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동화작가 (안산덕성초등학교 교장)

유년 시절, 사생(지금의 사회 교과서) 시험문제가 뜬금없이 떠올라 당황하고 있다. 가정의 달 5월 탓인가 보다. 신록은 무르익고 있는데 가정을 떠올리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패륜범죄가 해마다 급증하고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란 말을 들어본지가 기억너머 아스라할 정도이다. 설거지를 못 한다고 아버지를 구타한 패륜아도 있다.

재산을 가로채기 위해 칠순의 아버지를 감금하고 무차별 폭행한 패륜아도 있다. 취직 좀 하라고 꾸짖는 아버지를 살해하려고 흉기를 휘둘러 구속된 패륜아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터넷에 패륜범죄를 검색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패륜범죄 실상이 수두룩 올라온다.

경찰청의 한 자료에 의하면 2008년부터 2011년 8월까지 모두 10만2948명이 부모 등 친족을 대상으로 패륜범죄를 저질러 사법처리 되었다고 한다. 존속 살해는 2008년 45건에서 2009년 58건, 2010년 66건, 2011년 68건으로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자료는 빙산의 일각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빙산 아래 감추어진 패륜범죄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리나라 부모들의 자식 허물을 감싸려는 특성 때문에 신고율이 저조하며, 이 때문에 존속 대상 범죄율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존속살해는 말 그대로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을 살해하는 것이다. 존속살인은 보통살인보다 형을 가중하여 사형 또는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형법에 나와 있을 정도이다.

가정은 가족이 안주할 수 있는 장소이다. 물질적인 환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구성원들이 건전하게 성장·발달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생존욕구를 충족시켜주고, 안식과 애정을 제공하는 보금자리이다. 가정의 핵심은 가족이며 가정의 목표는 가족구성원의 행복한 삶이다. 가정이 화목해야 사회가 안정되고, 나아가 국가가 융성해질 수 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말이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온 말이 아니다.

1989년 제44차 UN총회에서 가정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 그 역할 및 책임의식을 확산하기 위하여 1994년을 ‘세계 가정의 해’로 지정하고 매년 5월 15일을 ‘세계 가정의 날’로 제정하였다.

우리나라도 이를 기념하여 5월 15일을 ‘가정의 날’로 제정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가정 친화적 사회환경을 조성하는 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다. 모범 가정을 발굴하여 표창하는 등 다양한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갈 길이 멀기만 하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아니 이벤트성 가정의 달이 아니라 매달, 매달이 가정의 달이어야 한다. 일 년 중 기념일이 가장 많은 달이 5월이다. 1일 ‘근로자의 날’로 시작해서 31일 ‘바다의 날’로 끝나는 5월엔 무려 15개의 기념일이 있다. 이 중에 가정과 관련된 기념일이 어린이날(5일), 어버이날(8일), 입양의 날(11일), 가정의 날(15일), 성년의 날(20일), 부부의 날(21일)로 5월에 집중되어 있다.

이렇게 가정과 관련된 5월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슴은 답답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 가구 넷 중 하나는 1인 가구다. 게다가 절반은 부부, 부자, 모자 형태로 이뤄진 2인 가구다. 65세 이상 노인 5명 중 1명은 가족 없이 홀로 지내며, 고독사도 매년 늘고 있다. 해마다 아이들도 8000명 넘게 버려지고 있다.

어디 이뿐인가, 가족 구성원의 정서적 해체도 심각하다. 한 설문조사에서는 할아버지·할머니를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23.4%에 그친 반면에 애완동물을 가족으로 볼 수 있다고 답한 청소년은 57.7%에 달했다. 경악스럽다 못해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이다. 도저히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라고 믿고 싶을 정도이다.

가정해체가 불러온 우리 시대의 우울한 단면이다. 한 국가를 지탱하는 뿌리는 가정이다.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도 국가도 미래와 희망이 없다. 가정만이 정답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즐거운 나의 집’ 노래가 가정마다 흘러나오는 모습을 그려본다. 허상에 불과한 것일까?

‘즐거운 곳에서는 날 오라 하여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리/ 내 나라 내 기쁨 길이 쉴 곳도/ 꽃 피고 새 우는 내 집 뿐이리/ 오 사랑, 나의 집/ 즐거운 나의 벗/ 내 집 뿐이리.’

류근원동화작가 (안산덕성초등학교 교장)  kwroo5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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