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계에서는 정규직·비정규직 갈등에 이어 시간선택제 일자리가 논란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일자리와 임금 나눠먹기라는 비난이 거센 가운데 기자는 88만원 세대, 결혼과 취업 등의 사회적 활동이 극단적으로 지체된 세대, 20대 후반에 접어든 이들의 뒤늦은 사회생활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제약회사 약국 영업사원과의 만남을 소개한다.

지방의 모 대학을 졸업한 B씨(27)는 한 제약회사의 영업사원이다. 수많은 영업 비즈니스맨 중 꽃이라는 제약회사 영업사원이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입사원서를 넣고 서류전형에 합격해 면접을 본 뒤 들어가게 된 제약회사. B씨는 3개월간의 인턴 근무를 시작했다. 사업장이나 기업에서 처음 사람을 뽑을 때 으레 처음 3개월을 수습기간으로 책정하듯이 B씨도 정규 급여의 80%에 해당하는 급여를 받고 3개월을 버텼다.

“한 달 110만원이 학생 시절엔 큰돈이었는데, 막상 졸업을 하고 내 일의 대가로 받는 돈이라 생각하니 너무 적고 생활이 빠듯했다.”

통신비와 보험료, 차량유지비 등으로 40만원이 빠지고 나면 저축할 여유가 없다. 첫 직장이니만큼 알뜰살뜰 모아보려 했지만 저축 비율을 높게 잡을수록 생활이 어려워졌다.

“30~40만원씩 저축하고 있다. 이렇게 모아서 언제 결혼하고 내 집 마련을 할지 걱정이다. 비밀로 해 달라. 누가 알게 되면 시집오려다가도 도망가겠다.”

지난 7월 입사한 B씨는 이제 입사 6개월 차이지만 급여는 여전히 110만원이다. 알고 보니 인턴 기간에 영업사원으로써 적절한 성과를 올려야 정규직 전환이 가능했던 것. 회사 내규라지만 이것은 부당한 일이 아닌지 물었다.

“지금 당장은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벌이가 없다. 실제로 (약국)영업하기가 쉽지가 않은 상황이라 실적에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다. 내년 상반기에 (정규급여전환)심사가 있으니 그때는 되겠지 싶다.”

B씨는 약국을 상대로 제품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약국은 동네의 술집이나 음식점처럼 자주 생겼다 없어지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현재 제약업계에서는 거의 포화상태로 분류하고 있다. 사회 초년생 영업사원에게는 살아남기 힘든 레드오션인 것이다. 

“아침에 사무실 출근 후엔 영업을 위해 다시 거리로 나온다. 나 같은 영업사원들이 제법 많은지, 약사들은 내가 들어가기만 해도 대번 (영업사원인 것을) 알아차리더라.”

그는 입사 후 열정을 갖고 여러 약국들을 찾아다녀 봤지만 암암리에 권역별로 구역이 나누어져 있어 실제로 출입할 수 있는 약국은 몇 개 되지 않는 실정이다. 그나마도 손님이 아닌 영업사원임을 밝혔을 때 돌아오는 냉대를 이겨낼 수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하루 종일 돌아다녀서 그만한 성과를 얻어낼 수 있다면 좋겠다. 한 3개월 지나니 힘들더라. 지금은 힘들면 잠깐씩 쉬기도 하고, 그렇게 내 시간을 가져가면서 일하고 있다.”

영업사원이면서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 B씨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B씨는 당당히 말했다.

“열심히 산다. 다만 24시간을 모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약국에 들어가 약사들을 대할 때 최선을 다한다.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라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도 있지만 최대한 긍정적이 되려고 노력한다.”

잠깐의 인터뷰를 끝으로 B씨는 다시 영업을 위해 나설 채비를 했다. 약속을 정해놓았느냐는 기자의 말에는 웃음으로 답했다. “먼저 두드리는 것이 영업이고, 그렇게 나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것부터가 영업의 시작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다.”는 말을 남기고 B씨는 오늘도 약국으로 들어선다.

곽정민 기자  kjm87@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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