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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의 기회를 되찾아줍니다”김경옥 <안산용신학교 교장>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8.03.07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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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11월 7일 경기 시흥 출생
-안산중앙실업학교 교장(전)
-용신평생교육원 원장(전)
-전국야학협의회 이사(현)
-안산시문해교육협의회장(전)
-최용신봉사상 수상(1996년)
-교육인적자원부장관상 평생교육부문 수상(2005년)
-국무총리상 평생교육부문 수상(2016년)


잃어버린 학창 시절의 꿈을 이뤄주는 일에 30년이 넘는 시간을 바쳐온 이가 있다. 안산용신학교 김경옥(56) 교장이다. 안산용신학교는 1987년 안산중앙실업학교로 출발해 용신평생교육원을 거쳐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김 교장은 중학교 수학 교사를 하면서 청소년 야학 봉사활동을 하다가 교사직을 과감하게 던지고 배움에 목마른 사람들의 마중물이 됐다.
31년 동안 안산용신학교 입학생부터 시작해 자퇴생, 수료생, 졸업생까지 그동안 거쳐 간 학생이 3천200여 명에 이른다. 외국인 이주민도 3천500여 명에 달한다.
학력 보완 교육기관으로 시작한 안산용신학교는 현재 문해 교육과 외국인 주민을 위한 한국어교육까지 감당하고 있다. 제도교육에서 소외된 청소년과 성인은 물론 외국인 이주민까지 평생교육을 하고 있는 김경옥 교장을 인물 탐구했다.


-안산용신학교는 어떤 곳인가.

“안산용신학교는 제도교육에서 소외된 청소년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학력보완과 문해 교육, 외국인 이주민을 위한 한국어교육까지 하고 있는 평생교육시설이다.
개인의 삶의 질 향상은 물론 사회통합에도 기여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학교다.”

-젊은 시절인 31년 전 야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 졸업 후 김포에서 중학교 수학교사로 일했다. 당시 반월공단 근로청소년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는데 잔업 등으로 야학을 올 수 없다고 해서 우연히 출근 전에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한 것이 야학 시작의 계기다.
30년 전 청소년 근로자들을 가르치면서 학생들의 열의와 눈빛을 보고 야학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 오늘에 이르렀다.”

-용신이란 학교 명칭이 최용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인지 궁금하다.

“소설 상록수의 실제 주인공 최용신 선생이 젊은 시절 현재의 본오동 샘골공원에서 강습소를 열었다. 용신 선생은 당시 문맹퇴치와 계몽운동, 독립운동 등으로 무장해 ‘배워야 산다’는 정신을 보급시켰다.
야학을 설립하면서 용신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이름을 따서 학교 명칭을 지었다. 숭고한 용신 선생의 명예를 손상시키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용신이란 명칭은 학교는 물론 안산을 홍보할 수 있는 명칭이어서 너무 좋다.”

-안산용신학교의 명칭이 두 번 바뀌었다. 스토리를 말해 달라.

“현재의 안산용신학교는 1987년 안산중앙실업학교로 출발했다. 당초 중학교 졸업 후 반월공단에서 직장생활하던 청소년들을 위한 야학이었다.
이후 용신평생교육원으로 이름을 바꿨지만 젊은 시절 가정환경이나 여러 가지 여건 상 학교를 못 다닌 성인 학습자들이 ‘교육원’이 아닌 ‘학교’라는 명칭을 원해 공모과정을 거쳐서 명칭을 바꿨다.”

-안산중앙실업학교란 명칭으로 1987년 청소년 야학으로 출발했다.

“안산중앙실업학교로 출발할 1987년 당시 스물다섯 살로 나이가 어렸다. 현재 살아계신 부모에게 신세를 질 수 밖에 없었다. 생존해 계신 김진한(83) 부친이 학교 설립자이자 초대 교장이었다. 나는 교사로 시작해 가르치는 일 외에도 학교의 집사 역할을 도맡았었다.”

-용신학교가 안산중앙실업학교로 출발해서 2년 후 1989년 첫 졸업생을 배출했는데.

“야학 설립과 함께 60명의 학생이 입학했다. 그 당시의 경우 학력 인정을 못 받아 초등학교나 중학교 졸업생들이 검정고시를 봐야 했다.
입학생 60명 중 10%인 6명이 졸업했다. 그 자체도 감격이었다. 현재 50대 초반이 된 이준모 1회 졸업생이 안산용신학교 총동문회장을 맡고 있다.”

-3년 차로 접어든 1990년 단 한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기 위해 12명의 교사가 봉사를 했나.

“그렇다. 1980년대 말의 경우 봉사자나 야학을 하려는 학생이나 정신이 살아있었다. 1990년 졸업생이 단 1명이었다.
이수 과목 때문에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는 12명이었다. 야학은 학원처럼 인원수로 돈을 버는 사업이 아니라 오로지 학생 중심이다. 봉사하는 교사들이 더 열심히 했다.”

-청소년 야학으로 시작한 용신학교가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가정형편이나 사회 환경으로 학업을 중단한 중년 여성들이 많이 찾았다는데.

“경제성장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급격하게 변하면서부터다.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 가정형편이 안 되거나 남아선호사상 때문에 학교를 못 다닌 여성들이 의외로 많다.
세상이 바뀌니까 못 배운 한이 있는 여성들이 자신을 뒤돌아보게 되면서 용신학교를 많이 찾았다. 그동안 가방끈이 짧아서 사회에서 주인이 되어 보지 못한 설움을 씻어내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이주노동자와 국제결혼 여성이 용신학교를 많이 찾는 이유는.

