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식 변호사

이혼에 관한 입법주의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있고, 유책주의는 상대방에게 혼인파탄의 책임이 있고 재판상 이혼을 구하는 원고에게 책임이 없을 경우에만 재판상 이혼을 인정하는 입법형태이고, 파탄주의는 혼인이 파탄되었다면 그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 지를 불문하고 재판상 이혼을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쉽게 설명하자면 예를 들어 혼인 생활이 부부 일방에 의해 파탄된 경우를 가정해 볼 때, 파탄의 책임이 없는 자의 재판상 이혼청구만 인정되는 것이 '유책주의'이고, 혼인생활의 파탄사실만 있다면 원고가 누구인지 문제될 것 없는 것이 '파탄주의'이다.

우리 민법은 제840조에서 1호부터 6호까지 재판상 이혼사유를 규정하고 있고, 대법원은 그동안 원칙적으로 유책주의에 입각하여 판단해 왔다. 따라서 예를 들어 남편의 외도와 폭력으로 혼인생활이 파탄되었는데, 이혼을 거부하는 아내 때문에 남편이 재판상 이혼소송을 제기한 경우라면, 유책주의에 따라 남편의 이혼청구는 기각되어 왔었다.

대법원은 다만 상대방도 파탄 이후 혼인을 계속할 의사가 없음이 객관적으로 명백한데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아니하고 있을 뿐이라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예외적으로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를 인용하였다(대법원 1999. 10. 8. 선고 99므1213 판결 참조). 대법원이 유책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혼인의 파탄을 자초한 자에게 재판상 이혼청구권을 인정하는 것 자체가 도덕성에 반하기도 하거니와 배우자 일방의 의사에 의한 이혼 내지는 축출이혼이 인정되는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판결의 의미는 무엇인가? 뉴스에서 보도된 사실관계를 보면, 갑은 90년 을과 혼인하고 두 자녀를 두고 살아왔지만 을의 잦은 음주와 외박을 견디지 못해 97년 가출하였고 2003년 잠시 돌아왔다가 한 달만에 다시 가출하였다가 2007년 다른 사람을 만나 한 아이를 두었다.

갑은 다른 사람 사이의 아이 치료를 위해 가족관계등록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이에 이혼소송을 제기하였다. 대법원은 '피고 사이의 혼인의 실체가 장기간의 별거 등으로 완전히 해소되었고, 파탄에는 원고의 책임과 더불어 피고의 책임이 경합된다는 것'을 인정한 뒤, '부부공동생활 관계의 해소상태가 장기화되어 원고의 유책성도 세월의 경과에 따라 상당정도 약화되고, 현 상황에 이르러 혼인 파탄에 이르게 된 데 대한 책임의 경중을 엄밀히 따지는 것의 법적, 사회적 의의도 현저히 감쇄'되었으며 '원고의 유책성이 반드시 원고의 이혼청구를 배척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중한 것으로 단정할 수 없다'며 원고의 청구를 인용하였다.

이번 판결의 의미에 대해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유책 배우자의 이혼소송이 쉽게 인정될 수 있게 된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대법원 판결은  혼인 파탄 후 상당한 기간이 경과하여 혼인의 실체가 해소되고 이제 와서 부부공동생활로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상대방이 이혼할 의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오기나 보복적 감정에서 이혼에 응하지 않는다는 객관적인 사정이 없더라도, 유책배우자의 이혼 청구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것으로 종전 '예외적인 유책배우자의 이혼청구 인용조건'을 다소 완화한 것으로 보인다.

문성식 변호사  moon2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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