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 시대를 맞아 지역학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도시마다 특색 있는 콘텐츠 개발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10년 전 출발한 안산학연구원의 의미와 가치는 매우 높다. 최근 청문당의 여름을 재연해 주목을 받은 안산학연구원에서 안산학시민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풍속화를 전공하고 단원 김홍도를 알게 되면서 안산학시민대학 개강 당시부터 안산까지 출강하고 있는 정병모(59) 경주대 교수를 와~스타디움내 안산학사무실에서 인터뷰했다.

-안산학연구원과 어떤 인연이 있나.

“안산지역사연구소의 정진각 소장과의 인연으로 알게 됐다. 안산학연구원 이필상 이사장이 단원 김홍도를 연구하는 학자를 찾으면서 정 소장에게 추천을 의뢰한 것으로 알고 있다.”

-먼 거리에서 안산으로 출강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

“나를 찾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려고 노력한다. 내가 알고 있는 단원 김홍도를 후세 사람들에 정확하게 알리기 위해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경주에서 안산까지의 거리도 만만치 않지만 즐거운 마음으로 온다.”

-안산이 문화예술의 도시다. 그 유명한 표암 강세황과 단원 김홍도의 놀이터였다.

“강세황과 김홍도는 스승과 제자 사이다. 스승과 제자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것은 특별하다. 강세황이 김홍도의 그림에 대해 대부분 작품 평을 써 줬다. 스승이 제자에게 한 두 번의 작품 평은 가능하지만 그리는 그림마다 매번 써 주는 것은 그 만큼 각별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는 얘기다.”

-강세황과 김홍도의 관계가 특별한 이유를 꼽으라면.

“먼저 김홍도가 어렸을 때 안산에서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웠다. 한창 인성을 형성하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10살을 전후해 독보적인 스승과 인연을 맺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강세황과 김홍도가 서른 살 정도의 나이차가 있는데 둘이서 같은 직급에 근무한 적이 있다는 점이다. 엄청난 인연이다. 김홍도가 어진을 그려 포상으로 ‘별제(別提)’라는 직책을 맡은 적이 있다. 궁중에 필요한 야채나 화훼를 공급하는 기관인 ‘사포서(司圃署)’에서 강세황과 같이 근무했다는 기록이 있다.

세 번째는 화단에서 서로가 경지에 올라 예술직위를 갖고 화가로서 만났다는 것이다. 당시 강세황은 김홍도를 높이 평가하고 작품 평을 써주고 김홍도도 강세황의 감상평을 써주며 스승과 제자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했다고 본다.”

-강세황과 김홍도의 작품도 성호 이익의 실용주의 영향을 받았나.

“그렇다고 본다. 김홍도의 스승이 강세황이고 강세황의 스승이 성호 이익이다. 당연히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익은 김홍도의 할아버지뻘이다. 이익이 70세 노인일 때 강세황은 30대, 김홍도는 10대였다.

당연히 안산 지역의 가장 큰 어르신이었던 성호사상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다. 강세황의 친구가 청문당 유경종이다. 유경종과 친구인 강세황이 실학사상 영향을 받았으니 10대 시절 안산에서 강세황에게 그림을 배운 김홍도도 당연한 것이다.

김홍도가 화가로서 중요한 시기인 10대에 안산에서 그림을 배웠다는 자체가 회화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단원 김홍도 작품에서 실용정신을 찾는다면.

“김홍도의 작품 중 ‘벼타작’이 있다. 양반과 일꾼들이 타작하는 장면이다. 당시 상류계층인 양반과 하류계층이었던 천민의 신분 간 불공평한 관계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이는 작품이다. 그런가하면 국립박물관에 소장돼있는 ‘태수행차도’가 있다. 고을 원님이 길거리송사를 해결하는 장면의 그림이다.

사회비판, 풍자그림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의 표현 작품이다. 이것이 실학사상 아니겠는가. 김홍도 그림에 성호 이익의 실학사상이 스며들어 있다는 징표다. 가치가 있는 것이다.”

-강세황은 문인화를, 김홍도는 풍속화를 주로 그렸다.

“김홍도는 풍속화의 대가다. 김홍도가 한국회화사에서 단연 1등이다. 문제는 강세황이다. 강세황은 아들이 장원급제하면서 영조한테 갔더니 사대부가 그림 그리면 무시할 것이라는 말을 듣고 당시 붓을 꺽었다. 강세황은 이후 보수적으로 바뀌어 문인화만 그렸다. 강세황은 본인이 못하니까 김홍도의 풍속화를 통해 개혁을 시도하고 실현하려 했던 것 같다.”

