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큰 서점에 갔습니다. 습관을 따라서 “베스트셀러” 코너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도 모르게 놀란 책이 있었습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라는 책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이 책이 나온 지 한 4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옛날에만 해도 ‘하나를 알아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 당연한 상식이었습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전문가를 원하는 시대에서는 넓고 얕은 지식보다는 좁지만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을 더 원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얕게’ 아는 것이 흠이 아닌 시대가 됐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얕게’ 아는 것을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부담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뜻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얕음’에 환호를 보내는 것일까요? 제일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취업 때문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으로 돌풍을 일으킨 이후로, 우리나라에서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찾는 기업들이 늘었습니다.

그런데 기업들이 요구하는 인문학은 사실 깊은 차원의 지식이 아니라 실용적인 얕은 지식입니다. 청년들의 취업이 시대적 과제가 된 우리 사회에서 이른바 ‘얕은 지식’, 즉 깊게 알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아는 것은 필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얕은 지식’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게 되면서, 우리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효과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 간에 할 수 있는 대화가 많아졌다는 뜻입니다. 얼마 전 한 어머니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어머니는 예전부터 그림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마침 며칠 전에 읽었던 명화에 관한 책 내용을 기억해서 어머니와 함께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전혀 대화하지 못했을 텐데, 얕은 지식이라도 그림을 알게 되니 어머니와 유쾌한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을 가리켜, 어떤 사람들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지만 진짜 대화가 부족한 시대’라고 말합니다. 먹고사는 것이나 업무적인 것을 빼고는 사람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적인 대화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삶이 각박해져서이기도 하겠지만, 대화를 위해 필요한 공통분모가 없기 때문이 아닐까요?

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대화의 공통분모가 없어지다 보니, 내용면에서나 형식면에서나 삭막해지고 빈곤해지고, 그러면서 더욱 대화가 끊어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지난 몇 년 사이에 ‘얕은 지식’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어쩌면 이런 우리의 모습에 대한 답답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대화는 어떤가요? 깊고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 대화가 아니더라도, 교양으로서의 넓고 얕은 지식이 필요한 대화가 아니더라도, 마음을 터놓고 상대의 이야기를 내 이야기인 것처럼 들어주고 또 나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들려줄 수 있는,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되어주는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지요?

우리 모두에게는 진정한 대화가 필요합니다. SNS를 통해서든, 메신저를 통해서든, 서로의 얼굴을 보며 대화하든, 우리는 서로가 마음을 나누고 있음을 느끼는 대화를 원합니다.

어떻게 시작해볼까요? 내가 먼저 시작해보면 안 될까요? 넓고 얕은 지식을 익히고, 그 중에서 상대방에게 맞는 대화를 만들어 가면, 우리 세상이 지금보다 더 아름다울 것을 확신합니다.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마음을 나누는 우리의 대화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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