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정규 논설위원이 만난사람 (정곡경로당 변영희 상임고문)

부모가 자식과 함께 살기를 꺼려하고 자식 또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 쉽지 않은 세상이다. 우리는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살아 온 민족이라서 충효를 근간으로 교육을 하고 그런 교육을 받아서인지 비교적 자식이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물론 웃어른을 공경해야하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1960년대 시작 된 경제개발로 산업화와 국제화가 되면서부터 삶이 복잡다양화 되고, 해야 할 일이 많아지자 너나없이 국내는 물론 해외로 떠돌며 살지 않으면 안 되게 됐다. 그래서 한 가정에 2대가 함께 사는 것도 쉽지 않다. 조기유학 때문에 때론 직업 때문에 어린 자식 따로 부모 따로 헤어져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런데 정곡경로당 변영희 고문은 92세로 69세 되는 아들과 63세 며느리 그리고 손자, 증손자들과 한 지붕 밑에서 4대가 살고 있다며 주위사람들이 효자 효부라고 자식에 대한 칭송이 자자해 요즘 사회에 귀감이 되지 않을까 싶어 만났다. 다음은 변영희 고문과의 일문일답.

▲ 변 고문님, 92세라는 연세에 비해 청춘입니다. 그렇게 젊게 사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게는 남다른 복이 있답니다. 무슨 복이냐고요? 다름 아닌 착한 며느리와 손자며느리를 맞이한 복이지요. 내 며느리 자기도 며느리를 보고 또 손자들을 줄줄이 둔 60대 늙은이인데도 내게 너무 잘 해 줘요, 몸이 조금만 불편한 것 같아도 옆을 떠나지 않고 보살펴 주는데 죽고 싶어도 그런 며느리 때문에 죽지 못하고 90세를 훌쩍 넘겼답니다. 그게 다 복이지 뭡니까. 복 중에도 큰 복이지요.”

▲ 아들도 효자라고 들었습니다.

“아들! 아들도 효자지요. 하나 자식이 부모에게 잘 해야 하는 건 당연한 것 아닙니까? 그렇게 하지 않은 자식들이 나쁘지요. 그러나 며느리가 잘 하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지요. 우리 며느리 칭찬 많이 해 주세요. 손자며느리에게도.”

▲ 요즘도 그 연세에 공부를 꾸준히 하신다는데?

“공부를 하는 것은 지식의 경계를 확장하고 편견을 없애며 이해의 폭을 넓히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부는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따지지 말고 해야 합니다. 그 뿐만 아니라 공부 열심히 하다 보면 젊어집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도 그렇지만 책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지식과의 만남은 용기를 주고 지혜를 깨우치게 하여 남다른 패기가 생기니 그 패기가 곧 젊음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이 나이에 노인대학도 열심히 다니고 은빛둥지에서 컴퓨터공부도, 사진 찍는 공부도 10년이 넘도록 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에버그린 21재단에서 하는 에버그리너 양성교육도 받았습니다. 현재도 안산대학교 평생교육원 CEO과정에 등록해서 다니고 있습니다. 며느리가 160만원이나 되는 등록금을 납부해 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 할까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안중근 의사께서는 초대 조선통감 이토히로부미를 하얼빈 역에서 사살했었죠. 그 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형장으로 끌려가 집행 직전에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내게 5분의 시간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사형집행관이 그 5분을 주면 무엇을 하겠느냐고 하자 읽다 둔 책이 있는데 그 책을 마지막 읽고 싶어서라고 했다. 안중근 의사의 말과 같이 공부만큼은 죽는 순간까지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공부합니다.

공부하지 않은 젊은이들을 보면 왜 저러나 나이 먹고 나면 후회할 일을! 젊어서 열심히 공부하지 않고 더더군다나 오늘 지식이 내일이면 쓸모없어지는 그야말로 초스피드한 이 세상에 빈둥거리며 허송세월해서는 안 되는데, 그런 사람 보면 남의 자식이라도 걱정이 된답니다.”

▲ 92세라면 1924년생으로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 파란만장한 세상을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특히 일제가 태평양전쟁을 치르면서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을 위안부로 강제동원한 시기에 18세로 부모들은 걱정이 많으셨겠습니다. 그 때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기억하십니까?

“충남 예산 삽교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줄 곧 살다가 10대 후반에 일본인 수양아버지를 따라 인천으로 가서 공부도 하고 제정주식회사에 취직해 직장생활을 했었습니다. 다행히 위안부로 끌려가지는 않았지만 살아 온 세월을 생각하면 요즘 젊은이들 행복하죠. 자유당정부와 공화당정부를 독재라 하지만 일제의 탄압에 비하면 어떻게 독재라 할 수 있겠어요. 일제는 주변에 밀대를 두고 늘 우리국민을 감시 탄압했었습니다.

