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호시절에 <생전 장례식 그리고 이혼식>이라니 가당치도 않다며 미간을 찌푸릴지 모르나 좋을 때 궂은 때를 예상하여 대비함이 인간의 지혜라 생각되어 감히 문제를 꺼내본다.
미국의 한 저명인사가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다. 그는 모진 고뇌 끝에 결단을 내렸다. 신문에 자신의 부고를 광고한 것이다. 장례날짜는 주치의와 상의해 거동할 수 없기 전으로 잡았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정작 그가 죽었다고 했을 때 올만한 사람들은 거부감 없이 참례했다. 그는 살아서는 물론이요 저승에 가서도 그리워할 이들을 만나 담소할 수 있었고 술잔을 들어 건배도 하고 남길 말들을 남겼으며 자식들에 대한 상속문제도 여러 증인들 앞에 공개했고 지인들에 대한 선물도 사인을 곁들여 전했다.(물론 부의금을 받았다.)
참으로 기발한 착상이라 하겠다. 죽은 후에 알린들 누가 왔는지 누가 슬퍼했으며 누가 술잔을 바쳤는지 알게 뭐람. 하나 덧붙일 일은 그가 정작 죽었을 땐 아주 간소하게 가족장을 치뤘다는 것이다.
죽음은 필연이며 죽음이 있어 삶은 더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가.
아무도 죽지 않을 자 없으리니 어찌 상투를 자르지 않겠다고 도망다니던 시절에 모고할 못난이로 처질 일이랴?
일본에선 심심찮게 「이혼식」이 거행되고 있단다. 결혼식은 남들을 초청해 성대히 치루면서 막상 이혼할 땐 슬그머니 꽁무니를 빼는 건 비겁하다는 이유에서란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힘든 일 중에서 으뜸이 「성질 죽이는 일」이더라고들 경험자는 말한다. 이혼도 따지고 보면 같은 맥락에서 빚어지는 일 중의 하나라 여겨진다. 『결혼전에 두 눈을 똑바로 뜨고 보았을테니 이제부턴 한 눈을 꼭 감고 지내시오』라던 간곡한 주례사가 공중분해되면서 이혼으로의 길은 트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불행할 땐 말도 많고 특히 깡그리 자기 탓이 없어지는 법이더라.
우리나라도 어느덧 이혼선진국(?)으로 진입해 2001년도 이혼이 13만5천여건 하루 평균 370쌍이 갈라서고 있다는 통계이다. 이혼사유도 옛날엔 외도 아니면 성격차가 태반이었으나 지금은 경제문제가 주류란다. OECD 30개 회원국가 중 3위를 차지하고 있다니 이 아니 놀랄 일인가? 심지어는 혼인신고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이혼하는 사례도 있다지 않는가. 그래서 主婦아닌 主夫가 늘어가고 있단다.
예로부터 「홧김에 서방질한다」는 말이 있다. 그래 홧김에 서방질했다고 치자. 얻은 소득이 무엇인가? 성질이 살아서 쫓겨날 구실을 자초했다면 이는 이미 구제불능의 작태인 것이다. 후회는 결코 앞서지 않더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은 만고의 진리인가 싶다. 집안이 편탄치 못한데 밖에 나간들 무슨 힘이 솟으랴. 왕따 당하기 십상이다.
소크라테스의 아내는 악처였다고 전한다. 진심으로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그가 한 말은 더 유명하다.『좋은 아내를 맞이한 사람은 행복을 얻을 것이요 악처를 얻은 사람은 철학자가 되리라』
4월 1일자 「아름다운 상상」란에 이화대학 주철환 교수가 기고한 <이혼할 땐 부조금 돌려주라>는 글은 가슴을 찡하게 했다. 주례는 「불찰의 책임」을 지고 신문에 공개사과문을 내라고까지 강경했다. 그러면서 그는 『부조금을 회수하려는 게 아니라 유행병 같은 이혼행진을 막아보자는 취지』라고 덧붙이고 있었다. 박수를 보낸다.
이혼식의 효용에 있어 언뜻 한가지가 짚인다. 간통죄로 배우자를 고소하려면 법률상 이혼이 전제되야 하듯이 호적상 이혼이 성립하려면 이혼식 필증이 필수 요건이라면 망설여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웃기는 망상일까?
이혼은 인생에 있어 큰 상처이다. 상처난 조개에 진주가 잉태하는 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설혹 재혼에 성공했다고 해도 그 상처는 성형이 되지 않는다는구먼. 어쩌다가 오랜 우리의 미풍양속에서 이런 게 문제로 불거지는 지경에 이르렀는가?
-이기진 안산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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