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근원 비봉초등학교 교장

동상 주변엔 대왕을 기리는 기념관과 측우기, 해시계, 혼천의 등이 전시되어 곁에 다가가기만 해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듯하다. 그 어느 해보다도 가슴에 더 와 닿는 한글날이다.

한글은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어 세계 속에서도 당당하게 인정받는 훌륭한 글자임이 증명되었다. 더욱이 지난여름엔 인도네시아의 소수민족인 찌아찌아족이 그들의 언어를 표기하는 문자로 한글을 채택하고, 초등학교에서 한글로 표기된 교과서로 찌아찌아어 교육을 펼치고 있어 한글이 더욱더 자랑스럽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세종대왕에 대한 고마움이 올 한글날엔 더욱더 유별나다. 찌아찌아족은 독자적 언어를 갖고 있지만, 이를 표기할 문자가 없었다. 이에 훈민정음학회 관계자들의 적극적인 노력과 지원으로 찌아찌아어를 표기할 공식 문자로 한글이 채택된 것이다.

한글의 해외 전파는 우리나라가 세계 속의 한국, 한국어가 세계어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주춧돌을 세운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2004년도에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誌는 앞으로 100년 내에 인류 언어의 90%는 새로운 통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소멸하며, 세계는 11개의 지배적 언어로 종속될 것이라는 충격적 보도를 실은 적이 있었다.

우리 한글이 11개의 지배적 언어가 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우리 주변에서부터 한글을 더욱 다듬고, 한글 사랑의 정신을 몸에 배게 해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가가 밀집된 거리를 걷다보면, 국적불명의 간판들이 우리 안산에도 홍수처럼 넘쳐나고 있어 어지럽다.

아파트의 이름도 타워 팰리스(Tower Palaces：귀족의 성), 상떼빌(Santevill：건강한 마을), 자이(eXtra Intelligent의 약자：특별한 지성), 래미안(來美安 : 미래가 아름답고 편안함) 등 외국어가 판을 치고 있다. 어디 이뿐이랴. Hi Seoul, Colorful Daegu, Bravo Ansan 등 지자제도 앞다투어 모두 영어표어를 제정, 자랑스럽게 홍보하고 있다.

아직까지도 외국 문화가 더 우수하며 세련됐다고 느끼는 일부 사람들의 그릇된 인식 때문이라 할 수 있다.
한글학회에서는 우리말에 대한 무관심과 외국말에만 익숙해지면, 한국문화는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또한 한글이 청소년들에게 이상스레 변조되어 신조어나 이모티콘 등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우리만의 문자인 한글이 정체성을 잃게 될 것이라고 주의보를 낸 지도 이미 오래 전 일이다. 그러나 누구 하나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정치인이 없다.

그저 한글날이 다가오면, 연례행사처럼 목소리나 높이다가 구렁이 담 넘어가듯 사라질 뿐이다.  우리가 사는 안산에도 거리명이 고유한글어로 표기되어 있어 정다운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 정다운 느낌은 거리를 걷다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갓바치로, 너비울길, 사태말길, 거미울길, 다리간로, 마조금길, 삼태기길, 음태기길, 석삼말로길…. 남녀노소 모두에게 정감이 가고, 쉽게 이해가 가는 길 이름으론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이 든다.

화랑유원지와 호수공원에도 세종대왕 동상을 조성했으면 한다. 해서 한글날만 아니라 휴일에도 세종대왕 동상 주변에서 즐겨 글을 짓는 사람들이 넘치도록 유도해야 할 것이다.

언어는 단순히 의사소통만을 위한 수단이 아니며 민족의 정체성이 담겨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563돌을 맞는 한글날을 통해 우리 문자가 우리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윤택하게 만든다는 것을 깊이 느끼며 더욱더 사랑해야 할 것이다.

류근원 아동문학 작가  kwro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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