-단원 김홍도에게서 안산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은.

“김홍도 그림 중 ‘어물을 팔러가는 포구의 여인들’이 있다. 이 그림을 보면 안산의 새벽녘 풍경이다. 안산은 조선시대 중요한 어장이었다. 한양과 반나절 시간으로 멀지 않아 온갖 젓갈류와 성게 등을 갖고 동트기 전에 서울로 이고 가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강세황이 김홍도의 작품 평에서 ‘비린내가 난다’는 표현을 썼다.

작품을 평가할 때 후각적인 표현을 잘 안 쓴다. 안산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안산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안산어소’도 있다. ‘안산어전’과 동일시하기도 한다. 대나무를 바닷가에 꽂아 놓은 경치를 그린 것이다. 밀물과 썰물의 고기 잡는 풍경이다. 안산에서의 경험과 추억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광주리’도 서해안 지역에서만 나올 수 있는 그림이다.”

-김홍도 고향이 어디냐는 논란도 있다.

“화가로서의 아이덴티티가 중요하다. 고향 논란보다는 화가로서의 인식이나 사상을 어디에서 정립했느냐가 중요하다. 단원 김홍도는 안산에서 정립됐다고 생각한다. 일부 학자는 서울 마포라는 주장도 있다. 성호 이익 사상 실현은 안산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조선 최고의 화가로 자리매김하는데 기여했다.

-안산에 조선 후기 수 백 년 전 그림속의 건축물이 현존하는 ‘청문당’이 있다.

“청문당은 강세황의 ‘현정승집도’가 말해주고 있다. 안산에서 있었던 그 시절의 복날 축제는 매우 독특한 것이다. 복날은 보양식을 먹는 풍습이다. 먹는 축제를 가야금과 거문고, 노래, 바둑 등과 결합시킨 콘텐츠는 현시대의 뮤지컬과 맞먹는 콘텐츠다. 복날의 풍류가 장난 아니다.우리나라만 가능하다.

안산에만 남아 있다. 우선 널리 알리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 다음은 품격 있는 복날 키워드를 내세워 자치단체가 전문가들과 함께 연구해야 한다. 현정승집도를 통해 현존 그림과 건물, 글이 모두 남아있다. 3대 요소가 완벽하게 전해오고 있다. 세계 어디에도 이런 콘텐츠는 없다. 청문당의 가치를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낸 정진각 선생에게 훈장을 줘야 한다.”

-청문당의 가치를 알리고 세계인이 찾는 콘텐츠로 살리려면.

“매년 ‘현정승집도’에 대한 재연에 그칠 것이 아니라 관련 엔터테인먼트 요소를 가미해 나가야 한다. ‘현정승집’에 대한 플러스 요인을 계속 연구해야 한다. 청문당과 연계된 만권당과 연못을 복원해 한옥촌으로 만들어 ‘안산선비문화센터’로 만들어야 한다. 선비문화센터를 한옥으로 만들되 내부는 최신식 시설로 갖춰 초·중·고교나 대학생들이 주말이나 방학기간 중 학습하는 공간으로 꾸며지면 상당한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다. 역사가 있는 라이브러리가 될 것이다.

-안산은 이익, 강세황, 김홍도로 이어지는 3인방을 주목해야 하는가.

“물론이다. 안산을 이어가는 핵심인물이다. 풍속화나 민화의 근본은 실학사상이다. 풍속화와 민화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16·17·18세기는 하류계층의 문화가 떠오르는 시기다. 풍속화의 시발점이다. 18세기로 접어들면서 풍속화가 민화로 발전했다. 실학사상이 당시엔 마이너였는데 현시대는 메이저다. 결국 실학사상의 태동지인 안산은 현대문화의 시발점이다.”

-이익과 강세황, 김홍도를 결합하면 안산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콘텐츠가 나올 법도 하다.

“3인방은 깊은 역사와 고귀한 전통을 지닌 인물들이다. 실학사상의 배경인 안산은 넓은 의미의 대중문화 시발점이다. 어마어마한 콘텐츠를 못 살리고 있다. 안산을 특성화할 수 있는 키워드부터 찾는 작업을 해야 한다. 외부전문가를 영입해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한다. 내부 관계자는 이해관계 때문에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길이 살 길이다.”<여종승 기자>

여종승 기자  yjs49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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