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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믿지 못하면 무너집니다”홍장표 <자유한국당 안산상록을 당협위원장>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7.12.13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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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프로필
-1959년 8월 19일 경기 안산
-미래도시연구소 이사장(현)
-제18대 국회의원(전)
-한나라당 안산상록을 당협위원장(전)
-경기도의회 의원(제6대)
-안산시의회 의원(제1·2·3대)
-안산시생활체육축구연합회장(전)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1년 안산시의회 초대의원부터 내리 3선 의원을 지내고 경기도의원을 거쳐 국회의원까지 오른 정치인이 있다. 홍장표(58) 자유한국당 안산상록을당협위원장이다.

승승장구하던 홍 위원장은 제18대 총선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지만 고난의 길로 접어들었다. 경쟁후보를 비방한 사실이 유죄로 인정돼 당선이 무효된 것이다.

홍 위원장은 하지만 이에 굴하지 않았다. 절치부심의 시간을 걸쳐 정계에 복귀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오뚜기 같은 그를 인물 탐구했다.

-젊은 시절부터 몸담았던 정계에서 본의 아니게 떠나 있었다. 무엇을 하고 지냈나.

“지방자치가 시작된 1991년부터 선출직을 시작했다. 초대 시의원에 당선되면서 다섯 번의 당선증을 받았다. 하지만 시련의 시기도 찾아왔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 됐다. 정치를 못하던 시절에는 본업인 에너지사업에 전념했다. 일이 있었기 때문에 버텼다. 현재는 하던 일을 임대해줬다. 사업에 전념하면서 두터운 기반을 쌓았기 때문에 이제는 정치에 올인 하려고 한다.”

-국회의원 18대 선거에서 당선됐지만 임기를 끝마치지 못했다. 19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했다.

“당시 야당이었다. 그동안 활동했던 정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해 야당으로 출마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서글프다. 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언론에 나온 내용을 이야기했는데 경쟁후보가 문제 제기하면서 예기치 못한 길로 접어들었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다. 긴 터널을 지나온 심정이다.”

-국회의원 선거에 17대, 18대, 20대 등 3번 도전했다.

“3번의 총선 도전에서 한 번 당선되고 두 번 낙선했다. 한 번 당선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수도권은 정치구도가 중요하다. 수도권은 20%의 중도 표심이 당락을 좌우한다. 당시 친박연대로 수도권에서 유일하게 이기는 선거를 치뤘지만 끝까지 가지 못해 아쉽다.”

-선거 실패로부터 무엇을 배웠나.

“30대 초반부터 선거를 경험했다. 젊은 시절부터 단련이 되어서인지 모르지만 공천만 받으면 당선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나름대로 전문성도 있었고 시민과 가까운 생활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20대 총선도 사력을 다했다. 이제는 시대변화가 빠르다. 주민과 함께 정책을 논의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는 시대다.
유권자가 정치인을 알아보는 시대가 아니라 정치인이 유권자를 알아주는 시대다.
낙선을 경험할수록 지역 주민을 더 간절하게 섬겨야 한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정치적으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정치의 끈을 놓지 않는 이유는.

“안산이 고향이다. 첫째, 지역발전을 위한 애향심이다. 안산을 잘 알고 시민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 전문성의 입법화다. 엔지니어가 정치하는 것이 만만치 않다. 하지만 홍장표가 도시계획을 비롯 건축, 가스, 기계, 화학 등 전공을 살려 입법 활동을 하면 시민이 원하는 법을 만들 수 있다. 전문성의 입법화는 시민의 가슴에 담는 정치 실현이라는 생각이다.”

-자유한국당 안산시장 예비후보로 움직이고 있다. 중앙정치에서 지방정치로 무대를 넘나드는 이유는.