제 나이 세대들 정말 어렵게 살아 온 사람들입니다. 식량이 부족해 봄이면 초근목피로 겨우 목숨을 연명했었죠. 그것 힘들었지만 일제로부터 받는 탄압이 더 어려웠죠. 1945년 그런 일제로부터 독립이 되는 가 했더니 6·25전쟁을 맞았지요. 휴전으로 3년여 동안 치룬 전쟁이 멈추자 이제는 4·19의거와 5·16혁명, 10·26사건, 12·12사태, 5·18까지 겪으며 살아 온 사람들이지요. 우리세대 모두가 살아있는 한국의 근대사입니다.

물론 지금도 6·25전쟁은 끝나지 않고 잠시 멈춘 상태로 시도 때도 장소도 가리지 않고 북한이 도발해 우리 젊은이들이 희생을 당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살고 있잖아요. 그런 시기를 살아오면서 직장생활도하고 타이프학원도하고 노점상도하고 법원에서 구내식당도하고 부동산중개업도하고 서울 약수동에서 목욕탕도 했습니다.”

▲ 변 고문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힘든 삶이었군요. 그런데 언제 어떻게 안산엔 오셔 살게 되셨습니까?

“그 때가 내 나이 일흔 살이었으니 벌써 안산에서 산지도 20년이 지났습니다. 이사 오게 된 것 며느리 때문이지요. 며느리가 고향이 가깝고 신흥도시로 살기 좋을 것 같다며 이곳에 집을 마련 해 놓게 된 것이 안산시민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공해가 심한 것 같아 싫었지만 동네산악회에 가입해 등산을 다니고 친목모임도하고 복지관이 운영하는 노인대학도 다니며 컴퓨터도 배우고 하다 보니 정이 들어 이제는 안산이 내 고향같이 좋아졌습니다.”

▲ 안산에서 여러 분야에 좋은 일을 많이 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차제에 말씀을 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지금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컴퓨터 사용할 줄 모르면 무식한자로, 보다도 더한 바보취급을 받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에게 컴퓨터를 배울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서 제가 이영학 회장님과 함께 안산시장을 찾아가 본오동 노인정 빈 사무실에 ‘은빛둥지’를 만들어 주십사 간곡하게 부탁을 하고 또 이 지역 출신으로 당시도 지금도 국회의원이신 김영환 의원에게 부탁해 한양대학교에서 컴퓨터 100대를 기증받아 노인들에게 컴퓨터교육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어언 15년이 됐습니다. 그 이외에도 정곡경로당을 확장 이전시키기도 했었지요.”

▲ 그 뿐만 아니라 환경보전운동도? 하셨다고 들었는데.

“예, 한 때는 안산이 전국 어느 지역보다도 환경오염이 심한 곳으로 알려졌었습니다. 1997년 10월경부터 1998년 3·4월까지 근 반년 동안 악취 때문에 소동이 난적이 있었지요. 그런 것 때문에 인심도 고약했었죠. 그래서 환경오염에 관심을 갖고 ‘나부터 전기를 아껴 쓰고 물을 아껴 쓰며 거리에 쓰레기를 버리지 말자’ 그런 말을 하고 다녔던 것이 알려져 환경통신회장직을 맡게 되어 활동을 했었죠. 환경통신회원들과 함께 1주일에 2회씩 거리청소도 했습니다.

또 에버그린 21재단이 실시하는 에버그리너 양성교육도 받았죠, 환경보전운동을 하면서 6월 5일 세계환경의 날과 에너지절약 홍보 관련 공로로 2회에 걸쳐 안산시장표창도, 환경보전 우수사례발표도, 환경보전우수도지사표창을 받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물의 날과 관련, 한양대학교에서 물 절약 관련 사례발표를 의뢰받아 발표를 하기도 했습니다.”

▲ 그러니까. 지금까지 안산에서 하신 그 모든 것이 70대 이후였군요. 그 연세에 대단하십니다.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부럽습니다. 인생 후배들을 위해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은.

“가족이기는 해도 이 늙은이에게 한 시도 소홀히 하지 않고 늘 정성을 다해 보살펴 준 제 며느리와 손자며느리에게 그 동안 고맙다는 말 한 번도 하지 못했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았었으니 이해를 해 달라고 이 지면을 통해 부탁과 함께 고맙다는 생각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모든 젊은이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열심히 배우고 꾸준히 노력하되 자신의 처지를 ‘남’ 때문으로 돌려 원망하지 말라고 부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누구나 살다보면 머지않은 날 이 늙은이처럼 늙어 자식이나 주위사람들 더 나아가서는 국가도움이 필요하다는 것 알아야합니다. 그래 말인데 나이 먹은 어른들에게 보다 따뜻하게 대해주었으면 합니다. 젊은이가 늙은이들에게 잘 하는 것도 국가를 위하는 길임을 알기 바랍니다.”

변영희 고문님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세요. 4대가 한 지붕 밑에서 한 솥밥 먹으면 산다는 것 우리 모두 눈 여겨 보며 박수를 보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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