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사체험을 하고 있는 어린이들. 환자 인형으로 위암 제거 수술을 진행 중이다.

“이제 환자의 배를 갈라야 하는 시간입니다. 세균에 감염되지 않도록 소독약으로 주변을 깨끗이 닦은 다음 칼을 들고 잘라보세요”

의사선생님의 말에 아이들의 눈에 긴장감이 감돈다. 물론 체험을 위해 만들어진 마네킹이지만 체험학습에 참가한 아이들 눈에는 ‘우리 몸 속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는 궁금함과 두려움이 교차한다.

일일의사 체험학습에 참가한 6명의 어린이들이 해야 하는 수술은 위암에 걸린 40세 여자의 배를 열어 암덩어리를 제거하는 것이다. 수술에 앞서 환자브리핑과 위 내시경 검사를 통해 위속에 암덩어리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 위 내시경 검사를 진행 중인 어린이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환자의 몸 상태는 예상보다 심각했다. 간과 장에서도 암세포가 발견됐기 때문이다. 수술을 집도한 어린이들은 침착하게 암세포를 제거해 나갔다. 하지만 암세포를 거의 다 제거할 무렵 비상사태가 발생했다. 출혈로 인해 환자의 혈압과 떨어진 것.

아이들은 직접 석션(흡입기구)을 이용해 피를 뽑아내는 등 응급처리를 진행한 후 위를 잘라 마지막 암세포를 제거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절개한 위를 한 땀 한 땀 봉합하고 배를 닫는 것 까지 수술 전 과정을 마치자 아이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찾아왔다.

흔치 않은 어린이 의사체험을 진행한 곳은 선부동의 한 내과병원. 이 병원 원장선생님과 직원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일주일에 두 번 점심시간을 이용해 어린이 의사체험학습을 진행 중이다. 올 여름방학에 처음으로 시작된 체험학습에 50여명의 어린이들이 참가했고 의사체험을 진행한 어린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

병원에서는 체험 학습 준비를 위해 어린이용 의사가운과 수술가운을 준비하고 마네킹과 의료교구를 이용해 환자 인형도 만들었다.

체험학습은 히포크라테스 선서부터 시작한다. 이어 환자설명, 위내시경 검사, 위암 수술, 약 조제까지 의사 업무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체험학습을 끝낸 어린이들에게는 의사자격증과 책, 선물 한보따리가 안겨졌다. 체험도 하고 원장님 선물까지 받은 아이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폈다.

“아이들이 자라서 의사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체험학습을 하는 건 아니다. ‘내 이웃의 누군가가 아무 조건 없이 가진 것을 나누려 한다’는 것을 아이들이 느꼈으면 좋겠다. 세상이 참 무섭게 변해간다. 이 세상을 한탄하고 비판해 봐야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그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세상을 물려주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작했다”는 A병원 J원장.

A병원은 선부동 인근 10개 초등학교에 매달 책도 선물하고 있다. 책을 통해 꿈을 키우길 바라는 마음. 자신이 받은 것을 지역사회와 나누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해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가는 중이다.

“작은 선행이 큰 기쁨이 되어 돌아오는 경험을 한다. 책을 선물 받은 어린이들이 나를 격려해 준다. 그들의 격려가 큰 힘이 된다. 방학을 이용한 의사체험활동도 아이들에게 뭔가 더 줄 것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시작한 일이다. 아이들이 좋은 추억을 간직하길 바란다”는 J원장. 그가 뿌린 씨앗이 언젠가 태양을 닮은 꽃을 달고 세상을 따뜻하게 할 것이다.

<병원이름과 원장님 성함은 원장님의 요청에 따라 밝히지 않습니다>

하혜경 기자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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