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리랑 TV보며 코리안 드림 키운 소년
라지브는 네팔 수도 카투만두 근처 샹쟈출신이다. 북인도계 타라이족인 라지브의 가족은 할아버지가 ‘브라멘’으로 네팔의 상류층이다. “어릴 때 케이블방송을 통해 아리랑 TV를 보고 자랐다. 한국의 드라마 다큐멘터리, 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 한국이라는 나라에 꼭 가보고 싶었다”는 라지브.

라지브는 2008년 처음 한국을 방문했다. 2주 동안 서울에서 부산까지 기차여행도 하고 도시부터 농촌까지 구석구석 돌아다니며 한국에 대해 공부했다.

“한국이 TV로 보던 것과는 많이 달랐어요. TV속의 한국인들은 다들 상냥하고 친절했던데 간혹 그렇치 않은 사람도 있었고 김치맛도 상상하던 것과 달랐다”는 라지브. 그래도 그는 한국이 좋았다. 특히 농촌에서 80세가 넘은 할머니가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한국이 어떻게 잘 사는 나라가 됐을까?’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50살만 넘어도 일 안해요. 특히 여자는 집안 일만 하지 밖에서 일하지 않는데 80세가 넘은 할머니가 일하시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라는 라지브.

한국관광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한국 유학을 준비했다. 영국에서 유학중인 여동생과는 달리 말이 통하지 않는 한국을 선택한 것은 농촌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 때문이었다.

 

■ 네팔 노동자의 친구 ‘라지브’
라지브는 한국 유학을 결심하고 한국어 학원에 등록 본격적으로 한국어를 공부했다. 이미 네팔에는 한국 취업을 위한 한국어 학원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이미 방송을 통해 한국어가 귀에 익숙했던 라지브의 한국어 실력은 남들보다 빨리 늘었다.

경기과학기술대학에 진학 한 후 네팔 노동자 친구들은 통역이 필요할 때면 자연스럽게 라지브를 불렀다.

“제가 학생이니까 시간이 많아요. 낮에도 시간을 낼 수 있어서 친구가 병원을 갈 때나 사업장에서 다쳤을 땐 통역을 해 달라고 전화가 와요. 그러면 가서 통역을 해요. 덕분에 한국 말이 빨리 늘 수 있었다”고 한다.

노동자 친구들을 돕다보니 안타까운 일도 많이 경험했다. 일하다 다친 사람도 많고 얼마 전엔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었다.

“네팔에서 온 지 얼마 안 된 친구였어요. 알루미늄 샤시 공장에서 일했는데 포크레인이 옮기던 물건이 머리위에 떨어져서 죽었어요. 바로 전날 만나서 ‘통역이 필요하면 너를 부를께’했는데 다음날 사고가 났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네팔 대사관에도 연락하고 사고 수습을 도와 며칠 전 시신을 네팔로 보냈다”며 담담히 말을 이어가던 그는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래도 네팔엔 한국에 오고 싶어 한국어 학원을 다니는 사람이 7만명이 넘는다. 그 중에 시험을 쳐서 5천명만 한국에 올 수 있다. 우리나라엔 일 할 공장도 없고 일자리도 없어서 한국으로 올 수 밖에 없다”며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 라지브에게 네팔의 미래를 묻다
한국생활 2년 만에 라지브는 네팔 이주민 공동체의 중심에 섰다. 네팔 전통악기 연주자들을 모아 공연팀도 꾸리고 네팔인의 날 행사도 준비 중이다.

“네팔에는 다양한 민족이 살고 있어요. 아마 30개도 넘을 걸요. 각 민족마다 기념일도 다르고 축제일도 달라서 일년 중 절반이 쉬는 날”이란다. 그런 네팔에 라지브는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 싶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는 나라. 예절이 몸에 익숙한 나라가 라지브가 본 한국이다.

라지브는 한국 문화를 네팔에 소개하기 위해 한국어 교육책 ‘한국어를 배웁시다’를 직접 지었고 한국 동화책 두 권을 네팔어로 번역해 출판했다.

“아직은 시작이에요. 한국의 더 좋은 책을 네팔에 소개하고 싶지만 번역하는 것도 쉽지 않아서 조금씩 해나가야죠”라는 라지브.

전공을 e비지니스에서 사회복지학으로 바꾼 것도 어떻게 하면 네팔을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공부를 다 하면 네팔로 돌아갈 거에요. 잘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네팔을 한국처럼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드는 것이 제 꿈이에요”라는 라지브. 그의 미래가 기대된다.

하혜경 기자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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