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원 중소기업연수원 연수기획처장

하지만 언젠가부터 대기업들이 이룬 성과가 고용, 민간소비 등으로 순환하지 않고 그 기업만의 잔치로 끝나버리고 있다. 기업들은 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지만 다른 한쪽에선 청년실업률 8%대로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이처럼 우리나라 경제가 ‘고용 없는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등 국가 경제는 성장해도 고용은 늘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산업구조 고도화에 따른 공장설비의 자동화, 국내 기업들의 해외 이전, 취업 유발효과가 높은 서비스업의 성장 정체 등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청년층을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한데 구직자는 넘치다 보니 스펙 인플레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세대별 노동조합인 ‘청년유니온’이 대학졸업자 35명의 이력서를 기준으로 취업 스펙을 쌓는데 투입된 비용을 조사한 결과 1인당 평균 4,269만원으로 분석되었다. 여기에는 기업들이 채용심사에 공통적으로 활용하는 학력, 어학, 자격증, 해외연수 등 기본적인 이력서를 만드는 데 소요되는 제반 비용을 망라한 것이다.

조건이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서인 경우도 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보니 이런 학력 인플레이션이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다. 구직자 대다수가 연봉이 높은 대기업, 안정적인 공공기관에 입사하기 위해 스펙 쌓기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중소기업은 청년층의 취업기피 등으로 만성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다.

최근 경기개발연구원이 발표한 “한국의 고용 현황과 일자리 미스매치” 자료에 따르면 약 40만개에 이르는 일자리가 미스매치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고 분석했는데, 이는 전체 실업자의 47.3%에 이르는 규모이다. 정보부족, 임금·근로 조건 등 보상 불일치에 따른 마찰적 미스매치가 가장 큰 요인으로 조사되었다.

많은 구직자들이 보다 나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스펙을 쌓아가고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재수, 삼수도 마다하지 않지만, 점점 치열해지고 좁아지는 취업관문을 뚫기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대학가에 불고 있는 스펙 쌓기 열풍이나 심각한 일자리 미스매치는 결국 현재의 고착화된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더 큰 위협과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고용시장의 수급 불균형 해소를 위해 고용창출기업 지원, 취약계층 고용기회 확대 등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무엇보다 구직자 스스로 스펙 경쟁을 지양하고 자신의 능력과 열정을 제대로 쏟을 수 있는 직장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실제로, 대학을 졸업해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대졸자가 속출하면서 2008년 대학진학률이 83.8%로 정점을 기록한 후 떨어지고 있는 등 ‘고용 없는 성장’은 청년층 스스로 “고학력이 취업으로 연결된다”는 일반적인 공식이 깨졌음을 인식하게 하고 있으며, 채용시장에서 취업 눈높이를 낮춰 현실과 타협하는 구직자들도 늘어나고 있다.

최근 대기업 및 금융기관, 공공기관 등을 중심으로 고졸 채용이 확산되고 있고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특성화고 취업률이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개선과 맞물려 50%에 육박하는 것은 이러한 산업구조 하에서 구직자의 고용인식을 빠르게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볼 수 있다.

산업계에 불고 있는 고졸인재 채용이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인력난을 완화하고 만연한 학력 인플레이션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향임은 분명하지만, 무엇보다 이력서에 나열된 스펙 같은 간판보다 실무능력을 중시하는 고졸에 대한 사회적 인식변화와 고졸인재에 대한 중소기업의 처우 개선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제는 중소기업 스스로 청년층 구직자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와 일할 수 있는 기업환경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회사의 성장가능성과 조직문화 등 강점을 적극 알려 우수인재를 영입하려는 노력과 함께, 힘든 환경 속에서 소기의 성과를 올린 근로자에게는 적절히 보상하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지난해 중소기업계가 이미지 개선을 위해 시행했던 `3권 3불 운동’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것은 상당히 고무적인 일이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제공하는 것 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은 우수기업 정보를 적기에 제공하여 구직자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노력도 반드시 필요하다.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대기업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일하기 좋은 으뜸기업 500곳”을 발굴하여 구직자의 취업을 지원하는 활동은 정보부족으로 애로를 겪는 청년층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업의 이익이 신규 일자리 투자로 연결되고 고용 안정은 민간소비로 이어져 다시 기업에게로 이익이 돌아가는 경제의 선순환을 이루기 위해, 우수인재에 대한 기업의 적극적 투자, 간판보다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청년층의 구직활동 등 이해관계자들의 이해와 도전이 “고용 없는 성장” 시대에 우리가 다 같이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이다.

Tip  3권 3불‘이란 인재채용, 환경개선, 혁신경영 등 3가지는 권장하고 임금체불, 인권침해, 조세누락 등 3가지는 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중소기업계 자정운동이다.

김진원 중소기업연수원 김진원 연수기획처장  webmaster@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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