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끊임없는 만남의 연속이다.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는 결국 누구를 만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과 다르지 않다. 어떤 이는 단 한 번의 만남을 평생 움켜잡고 살아간다. 운명 같은 만남을 통해 평생 자신의 삶을 담금질하길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가 바로 조선시대 황상이란 인물이다.

이 책은  다산 정약용과 그의 가르침을 따라 평생을 산 황상이 만들어가는 도탑고 신실한 사제 간의 정리(情理)가 커다란 울림으로 되살아난다. 이 책의 저자인 정민 교수는  10여 년 동안 정약용과 황상에 대한 자료가 있는 곳이라면 그 어느 곳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다녔다. 다산의 '삼근계'라는 글에서 받은 감동이 방대한 자료 조사와 문헌 연구로 이어져, 우리에겐 생소한 황상과 스승 다산이 나눈 아름다운 인연을 군더더기 없이 정제된 문장들로 복원해냈다. 저자는 그 술회를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글이 가슴을 쳤다. 다산과 황상의 아름다운 만남을 정리하는 일은 내 몫일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어찌하겠는가. 청하지도 않았는데 그가 내 안으로 걸어 들어와 버린 것을. 더벅머리 소년이 스승이 내린 짧은 글 한 편에 고무되어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가는 과정은 한 편의 대하드라마다."

황상은 열다섯 살 때 정약용을 만났다.  다산이 강진 유배시절 만났던 수많은 제자중의 한 사람이다. 다산의 많은 제자 가운데 부지런하게 공부하라는 스승의 가르침을 평생 실천한 이는 황상밖에 없었다. 스승이 적어준 '삼근계(三勤戒)'를 종이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지니고 살면서 75세가 넘도록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그건 평생의 가르침이었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 황상이 우직하게 걸어온 길은 출세가 아니었다. 다산은 어지러운 세상을 피해 조용한 곳에서 공부하며 사는 ‘유인(幽人)’의 삶을 일렀다. 제자는 산속에 거처를 마련해 농사를 지으며 책을 놓지 않았다. 다산의 회혼례를 맞아 18년 만에 상경하여 쇠약해진 다산을 만나는 장면은 이 책의 정점을 이룬다. 말년에는 ‘일속산방(一粟山房, 좁쌀 한 톨만 한 작은 집)’을 지어 오직 공부에만 전념했다. 

70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승의 묘를 찾아  천릿길을 여러 차례 다녀갔다는 황상의 우직한 마음은 그의 글에서도 질박함이 묻어난다. 황상은 60년 전 스승과의 첫 만남을 떠올리며 자신의 삶을 술회한 <임술기>를 지었다.

“내 스승이신 다산 선생님께서는 이곳 강진에 귀양 오셔서 스무 해를 계셨네. 그 긴 세월에 날마다 저술에만 몰두하시느라 바닥에 닿은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났지. 열다섯 살 난 내게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삼근(三勤)의 가르침을 내려주시면서 늘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네. “나도 부지런히 노력해서 이를 얻었느니라. 너도 이렇게 하거라.” 몸으로 가르치시고 말씀으로 이르시던 그 가르침이 6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어제 일처럼 눈에 또렷하고 귓가에 쟁쟁하다네. 관 뚜껑을 덮기 전에야 어찌 그 지성스럽고 뼈에 사무치는 가르침을 저버릴 수 있겠는가.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그날로 나는 죽은 목숨일세. ”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저자는 어떤 만남은 운명이며 '맛남'이라고 했다. 황상이란 인물을 통해 누구를, 무엇을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목표와 지향점이 달라진다는 것을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하고 노력하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이렇듯 인생의 변화는 만남을 통해 시작되기도 한다. 2012년은 다산 정약용이 태어난 지 꼭 250년이 되는 해다.  다산과 같은 스승과의 만남을 꿈꾸어도 좋겠다. 그 만남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바꾸어줄 운명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소중한 인연과 만남을 위해 먼저 부단히 준비하고 가꾸어갈 수 있어야 하리라.

안산시근로자종합복지관 도서실 사서 김은희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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