“용신학교가 위치한 지역이 다문화지역으로 접근이 쉬운 원곡동 때문이기도 하다. 그 다음은 외국이주민이 전국에서 한 지역에 가장 많이 모여 살기 때문에 안산시가 최초로 외국인주민지원센터도 만들면서 용신학교에 한국어교육을 의뢰했다. 외국이주민을 위한 상담과 한국어교육, 한국문화교육까지 맡았다가 현재는 상담역할은 전문기관에 넘기고 한국어교육과 한국문화교육만 하고 있다.”

-그동안 용신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은 얼마나 되나.

“31년 동안 안산용신학교 입학생부터 시작해 자퇴생, 수료생, 졸업생까지 그동안 거쳐 간 학생이 3천2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말 기준 외국인 이주민도 3천500여 명에 달한다. 외국이주민의 한국어교육은 2006년부터 10여년 기간으로 보면 내국인보다 6배가량 많은 것이다.”

-초등학교 학력 인정기관으로 2012년 선정됐다.

“문해 교육은 고령자가 많다. 고령자들에게는 검정고시 자체가 두려움이다. 평생교육법이 개정되면서 안산교육지원청에서 인정받았다.
초등 과정은 연간 240시간을 이수해야 하고 지정교과서와 연수자격교사, 출석률 3/2 등의 조건을 갖춰야 한다.”

-중학 학력도 2014년 인정기관으로 됐다.

“중등 과정은 지정 교과서와 연수자격교사, 출석률 2/3 조건 등은 초등과정과 같지만 수업시간이 연간 450시간으로 다르다.
지난해 기준 초등과정은 70명이, 중등 과정은 60명이 용신학교에서 각각 학습했다.”

-현재 용신학교에서 자원 봉사하는 교사들은 몇 명이고 어떤 분들인가.

“자원 봉사하는 교사가 30여 명이다. 대부분 퇴직교사가 많고 일반 주부나 직장인도 있다. 교사들에게 보조금이 있을 경우 교통비 정도 지급하지만 방학기간 중인 전년도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는 교통비까지도 자부담하면서 봉사한다.”

-용신학교를 운영하면서 고마운 일과 느끼는 보람은.

“고마운 일은 무엇보다도 자원 봉사하는 교사들이다. 그 다음은 설립 당시 원곡동 군자새마을금고 옆 일반 건물에서 월세를 내며 야학을 운영하는데 송진섭 초대 민선시장이 1996년 원곡동 195 일원 예전의 군자복지관 건물을 사용토록 해줘 너무 고맙다. 송 전 시장은 현재 한문교사로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보람은 배움을 통해 개인의 변화되어 가는 보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것이다. 적은 예산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때늦은 개인의 학습은 결국 안산이라는 사회가 변해 경쟁력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학창시절 꿈을 이뤄주는 용신학교를 이끄는데 어려운 점은.

“초등과 중등과정은 의무교육이다. 국가 책임인데 민간이 하면 정부 차원에서 예산이 뒷받침돼야 한다. 늦깍이 학생들에게 교육다운 교육을 위한 지원이 안 돼 안타깝다.
교사들의 전문성 확보로 학생들에게 교육의 질도 담보해줘야 한다. 하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끌고 가는데 한계가 있다. 관계기관과 의회, 시민 모두의 협력이 필요한 일이다.
다른 현실적인 어려움은 시청이 제공해주고 있는 35년 전 지어진 예전의 군자복지관 건물이 노후화되고 장소가 협소해 운영이 어렵고 학생이 몰려도 개설을 못하는 경우도 있다.
문해 교육이나 의무교육을 못 받은 사람들은 스스로 못났다는 자격지심을 갖고 살아간다. 이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야 진정한 화합이다.”

-야학으로 시작해 평생교육기관으로 자리매김했다. 교육이란.

“한 인간으로서 곧게 설 수 있는 것이 교육이다. 예전에는 한풀이로 교육을 받았지만 현재는 자아실현을 위한 교육이 참된 교육이다.
교육은 한마디로 주체적인 자아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짧은 목표를 설정하고 한 단계씩 실현해가는 과정이다.”

-용신학교를 찾는 이들을 위해 어떤 사명으로 임하는가.

“용신학교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이 누군가가 옆에서 손을 잡아줘야 시작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앞으로의 삶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조력자 역할에 충실하려고 한다. 단순한 학력보완만을 위한 학교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국가도 안하고 있는 일이지만 나에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삶을 살아가면서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긴다. 친인척이 아닌 사람이 죽은 후에 내 무덤을 찾아와서 죽음을 아까워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이타적인 삶을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다행히 갖고 있는 능력이 이타적인 삶을 살 수 있어 좋다.”

-삶의 자양분으로 삼고 살아가는 좌우명은.

“시인 ‘푸시킨’의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서정시다.
인생의 희노애락과 본질이 무엇인지 관조하고 있고 인간의 근원적 고독에 대해 성찰하고 있다.
이 시는 슬픈 날을 참고 견디면 즐거운 날이 오게 되고 누구나 미래를 바라는 마음이 있어 현재는 우울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지만 좌절과 행복, 걱정과 기쁨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부분이 마음을 흔든다. 이 시가 너무 좋아 기존 노래를 시로 개사해 학생들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의 꿈 너머 꿈은.

“용신학교를 현재보다 더 좋은 환경으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초등, 중등 과정과 외국인이주민 한국어와 한국문화, 문해 과정 등을 교육하고 있지만 다양한 내용으로 목표달성을 할 수 있는 교육기관으로 성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집이 하숙집이 됐다. 경제적인 여유를 떠나 앞으로의 인생은 정신적으로 인간적인 삶을 살고 싶다. 그 뿐이다.” <여종승 기자>

여종승 기자  yjs49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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