“정치란 중앙이나 지방이나 국민과 시민을 위한 것이다. 홍장표는 시의원과 도의원을 거치고 국회의원 역할도 맛봤다. 지방정치와 중앙정치의 생리를 너무나 잘 안다.
그러다보니 중앙과 경기도 인프라가 넓다. 당연히 정치 지도자로 활동하는데 유리하다.
정치인은 중앙과 지방으로 경계를 구분하지 않는다. 정치는 자기영역을 가지고 시민과 더불어 함께 하는 것이다. 시민에게 더 많은 수혜를 만들어낼 자신이 있다.”

-시민에게 인정받을만한 자신의 리더십은 무엇인가.

“청렴성이다. 31살부터 현재까지 정치를 해오면서 금전적으로 구설수에 오른 적이 없다.
그 다음은 전문성이다. 도시계획과 건축, 해양(조선공학), 등등 엔지니어 생활정치인으로서 공무원을 능가하는 전문성이 강점이다.
생활정치가 몸에 배어 있다. 시민위주의 정책을 펼칠 수 있다. 주민의 의견과 공직자가 협력할 수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다.”

-급변하는 도시환경에서 안산을 포지셔닝 한다면.

“안산스마트허브는 국가공단이다. 국가가 금속, 기계, 전기, 전자 등 자동차부품 중소기업을 모아 공단을 만든 것이다.
국가공단이 부동산 임대업으로 전락했다. 벤처와 제조업 기능을 못하고 있다. 현재 안산스마트허브애 입주해 있는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국가균형발전법에서 제척시켜야 한다. 공장을 지방으로 이전시킬 경우 주는 특별혜택도 없애야 한다.
제조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오히려 평면공장을 더 늘려가야 한다. 4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신길동 지역이나 MTV 구역 내에 별도의 벤처단지를 조성해야 한다.
안산 주변 도시인 송산그린시티에 대기업을 유치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안산스마트허브를 살릴 수 있다.
국가공단도 공장용지는 임대부토지를 만들어 30년, 50년, 장기임대를 줘야 한다. 획기적인 전환이 없으면 외국에 나가 있는 대한민국 기업들의 유턴을 기대할 수 없다.”

-안산을 포토폴리오할 경우 어떤 전략적 변화를 추진할 것인가.

“아파트 재건축이 한창 진행되면서 안산이 슬럼화 되고 있다. 자연적으로 인구감소가 뒤따르고 있다.
도시가 최근 민선시장 3명을 거치는 동안 정체되기 시작했다. 아파트 재건축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균형 잡힌 도시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아파트 재건축과 신도시개발이 병행되어야 한다. 신도시와 재건축이 병행해서 이뤄지지 않아 안산의 아파트가격이 급상승했다.
이렇게 가면 안산의 공동화 현상이 우려될 정도다. 월피동 시가화예정지를 비롯 사사동, 본오뜰 개발을 진행해야 한다.
이어 5철이 연결되는 안산의 도심 철도 구간을 지하화 해야 한다. 상록수역에서 안산역까지 구간을 지하화 해 뉴욕 센트럴파크처럼 공원과 광장으로 만들어 호수공원과 연계해야 한다. 2010년 박사 학위 논문에서 이미 만들어진 나의 포토폴리오다.”

-안산문화 중 꼭 지키고 싶은 것과 바꾸고 싶은 것은 무엇인 가.

“안산은 인공적인 계획도시가 되면서 문화가 거의 사라졌다.역사가 없으면 현재도 미래도 없다. 낙안읍성이나 해미읍성처럼 안산읍성을 복원해야 한다. 안산읍성을 빨리 발굴하고 복원해야 역사적 이미지를 되살릴 수 있다.
안산읍성 복원과 함께 일본 다케시마현처럼 안산이 만들어진 내력을 보존하는 공간도 만들어야 한다. 후세들에게 애향심을 높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다.
바꾸고 싶은 것은 정치에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생각이다.
마을별로 문화를 만들어가야 한다. 마을별로 특색 있는 문화마을을 만들면 보고, 즐기고, 먹고, 사람이 모이고 시민이 밖으로 나오는 문화가 만들어진다. 당연히 이웃이 어울려 행복하게 사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자신의 장·단점을 솔직하게 말해 달라.

