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메르스 사태 때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의 조치만 바라보아야했다. 최근의 지진, 화재 때도 지방자치단체의 권한과 역량이 좀 더 컸더라면 하고 아쉬움이 있었다. 신속한 대응은 가까운 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현재 우리나라 지자체의 평균 ‘재정 자립도’는 약 50% 정도다. 국세와 지방세의 세입비율이 8:2가 되는 상황에 기인한다. 따라서 나머지 절반은 중앙정부에서 교부금이나 보조금 형태로 지원해주는 돈에 의존해서 살림을 해야 한다. 그러다보니 재정지출의 자율성도 제약된다.

지자체가 정책집행을 위해 지출하는 총 비용 중 약 52%인 65.2조 원이 국고보조사업이다. 즉 중앙정부가 이미 결정해놓은 사업을 해당 지역에서 집행만 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지방에서 거의 손도 못 대보고 고스란히 중앙정부 지침대로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지방의회의 입법 기능에 있어서도 국회의 ‘법률이 정한 범위’로 제약되어 있어서 지자체의 권한과 업무영역을 넓히는데 한계를 갖고 있다. 지역의 고유한 문화나 특성을 반영한 조례를 제정하려 해도 법률의 벽에 부딪쳐 극히 지엽적인 조례제정에 머무르고 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외에 전체 행정과 사무기능을 보면 중앙에 70%가 집중되어 있다. 그나마 지방에 넘겨진 위임사무도 직접적인 간섭이나 감독이 불가능한 것이 대부분인 실정이다.

요즘 지방분권이 많이 회자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6월 지방선거 동시 개헌에 자치분권을 포함시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권력구조 등 개헌 내용에 대한 여야의 갈등이 심해진다면 정치권이 공감하는 범위에서 국민의 기본권과 함께 자치분권 내용만을 담아내는 개헌을 먼저 추진할 용의가 있다고 밝힐 만큼 강력한 의사를 표명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왜 자치분권을 강화해야 하는가?
첫 번째는 ‘국민 참여’라는 민주주의적 가치다. 자방자치제도를 ‘가까운 민주주의’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국민들의 참여를 활성화하려면 행정이 가까워야 가능하다. 자치분권이 제대로 실현될 때 참여민주주의가 가능하다. 자신의 공동체 발전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알렉산더 토크빌’이라는 정치이론가는 “기초 자치 정부의 운영이 시민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서 이루어질 때 시민에게 자유를 가져다준다. 그 뿐 아니라 자유를 어떻게 누리고 어떻게 활용하는지를 가르쳐 준다”고 했다.

두 번째는 경제적 가치다. 프랑스는 세계화가 진행되는 1980년대에 대대적인 지방분권을 강화해서 강대국으로 진입하는 단초를 만들었다. 2003년 헌법 1조에 ‘프랑스는 단일 공화국으로서 그 조직이 지방분권화 된다’고 명문화했다.

장 버나드 프랑스 파리정치대학 교수는 프랑스가 중앙집권적 체제를 유지했다면 2차 대전 상처를 극복 못했을 것이다. 오늘날의 세계적인 강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지방분권형 개헌과 강력한 추진으로 도시권과 지방이 경쟁력을 갖추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세 번째는 국민 복지적 가치다. 보육, 교육, 의료, 저출산, 노인 정책 등의 복지는 우리의 삶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다. 커다란 정책방향은 중앙정부에서 제시하는 것이 맞지만 구체적 정책은 시민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요구를 잘 읽어낼 때 가능하다.

그러려면 가까운 정부가 필요하다. 한 예를 들어보면 시골과 도시의 노인인구 비중은 다르다. 삶의 조건과 질병의 종류도 다르다. 그러기에 노인복지에 대한 재정비율이나 방법도 달라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중앙정부의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정책과 조치 속에서 지방자치체의 권한은 제한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국민의 의견을 반영 못하고 창의성을 훼손한다.

프랑스, 스웨덴 등 선진 복지국가들은 공통적으로 지방자치의 권한이 크다. 광역자치 정부에서는 의료, 교통 등의 업무를 수행하고 기초자치 정부에서는 보육, 노인 돌봄 등 다양한 복지정책과 교육, 공중보건 상하수도, 주택 등을 책임진다. 지방정부의 자유로운 발전이야말로 이 나라들이 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던 필요조건이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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