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발을 감싸는 구두 중에 사람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구두 생산에 기계화가 이뤄졌다고 하지만 발이 편안한 구두일수록 사람의 손길을 많이 거친 제품이다.

평생을 구두를 만들며 장인의 길을 걸어온 우순구(64세 고잔동 거주)씨의 손은 그래서 상처 투성이다. 경북 봉화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서울로 상경 해 구두 만드는 일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14살에 시작했으니 어느 듯 반 백년이 흘렀다.

△ 50년 동안 구두만 만들어 온 우순구씨. 거친 작업에 손도 따라 거칠어 졌지만 신발이 편안해야 건강하다는 그의 철학은 변함이 없다.

“남들은 그냥 밥벌이 일로 생각했는지 몰라두 나는 이 일이 재밌어요. 신발이라는게 얼마나 중요한지 사람들은 잘 몰라요. 특히 여성들의 하이힐은 아름답기도 하지만 잘 못 만들면 무릎관절, 허리, 목 뼈까지 이어져 큰 부상을 입히기도 하니 잘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구두 만드는 일이 재미있었다는 우순구씨는 이 분야 특허도 여럿 보유하고 있다. 그 중 가장 눈에 띄는 기술이 바로 자개를 이용한 구두다.

금조개의 껍데기를 잘라 장롱을 장식할 때 사용한 자개는 화려한 색깔로 여성들의 사랑을 받아온 소품이다. 그러나 이 자재를 이용해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한 차례 가공기술을 거쳐야 한다.

우씨는 쉽게 부서지는 자개를 화학약품을 이용해 유연성을 높이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 출원했다. 구부려도 부서지지 않는 자개를 만들어 구두와 가방 등의 장식품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이렇게 탄생한 자개구두는 대번에 패션 디자이너들의 눈길을 매혹시켰다.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자신의 패션쇼 마다 내 구두를 주문한다. 덕분에 나는 유럽을 가 보지 못했지만 내가 만든 구두는 유럽 각국의 패션쇼장을 다 누비고 다녔다”며 껄껄 웃는다.

△ 우순구씨가 개발해서 만든 자개로 장식한 부츠. 자개의 화려한 색감은 디자이너들을 매혹시켜 패션쇼 무대에 단골로 등장한다.

자개 구두 뿐만 아니라 그가 가진 특허가 2개, 실용신안이 5개다. 구두를 만들다 보면 ‘좀 더 편안한 신발 좀 더 멋진 신발을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 고민하던 것이 기술개발로 이어졌다. 특히 그가 만든 장애우들을 위한 신발은 편하기로 유명해 그의 신발만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우순구씨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이디어도 억지로 막는다. 왜냐면 힘들게 기술 개발을 해도 수익과 연결되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는 정말 개발은 안 해야 몇 번은 마음을 먹었는데 어느 날 보면 또 새로운 기술을 그리고 있다”는 우순구씨는 어쩔 수 없는 구두 기술자다.

그도 그럴 것이 구두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그만큼 잘 아는 사람도 드물다. 국내 유일한 구두 명장인 김영만씨에게서 기술을 배운 그는 구두 기술로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장인이다. 지난해 김명장의 추천으로 명장에 도전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구두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신발을 만드는 과정 뿐만 아니라 가죽을 다루는 방법, 쇠(주물)을 다루는 법, 신발 틀을 만드는 법까지 죄 다 익혀야 한다.

“지금에야 대학에도 구두학과가 생겼지만 예전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다 귀 동냥으로 어깨 너머로 배워야 했죠. 그래도 진짜 기술은 엄청난 수업료를 내고 배워야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돈 주고 배우라고 가르치려 해도 험한 일이라며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1990년대 나이키 생산 공장에 기술전수를 한 후 그 비용으로 받은 지금의 고잔동 집이 그가 안산에 정착하는 계기가 됐다. 비록 그가 운영하는 공장은 서울 성수동에 있지만 마음 속 작은 소망은 안산에서 공장을 운영하는 것이다.

“특히 안산에는 산재를 입은 장애우들이 많아 그들을 위한 신발전문 매장을 겸한 공장을 마련하고 싶은데 마음처럼 쉽지 않다”는 우순구씨. 인터뷰 중에도 고심중인 구두굽을 그려 보이며 의견을 구하는 그는 진정한 구두의 달인이었다.

하혜경 기자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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