“장점은 청렴성이다. 정치인은 도덕성과 정직함이 최우선이다. 나의 가장 큰 자산이자 보물이다. 단점은 직설적인 성격이다. 결과물을 갖고 얘기하다보면 상대에게 미움 사는 경우가 있다.”

-안산을 글로벌 도시로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안산을 포토폴리오할 경우에 얘기한 것처럼 공단을 살리기 위한 노력과 전철 지하화, 시화호의 적절한 활용 등이다.
송산그린시티에 임대부공장부지를 만들어 대기업을 유치하고 전철 지하화로 도심공원과 광장을 만들면 너나할 것 없이 안산으로 몰려올 것이다. 안산 구간 전철은 짧은 거리다. 재원조달도 문제가 없다. 공원부지의 토지로 해결할 수 있다. 살고 싶은 도시로 만드는 일이 글로벌도시로 가는 길이다.”

-평생학습 시대다. 자기 계발을 위해 어떻게 학습하는가?

“정치를 하면서도 끊임없이 학습했다. 박사 학위까지 받았다. 꾸준한 자기계발만이 살 길이다. 잡지나 학술지를 통해 항상 새로운 지식을 배우려고 노력한다. 주변의 전문가들에게서도 많이 배운다.
요즘에는 디자인 혁신도시에 관심이 많다. 실무경험 쌓기 위해 각종 디자인전을 많이 찾는다.
야간 경관 디자인까지 배우고 있다. 디자인 혁신도시가 되면 도시 이미지를 바꿀 수 있다.
대부도도 해안로와 펜션마을, 캠핑촌 등으로 디자인해야 한다. 시화호의 송전탑도 흉물이라고 조롱만 하지 말고 야간 조명으로 이미지를 바꾸려 노력해야 한다. 시화호는 세계 각국을 유치해 매년 ‘국제 분수쇼’를 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어느 분야나 관심을 갖고 학습을 하다 보면 발상이 나온다.”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믿음과 신뢰다. 우리 사회는 불신의 시대가 됐다. 짧은 기간에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가치관이 무너지다 보니 사회가 흔들리고 있다.
서로가 믿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믿음 위에 신뢰가 구축되면 그것보다 좋은 사회는 없다.”

-삶의 거울로 삼는 좌우명과 선택 이유는.

“‘위민위향(爲民爲鄕)’이다. 시민을 위하고 고향을 위하는 것이다. 나의 인생은 정치 그 자체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자존감을 가지고 시민을 위하는 일에 매진해왔고 또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고향을 위하는 마음도 마찬가지다. 안산은 정체성이 없다고 많이 얘기한다.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애향심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노력해야 한다.”

-인생의 멘토는 누구인가.

“유명만화작가 심만기 공주대 전 교수와 이주용 한양대 교수다. 심 작가는 디자인을 알게 해준 멘토이고 이 교수는 도시계획의 멘토다.”

-과거에 읽었거나 현재 읽고 있는 책 중 추천할만한 책은.

“정약용의 ‘목민심서’다. ‘목민심서’는 지방 관리의 부임으로부터 해임에 이르기까지 전 기간을 통해 반드시 준수하고 집행해야 할 실무상 문제들을 각 조항으로 설정하고 자신의 견식과 진보적 견해를 피력해놓은 책이다.
정약용은 “백성들은 흙으로 밭을 삼고 관료들은 백성으로 밭을 삼아서 살과 뼈를 긁어내는 것으로 농사를 삼고 가렴주구하는 것으로 추수를 삼는다.”는 철학을 갖고 있다.
정약용은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머리 숙인 인물이다. 닮을 점이 많다. 성격이 비슷해서 더 좋아한다.”

-인생 노년기의 꿈은.

“농사가 가능한 적당한 지역에서 텃밭 가꾸면서 유실수와 채소류를 가꾸며 이웃 주민과 나누며 여생을 살고 싶다. 한마디로 동심으로 돌아가 살고 싶다.” <여종승 기자>

여종승 기자  yjs49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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