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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을 바꾸면 답이 나옵니다”김함겸 <안산대학교 방사선과 교수>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8.06.07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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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프로필
-1959년 1월 27일 경기 화성 출생
-자기공명영상학회 회원(현)
-한국국제협력단(KOICA) 면접위원(현)
-안산대 학생처장·교무처장(전)
-순천향대학교병원 방사선과(전)
-안산대 강의평가 4차례 우수상 수상
-교육부장관상 수상(2015)


인간의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100세 인생 시대가 도래했다. 이처럼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진 가장 근본적인 요인을 영상의학의 발달에서 찾는 이들이 많다.

우리나라에 자기공명영상(MRI) 의학기술이 일반화되지 않은 초창기에 뛰어들어 외국산 장비 운영 1호 기록을 가진 이가 있다.

안산대학교 방사선과에서 인재육성을 하고 있는 김함겸(59·의학박사) 교수가 주인공이다.
안산대 출신 1호 의학박사로도 이름을 올린 김 교수는 학생들이 직접 점수를 매기는 교내 강의평가에서도 4차례나 우수상을 받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라는 권위의식을 갖기보다는 ‘처지를 바꿔서 생각하라’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는 김 교수다.

국가의 백년대계인 인재육성 사명이 쉽지 않은 일 중의 하나지만 미래 세대들의 인생설계를 돕는 일이라서 행복하다는 김함겸 교수를 인물 탐구했다.

-현재 교육 일선에서 일하고 있다.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수도권이 발전하기 전의 경기도 화성은 시골이었다. 화성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농촌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 속에서 생긴 나름대로 살아가는 지혜 외엔 이렇다 할 꿈을 가지 못했다.
청년이 되고 국민의 4대 의무인 병역의 의무를 위해 군 입대를 했다. 누구나 그렇듯이 군 생활을 통해서 인생의 의미를 깨닫기 시작했다.
군 제대 후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공부 밖에 없다는 생각을 했다. 대학에 진학해 뒤늦게 학업을 했다.”

-대학원에서 보건학을 전공해 의학박사가 됐다.

“안산대를 졸업하고 동화약품에 입사했다. 이후 순천향대학교병원 방사선과에서 근무했다. 순천향대 의학과에서 보건학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다.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건국대학교 의과대학에 진학해 예방의학을 전공했다. 안산대 출신 1호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학 중에서 영상의학에 관심을 가진 동기가 있나.

“영상의학이 발전하기 전에는 환자를 치료하는데 진료의사의 비중이 매우 컷다.
1990년대초 대학원에서 자기공명영상(MRI)을 공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에 자기공명영상 기술이 일반화되지 않은 초창기이므로 대부분 관심을 가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진료의사들에게 자기공명영상을 배운 인재들이 홀대당하기도 했다. 진료의 가치기준이 직접 진료에 많이 쏠려 있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진료의사와 영상의학 분야가 충돌하는 시기였다.

병원 근무 시절 진료의사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잘되니까 선배 의사들이 자기공명영상을 공부하라고 권유했다.”

-영상의학의 매력을 얘기해 달라.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는 자기장을 발생시키는 기계가 고주파를 발생시켜 인체에 보내면 인체 내 수소원자핵의 반응으로 발생되는 신호를 컴퓨터로 계산해 인체의 모든 부분을 영상화하는 검사 방법이다.

자기공명영상은 고주파를 이용하는 검사로 인체에 사실상 해가 없다. 조영제를 사용하지 않아도 전산화 단층 촬영검사보다 조직 간의 대조도가 뛰어나다. 특히 신경이나 근육 등 연부조직에 대한 대조도가 높아 진단적 가치가 우수한 검사다.

이제는 자기공명영상이 없으면 진료가 불가능할 정도다. 자기공명영상은 우리나라 의학 발전에 엄청나게 기여했다. 자기공명영상은 공부를 할수록 매력 있다. 보이지 않는 부분을 세심하게 진료할 수 있다. 그 때문에 기술이기도 하지만 예술이기도 하다.

자기공명영상은 예전에 방사선과로 명명했지만 현재는 영상의학과로 불린다. 현대사회는 영상의학을 얼마나 잘 구현하느냐에 따라 환자 생명을 구하느냐 못 구하느냐를 결정할 정도다.”

-안산대학교 방사선과에서 후학양성에 힘쓰고 있는데.

“안산대 출신 1호 의학박사라는 책임감을 무겁게 느낀다. 전문대학이지만 제자들에게 꿈을 심어 주려고 노력한다. 안산대가 3년제 방사선과이지만 박사 학위를 받은 제자가 5명이 넘고 현직 교수도 4명에 달한다.

다른 학과도 마찬가지겠지만 공부도 시기가 있다. 기억력이 좋고 배울 수 있는 젊은 시절에 최선을 다해서 배워야 한다.

영상의학을 잘해야 오진을 줄이고 치료방법이나 약물을 선택하는데 좋은 자료를 제공할 수 있다. 현 시대에서 영상의학은 당연한 것이고 환자의 마음까지 읽어내야 좋은 영상의학을 공부하는 것이다.”

-인재육성을 하면서 제자들에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부분은.

“같은 나무에서 피는 꽃도 일찍 피거나 늦게 핀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늦게 피는 꽃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늦게 출발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배우는 학생들이 늦었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학생들이 대기업이나 대형병원만을 고집하지 말고 본인에게 잘 맞는 곳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항상 강조한다. 어느 곳을 가든지 같이 성장한다는 마음가짐이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김함겸 교수가 가치기준으로 삼고 가르치는 교육철학은.

