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논설위원, 동화작가 (안산덕성초등학교 교장)

금세라도 바람에 날아갈 듯 붙어있는 나뭇잎들의 색깔이 처연하리만치 곱다. 낙엽길을 걸으면 많은 상념에 잠기게 된다. 제 할 일 다 거두고 땅에 묻혀 나무들의 거름으로 다시 태어날 낙엽….

낙엽길을 걸으며 낯설게 지나간 순국선열의날을 생각한다. 현충일에 밀려 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 물음표로 서성이는 순국선열의날, 따지고 보면 현충일에 결코 뒤지지 않는 중요한 기념일이다.

11월 17일은 74주년을 맞는 순국선열의날이었다. 여느 기념일보다 그 유래가 깊다.

순국선열의날은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선열의 얼과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한 법정기념일이다. 동시에 이날은 1905년 우리나라가 일본에 강제로 외교권을 박탈당했던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치욕의 날이기도 하다.

1939년 대한민국임시정부는 망국조약인 을사늑약이 체결된 11월 17일을 순국선열의날로 정했다. 그 취지는 망국의 치욕을 잊지 않고, 순국선열의 희생의 의미를 되새기며 조국 광복의 의지를 다지려는 큰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8·15광복 전까지 임시정부 주관으로 행사를 거행하였고, 1946년부터는 민간단체에서, 1962년부터 1969년까지는 국가보훈처에서, 1970년부터 1996년까지는 다시 민간단체 주관으로 현충일 추념식에 포함 거행하였다.

그러다 독립유공자 유족들의 오랜 여망과 숙원에 따라 1997년 5월 9일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을 개정하면서 정부기념일로 복원, 그해 11월 17일부터 현재까지 정부 주관 행사로 거행해 오고 있다. 주관처가 자주 바뀐 것은 순국선열의날이 제대로 대접을 못 받은 증거이기도 하다.

그 암울했던 시절, 우리 민족이 일제에게 국권을 빼앗기고 무단통치에 신음하고 있을 때, 선열들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며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에 맞서 산화한 선열들의 순국정신이야말로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정신이며, 민족혼으로 승화되어 우리나라를 지켜낸 원동력이 되었다. 그 원동력으로 오늘날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속에 우뚝 서게 되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계정세와 아울러 일본 각료들의 행태를 보면 순국선열들이 더욱 소중하게 다가온다. 위안부 강제 동원을 비롯한 침략 사실은 부정하면서 신사참배는 옹호하는 무리들, 아베 총리 취임 이후 일본의 우경화는 더욱더 심화, 군국주의로 빠른 회귀를 하고 있다. 과거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침략 역사에 대해 진정한 반성과 사죄는 손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취임 1주년이 되는 다음 달 이전에 직접 신사참배를 할 것이란 이야기까지 나돌고 있다. 게다가 일본은 미사일 공격에 대해 방어 중심의 대응에서 벗어나 적 기지를 타격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최근 대마도를 방문한 일본 방위상의 ‘한국기업이 산 땅을 감시할 필요가 있다’는 망언으로 우리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 일본엔 참으로 특이한 뇌와 입 구조를 가진 소인배 정치인들이 득시글거리고 있다. 이러한 일본의 소인배적 행태에 우리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나라가 없으면 개인도 없다. 외교권을 박탈당한 수치스러운 날을 법정기념일로 정함은 선열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말자는 굳은 결의와 깊은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결코 현충일에 뒤지지 않는 소중한 순국선열의날이다. 순국선열의날을 맞아 우리의 정신무장을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국가발전의 주역이 될 청소년의 애국정신 함양을 위한 체험교육과 국민통합을 위한 국가 정체성교육을 체계적으로 꾸준히 확대해 나아가야 한다.

한 학교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그동안 순국선열의날을 학생들에게 어떻게 교육을 했나 생각을 하면 고개를 들 수 없을 정도이다. 미안한 마음, 죄스런 마음에 순국선열의날 노래 가사 전문을 적어 본다.

온 겨레 나라 잃고 어둠 속에 헤매일 때/ 자신을 불살라서 햇불마냥 밝히시며/ 국내외 광복전선서 오롯이 목숨 바친/ 님들의 그 충절이 겨레의 얼 지켰네/ 우리는 순국선열을 우러러 기리면서/ 그 후예다운 떳떳한 새 삶을 다짐한다.

류근원 논설위원, 동화작가 (안산덕성초등학교 교장)  kwroo540@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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