성공의 열쇠라는 사실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이 지방선거와 대선이 맞물려 그걸 의식한 政爭의 가열현상이라 할 것이다. 국회의 꼬락서니를 보라. 그들이 진정 누구를 위해 종을 울리고 있다고 보는가? 그들을 본받아 월드컵 기간엔 파업을 않겠다던 양대노조가 덩달아 다시 들썩거리고 있지 아니한가?
정치란 문제를 줄여가는 것이 기능이요 사명이거늘 우리의 정치권은 그 정반대의 현상을 빚고 있다. 그러니까 감히 우리를 넘보지 못하게 할 방패가 없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방한성과는 과대포장된 것 아니냐는 민심이며 동계올림픽에서의 우리 선수의 불이익 감수 또한 「그러니까」와 무관하지 않다고 보아지는 것이다. 정치권의 철석같은 無政爭 선언이 절실히 요구된다. 「껍데가는 가라! 알맹이만 남아라!」 라고 외치고 싶다.
스페인이 오늘 제1의 관광국으로 부상한 것은 1982년 월드컵대회를 계기로 삼았다고 하며 프랑스는 또한 1998년 인종을 초월한 「국민통합」이라는 쾌거를 이룩했다지 않은가? 그에 비한다면 손바닥만한 우리 국토 이번 월드컵대회를 계기 삼는다면 영호남 동서 화합쯤이야 뭬 그리 어려우랴. 내친김에 민족의 숙원인 남북통일을 앞당기는 국제적 지원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기대를 어찌 품지 않으리오.
그 까닭을 열거하리다. 경기장을 만드는데만 국민의 혈세 2조원이나 쏟아 부었고 월드컵을 전후해서는 외신기자 1만2천명과 외국관광객 50여만명이 한국을 찾는다. 거기다 약 600억 인류가 TV를 통해 월드컵경기는 물론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기획물을 시청한다. 특히 세계의 유수한 기업가를 비롯 정치 문화계 인사들도 한국을 방문한다.
따라서 한국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이니 앞다퉈서 좋은 이미지를 부각시켜야 한다. 월드컵은 단군이래 최대의 행사다. 이제 90일이 남았다. 「국운융성」을 위해서라면 그 성공의 비결이 「국민화합」에 있을진대 자제할 것을 자제하면서 정직과 질서를 궤도에 올려서 생활화하자. 보리밭 사잇길로 밟혀서 더 많은 수확을 거두는 이치를 일깨우며 봄날은 오고 있다. 우리모두 가슴 열어 가득 봄을 맞이 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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