“교육은 국가의 미래 세대를 키워내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학교에서 몸으로 부딪히다 보면 내 자식보다 가르치는 학생들의 면면을 더 잘 알게 된다.

부모의 마음으로 개개인의 엄마, 아빠 이상으로 학생들을 대한다. 핸드폰에 ‘학교아버지’나 ‘학교아빠’라고 저장하는 학생들도 있다.

학생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기 위해 부모 이상의 마음으로 대한다. 방사선과의 경우 자격증을 따지 못하면 졸업 후 진로가 없다. 학생들이 거부감 없이 공부를 열심히 하도록 동기부여를 잘 해줘야 한다.

학과 특성 상 자격증 취득과정을 거쳐야하는 만큼 학생들의 학습 이해를 돕기 위해 가장 쉽게 가르칠 수 있는 교수법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없다.”

-스승의 날(제34회) 기념 교육부장관상(2015년)을 받았다.

“안산대에서 방사선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교육부장관상까지 받게 돼 개인적으로 영광이다.

안산대에 1993년부터 몸담았다. 방사선과에서의 학술연구 업적과 국내외 연구발표는 물론 학회 활동을 통해 보건의료 분야의 학문적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은 결과다.

교육부장관상이 개인에겐 쑥스럽지만 학교 명예를 조금이라도 빛낼 수 있어 좋았다. 수상은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내일 향해 성장하는데 밑거름이 된다. 상 받은 것을 계기로 더 열심히 살고 있다.”

-안산대 자체 강의평가에서 우수교원 표창을 여러 차례 받았다.

“6년 전인 2013년을 시작으로 2014년, 2015년, 2017년까지 모두 네 차례 받았다. 강의향상평가 우수교원 표창제도는 강의 내용과 방법, 태도, 과목의 이해도와 과제물 등 강의 전반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를 종합하는 것이다.

교육의 효율성과 강의의 질을 높이는데 기여한 교수에게 시상하는 제도다. 네 번씩이나 받아 동료 교수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보람이 있다.”

-젊은 대학생들에게 멘토로서 조언해주는 말은.

“교육은 인격형성 과정이다. 안산대는 실무중심형 인재육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학생들에게 전공지식은 물론이고 올바른 인격형성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기술이나 지식보다 인간관계를 잘하는 인재를 원한다. 기업이나 조직은 인간관계 속에서 협력하며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인사 잘하는 것을 기본으로 예절 지키는 일을 더 중요하다고 메시지를 전하고 실천한다. 심지어 헤어스타일이나 의복까지도 학생들이 기분 나쁘지 않게 친절하게 이야기해준다.

전철을 탔을 때 타인의 시선을 끄는 복장은 바깥 사회에서도 인정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조언하고 있다. 금연 지도도 많이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

“저에게 현재의 길을 열어주신 분들이 있다. 부모님과 함께 석사 과정에서 만난 이병국 교수와 박사 과정에서 만난 장성훈 교수다. 안산대에 몸담으면서 알게 된 강석봉 안산대 초대학장도 있다. 이 분들이 제 인생의 현재 길을 열어 준 멘토다.

이 분들로부터 배려와 섬김, 절약 등의 정신을 배웠다. 특히 강석봉 초대학장의 교육철학에 감명을 받았다.

안산대는 인천기독병원의 작은 건물에서 간호학과로 시작한 학교다. 안산대를 현재 규모의 학교로 키우기까지 주춧돌을 쌓은 강석봉 초대학장의 이념이야말로 ‘존경’ 그 자체다. 아직까지도 부족하지만 닮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삶의 자양분으로 삼는 좌우명이 궁금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다. 저의 좌우명이자 가훈이기도 하다. 직역하면 ‘다른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보라’는 뜻이다.

‘역지사지’에는 겸손도 들어있다. 겸손은 공평하고 평등한 것이다. 성격이 다르거나 공부를 잘하거나 못하거나 모든 이에게 공감대를 가지려고 노력하며 산다.

사회생활이나 강의를 할 때나 마찬가지로 자랑하고 뽐내려하기 보다는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을 기울인다.
교육자 입장이지만 피교육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한 가지도 소홀히 할 수가 없다. 그 것이 바로 ‘역지사지’다.”

-그동안 읽은 도서 중 타인에게 추천할만한 책은.

“오래 전에 나온 책이다. 문창모 박사가 쓴 ‘천리마 꼬리에 붙은 쉬파리’ 자서전이다. 문창모 박사가 의사가 된 지 66년, 나이가 아흔이 된 시점에서 의사로서 일하는 생활을 축복이라고 여기고 출간한 책이다.

안산간호전문대와 안산전문대 시절 이사장을 지내기도 한 문창모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다.

문 박사는 95세에 쓰러질 때까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술을 펼쳤다. 대한결핵협회를 만들었고 크리스마스실을 발행하는 한편 한센병 나환자촌 건설 등 의료계는 물론 사회, 교육, 정치 분야에서도 큰 족적을 남겼다.

삶으로 보여 준 문 박사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절판돼서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은퇴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나.

“은퇴 이후는 영상의학 분야에서 체득한 국가고시 합격경험 노하우를 학교 밖에서 전달하고 싶다. 건강이 허락해서 의사 전달이 가능한 시점까지 하고 싶다.

영상의학 분야도 국가고시 자격증 취득이 쉽지 않다. 문창모 박사처럼 죽는 그 날까지 사회와 이웃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
한 가지 더 하고 싶은 일은 학교 일을 핑계로 하지 못했던 교회봉사도 하며 살고 싶다.” <여종승 기자>

여종승 기자  yjs49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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