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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리마루 이야기(하)김은호(와리마루 대표·희망교회 목사)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8.01.24 1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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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참사 이후 마을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섯 가지로 정리해 봤다. 첫째, 마을은 피해 가족들이 살아가는 삶의 거처이기 때문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견디어야 하는 아픔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그 아픔을 가장 잘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전문가가 아니라 이웃이자 마을 사람들이이기 때문이다.

둘째, 마을에 간접 피해자들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한 마을이라고 하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잘 모르고 살아왔다.

우리 동네 살았던 아이들이 희생당했다는 소식에 함께 아파하고 울었다. 가슴에 응어리가 맺었다. 하지만 그 아픔을 치유하지 못하고 제대로 상처를 꿰매지도 못하고 그냥 꼭꼭 숨겨두었다. 언제 다시 상처가 곪아 터질지 모른다.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 서로가 가진 그 상처를 꺼내놓게 하고, 치유하기 위해서, 얼굴을 맞대고 만나고 있는 마을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셋째, 더 이상 국가를 믿을 수도 국가에게 의지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후 국가가 보여준 모습은 여간 실망스러운 모습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다. 차마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특별 조사위원회를 구성했지만 파행적이다. 대통령이 눈물 흘리면서 진상규명을 위해서 어떠한 일도 하겠다는 말은 공허한 수사에 불과하다. 국가가 할 수 없다면 마을에서 시작해야 한다.

국가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에 있는 온 마을이 국가를 만들어 낸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마을에서부터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국가가 해주기를 바랄 수는 없다. 국가가 하지 못한다고 하면 마을에서부터 진행하면 된다. 우리 마을에서부터 시작해 옆 마을로, 또 그렇게 옆 마을로 확대해나가면 국가를 움직이는 건 어렵지 않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이기 때문이다.

넷째, 4.16 참사 같은 사건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4.16참사와 많이 다른 사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떠한 사건이던지 피해자가 있고, 그 피해자 동네가 있을 것이며, 또한 국가가 언제나 피해자의 편에 서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경쟁이 최우선시 되는 사회, 이윤이 사람보다, 생명보다 우선시 되는 사회에 대항해야 하기 때문이다.
많은 어르신들이 옛날에 보릿고개는 있어도 지금처럼 힘들지는 않았다고 한다. 그때는 모두가 가난하고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마을이 있었기 때문이란다.

마을에서 함께 나누는 문화와 풍습이 있었다. 사람들이 돈과 성공에 집착하는 이유는 일종의 두려움 때문이다. 자신이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로가 더불어 나눌 수 있다면 더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질량보전의 법칙에 의하면 우리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의 총량은 이미 한정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하나면 충분한데 누군가가 자신의 필요 이상으로 다섯을 가지면 다른 사람들이 그 만큼 덜 가져야 한다. 때로는 스스로 덜 갖는 선택이 필요하다.

아인리히 법칙이 있다. 1:29:300의 법칙이라고도 한다. 미국의 보험회사 관리감독자였던 하인리히가 수천 건의 고객보험 상담을 분석한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내놓은 법칙이다.

아인리히 법칙은 심각한 사고 한 건이 일어나기 전에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있었고, 29건의 경미한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300건이나 되는 위험요소가 존재했었다는 법칙이다.

우리가 잘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4.16 참사는 이미 예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형 사건사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마을에 있다. 각 마을마다 공동체 문화가 활성화될 경우 29건의 경미한 사고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고, 300건의 위험요소들을 없앨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의 아픔과 함께 하는 마을 공동체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와동에서 ‘마을공동체사업’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한지 10년 째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보람을 느낀 적도 많이 있었지만 부끄러운 적은 더 많았던 듯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사업을 진행했는가? 또는 어떤 업적을 이루었는가 하는 문제보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가에 달려 있었다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일을 한다는 것은 어떤 일을 하는가 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떤 마음으로 하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마을 공동체 사업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사업이기보다는 과정 안에 내가 얼마나 만족하고 성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을 공동체운동은 마을과 더불어 스스로 성장해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주민과 마을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연결되어 있어서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하고, 그런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다고 결과에 얽매일 필요는 없다. 어차피 우리의 존재와 마을의 성장은 끝이 없고 어쩌면 성공을 통해서 보다는 실패를 통해서 더욱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마을공동체 사업에 있어서 실패란 있을 수 없고 단지 함께 하는 성장과 서로의 돌봄이 있을 뿐이다.
돌봄과 성장이 없는 마을 만들기 사업은 공허할 뿐이고 성공과 업적에 얽매인 마을 만들기 사업은 허망할 뿐이다.
온 마을이 더불어 성장하고 서로를 돌볼 수 있는 그런 와동을 꿈꿔본다.(끝)

여종승 기자  yjs49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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