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근원 아동문학작가

이처럼 빼빼로데이가 초대박을 터뜨리게 된 이유를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와는 달리, 그 대상이 이성 친구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누구에게나 감사와 애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라고 업계는 설명하고 있다. 더욱이 최근 몇 년간 11월 11일이 대입 수능시험일을 며칠 앞둔 시기여서 수험생 선물 특수도 가세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11월 11일 훨씬 전, 고학년 아이들에게 11월 11일에 관한 설문지를 돌렸더니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빼빼로데이였다.

방송조회를 통해 ‘11월 11일은 빼빼로데이 이전에 여러분들의 부모님이 논밭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가꾼 그 수확의 기쁨을 축하하기 위해 만든 농업인의 날입니다.’ 라며 나름대로 많은 설명을 곁들였다. 실제로 부모들이 농사와 직접 부대끼며 살고 있는 환경이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내심 기대가 되었다.

그 날 출근길, 눈에 뜨이는 등굣길마다 초․중․고교 학생들의 손에 들려져 있는 선물다발, 그리고 내 직장 시골아이들의 손에도 들려져 있는 빼빼로. 꼬맹이들이 히죽히죽 웃으며 내미는 빼빼로를 받자니 그렇고 안 받자니 더더욱 난감해 받아들며 쓴웃음을 짓고 말았다.

우리는 1월부터 12월까지 좋든 싫든 매달 한 번씩 사이비 기념일과 부딪치며 살아간다. 似而非의 사전적 의미는 ‘겉으로는 그것과 같아 보이나 실제로는 전혀 다르거나 아닌 것을 이르는 말’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는 말이다.

사이비 기념일을 설명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알고 넘어가야 할 것이 데이 마케팅(Day Marketing)이다. 업체들마다 상품의 이미지에 맞는 톡톡 튀는 이벤트를 붙여 판매촉진을 활성화하는 마케팅 기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그 기법 중 어느 특정 날짜에 그 상품을 연관시켜 상품을 찾게 하는 기법이 데이 마케팅이다. 그 날짜에 맞는 상품이 정착되기만 하면, 대단히 큰 효과를 얻을 수 있기에 업체들은 데이 마케팅에 혈안이 되고 있다. 그로 인해 나온 것이 10대 청소년들을 주요 고객으로 삼아 나온 사이비 기념일이라 할 수 있다.

매월 14일은 10대들이 주도하는 기념일이라고 해서 흔히 포틴데이(fourteen day)라 부른다. 기존부터 전해지던 발렌타인데이(2월 14일)를 본뜬 것으로 1990년대 말부터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1월 14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찬 한해를 보내라는 뜻으로 한 해 동안 쓸 다이어리를 선물하는 다이어리데이를 시작으로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블랙데이, 와인데이 등등을 거쳐 빼빼로데이, 그리고 마지막 12월 14일 연인들끼리 서로 껴안는 날인 허그데이까지 수많은 사이비 기념일이 10대 청소년들을 가슴을 멍들게 하고 있다.

어디 이뿐이랴, 청소년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찜질방데이, 인삼데이, 삼겹살데이, 애플데이, 사과데이 등등 이루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사이비 기념일이 많음에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이다.

모 리서치센타에서 최근 대학생 1219명을 대상으로 빼빼로데이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71.9%가 ‘상술이 만들어낸 기념일’이라고 응답했다. 그러면서도 많은 대학생이 ‘올해 빼빼로데이를 위한 선물계획은 있다(66.3%)’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제과업체들의 기막힌 상술에 우리 모두가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다.

잘 아는 단위농협 조합장의 오래전에 들었던 한숨소리가 가슴 속에 지워지지 않고 있다. 쌀 소비가 자꾸만 줄어들어 내 고장에서 농사지은 쌀까지도 세일해서 팔고 있다고 한다. 올해도 농업인들의 수심이 깊어지고 있다. 빼빼로데이보다는 가래떡데이 혹은 젓가락데이로 전환하자는 연례 행사성 구호로는 근본적으로 바꿀 수가 없다. 늦었지만 사이비 기념일을 우리 정서에 맞게 바꾸는 노력을 일관성 있게 해야 한다. 바꿀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하고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꾸준하게 교육을 해야 한다. 가정은 가정에서, 사회는 사회에서, 학교는 학교에서 꾸준히 문제점을 제시하고 그 대안을 교육해야 한다. 그 길만이 사이비 기념일의 이상스런 진화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사이비 기념일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못한 자화상이 겨울을 재촉하는 빗줄기 사이로 자꾸만 나타나 부끄럽기 그지없다.

류근원 아동문학 작가  kwroo@hanmi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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