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희 목사 (안산대학교 교목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는 Well-being(웰빙)이라는 단어를 시대적 언어인 것처럼 사용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Healing(힐링)이라는 단어가 그 자리를 이어받고 있다. 그만큼 우리는 치유가 절실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류 역사를 살펴 볼 때 만인이 행복한 시대가 과연 존재했던가? 인간은 시대마다 개인마다 형태와 무게는 다르지만 각각 자기에게 주어진 십자가를 지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힐링이 필요치 않은 시대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처럼 힐링이라는 단어가 대중적 화두가 된 적은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시대상황이 그 시대의 언어(단어)를 생성하기도 하지만 한 언어(단어)가 그 시대의 사회, 문화를 규정해버리기도 한다. 힐링이라는 말이 회자되면서 우리사회는 치유 되어야 할 환자들로 넘쳐나고 있다. 자신을 상처 입은 피해자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실 수많은 관계 속에서 때로는 가해자로 때로는 피해자로 살아간다.그런데 인간은 자신이 남에게 받은 상처를 자신이 남에게 준 상처보다 더 크게 생각하고 더 오래도록 기억한다. 결국, 자신에 대한 긍정의 과잉이 신경증적 사회를 만들어 낸 것이다. 그래서 한 프랑스 철학자는 우리시대를 [유아적 엄살의 시대]라고 했다.

하지만 유아적 엄살로만 치부해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면이 많다. 현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척도를 가지고 사람들을 재고 가르는 일을 멈추지 않는 한, 자신을 힐링이 필요한 존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얼마 전까지 만해도 사람들 사이에는 나름대로 사람이나 사물, 행복이나 성공을 평가하는 다양한 척도들이 존재했었다. 사람들의 생김새가 다른 만큼 취향도 성향도 이에 따른 평가도 참 다양했었다. 그래서 개성이 멋인 시대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대중이 거의 비슷한 척도를 가지고 사물을 판단한다. 개성도 취향도 모두 사라지고 매스컴이 요구하는 기준에 따라 미(美)와 추(醜)를 가른다. 매스미디어의 발전이 가져온 폐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날씬하지 않으면 사회의 주류에서 도태되고 예쁘지 않으면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가진 이 엄정하고 비극적인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언제부터 우리 마음에 들어와 자리한 것일까? 그 기준에 맞지 않으면 잘라내고 늘리고 고치는 또 그래야만 생존한다는 강박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의 중심적 내용은 치유였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눌린 자, 그들에게 기쁜 소식과 해방을, 다시 보게 함과 자유를 경험하게하고 그렇게 살도록 하는 것 그것이 바로 구원이었다. 성경이 말하는 힐링은 인간 삶의 총체적 회복인 것이다. 그것을 위해 예수는 무엇을 했는가? 마커스 보그는 예수 운동과 기존 운동의 차이점을 거룩의 정치학, 자비의 정치학으로 설명하고 있다. 거룩의 정치학으로 대변되는 율법은 ‘거룩’이라는 척도로 성과 속, 이방인과 유대인, 구원받을 자와 받지 못할 자를 가르고 줄긋는 일을 했다. 그러나 자비의 정치학은 사람 사이의 줄긋기를 멈추고 기존의 질서가 막아버린 담을 허는 일을 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인위적 줄긋기를 멈추고 그 마음이 하나 되어 함께 슬퍼하고 아파해야한다.

‘사다리를 오르기로서의 삶’에는 평안이 없다. 강강술래처럼 ‘원무로서의 삶’을 살 때 비로소 많은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이 땅에 오셔서 백향목들이 거들먹거리는 세상에서 겨자풀들이 어우러져 새들마저 깃들 품을 내주며 사는 세상도 있음을 보여주셨다. 굳어진 가치관과 견고한 기득권 중심의 시스템 안에서 그것을 넘어선 아름다운 가치의 세상이 가능함을 몸으로 보여주고 삶으로 사신 것이다.

진정한 힐링은 심리적 차원을 넘어 병리적인 사회의 구원으로까지 확장되어야 비로소 완성된다. 물질적 생태계만 오염된 것이 아니라 영적 생태계도 오염되어 행복도 독과점지배사회가 되었다. 몇 사람을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적 박탈감으로 비참함을 느끼며 살고 있다. 이런 사회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으로 치유되어야한다.

입춘인 오늘, 우리의 봄을 생각해본다. 입춘 할 때 입은 들 입(入)이 아니라, 설 립(立)이다. 입춘이란 말에는 봄으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정적인 의미가 아니라 추운 겨울의 한복판에서 봄을 꿈꾸며 세우는 절기라는 동적인 의미가 담겨있다. 이 봄, 우리 마음의 집을 새롭게 단장하면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과감하게 버리는 일이다.

 

Tip - (주)프로크루스테스 :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자신의 철침대에 눕히고는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그만큼 잘라내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작으면 억지로 침대 길이에 맞추어 늘여서 죽였다고 전해진다. 그의 침대에는 침대의 길이를 조절하는 보이지 않는 장치가 있어 그 어느 누구도 침대에 키가 딱 들어맞는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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