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성식 변호사

그런데 만약 힘겹게 집을 마련해서 처음으로 등기부에 자신의 이름이 등재되는 감격을 맛본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자신이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 이름으로 ‘내 집'에 가처분이 되었다면, 새 집 주인이 겪게 되는 황당함이나 당혹감은 상당할 것이다.

예를 들어 갑은 사업하면서 A라는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게 되었는데, 갑의 부인을은 갑의 A은행에 대한 대출금 채무에 대해 연대보증계약을 체결하였다. 그런데 갑이 하던 사업은 갑작스런 경제 한파로 힘들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갑은 3번이나 대출금 이자를 납부하지 못해 A은행으로부터 채권 추심을 받을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을은 자신의 명의로 되어 있던 아파트를 병에게 매도하였다.

위 사안에서 A은행은 갑의 이자연체를 이유로 대출금 전액 상환을 요구할 것이고 갑의 보증인인 을에게도 이와 같은 청구를 할 것이다. 또한 A은행은 을 명의의 아파트가 그 사이 병으로 이전된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이런 경우 통상 A 은행은 병을 상대로 ‘을과 병 사이의 매매계약을 취소한다'라는 민법 제406조의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제기할 것이고, 동시에 병 명의의 아파트에 가처분이라는 보전조치를 취할 것이다.

병은 대출금을 상환할 것도 없고 공인중개사를 통해 정상적으로 아파트를 매수한 것인데 갑작스러운 A은행의 가처분이나 소송제기로 상당한 혼란에 빠질 수 있다. 또한 병은 A은행의 채권 추심이 곤란하도록 을과 공모하여 재산을 은닉한 것처럼 취급당한 것 같아 몹시 불쾌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해행위 취소 소송은 우리 법이 인정하고 있는 제도이고, 위 사안에서 A 은행은 대출 채권자로서 응당 채권 추심을 위해 취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한 것이므로, 병은 차분히 소송에 대응하면 된다.

위 사안처럼 을이 이미 채무초과상태에서 재산을 처분하였다면, 사해행위 취소소송에서 병의 악의(채권자를 해할 의사)는 일응 추정받기 때문에, 병은 ‘선의'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병은 아파트 매매이전에는 을을 전혀 알지 못하였고, 공인중개사를 통해 정상적으로 매수하였으며, 아파트 매매가도 정상적이고, 을에게 매매대금을 정상적으로 지급한 사실 등을 입증해야 한다.

혹시나 있을 사해행위 취소소송을 대비한다고 부동산 매도인의 경제사정 등을 상세히 알아본 후 매매계약을 체결한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매매대금은 현금 지급이 아닌 계좌이체와 같은 방법이 좋으며, 은행 대출금으로 고생하던 지인이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부동산 매수를 제안한다면, 더욱더 꼼꼼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문성식 변호사  moon2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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