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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와 타협하지 않으려고 합니다”최은주 <경기도미술관장>
  • 여종승 기자
  • 승인 2018.06.20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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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프로필
-1963년 10월 26일 서울 출생
-서울대 서양화과 졸업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분관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운영부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개관특별전(2013) 기획
-아시아 리얼리즘전(2010) 기획
-아시아 큐비즘전(2005) 기획
-대통령 표창(2012)


‘큐레이터(Curator)’는 창의적인 전시기획으로 보여주는 전문가다. 우리말로는 ‘학예사’다.
큐레이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을 위해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이나 유물에 대한 수집·관리·연구를 담당한다.

그중에서 핵심은 전시 기획 업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회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관람객이 어떤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지를 찾아 전시회 주제나 컨셉을 정하는 직업이다.
전시기획자인 큐레이터는 섭외 가능한 작가와 작품 수, 소요 예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시 참여를 이끌어내고 전시회 컨셉에 맞는 환경을 연출하는 등 전시 전반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서의 입지를 다진 인물이 있다. 주인공은 현재 경기도미술관을 이끌고 있는 최은주(55) 관장이다.

큐레이터로서 경기도미술관을 ‘현대성을 가진 미술관’으로 자리매김 시켜 대한민국 3대 미술관으로 성장시키겠다는 의지를 가진 최 관장을 인물 탐구했다.

-현재 직업이 큐레이터다.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나.

“서울에서 태어나 신촌 이대 후문 대신동에서 자랐다. 자라난 동네에 거주하는 작가들이 많았다. 박영하, 이반, 이석주, 안동숙 선생 등이 우리 동네에 살았다. 동네에 유화 물감 냄새가 진동할 정도였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그림 레슨을 받았다. 주어진 환경 때문에 자연스럽게 작가 작업실을 드나들며 그림을 배우게 됐다. 어린 시절 박두진 선생 둘째 아들에게 그림을 배웠다.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중학교 때는 한국화를 그렸다. 하지만 책보는 것을 너무 좋아했다. 마음속에서는 문학비평가가 꿈이었다.”

-큐레이터의 길을 걸어오게 된 계기는.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렸고 부모가 미대 진학을 원해서 대학에 들어가 서양화를 전공했다. 고3때 아버지에게 미대보다 국문과 진학을 희망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초반 당시 아버지가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다고 조언해줬다.

아버지 왈 ‘사람이 사는 방법 세 가지가 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생업과 조직의 역할을 수행하는 직업, 자기가 하고 싶은 천직을 하는 예술가다. 미대 진학을 원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딸이 예술에 몰두하는 시간이 지나면 돌아올 집이 생긴다’며 미술을 하라고 설득했다.

그래서 미대를 진학했지만 졸업 시점에 또 다시 고민에 빠졌었다. 결국 서양화과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했다.
대학을 졸업하는 해에 국립현대미술관이 큐레이터를 뽑았다. 당시 모집인원 6명 중 기존 계약직이 4명이고 2명이 신입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 26년을 일하게 된 이유다.”


-큐레이터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얘기해 달라.

“‘큐레이터(Curator)’가 우리말로 ‘학예사’다. 큐레이터는 창의적인 전시기획으로 보여주는 전문가다.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을 위해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이나 유물에 대한 수집·관리·연구를 담당하는 일을 한다.

그중에서도 큐레이터의 핵심 업무는 ‘전시기획’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사회의 관심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관람객이 어떤 작품을 보고 싶어 하는지를 찾아 전시회 주제나 컨셉을 정하는 직업이다.

전시기획자인 큐레이터는 섭외 가능한 작가와 작품 수, 소요 예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전시 참여를 이끌어내고 전시회 컨셉에 맞는 환경을 연출하는 등 전시 전반을 총괄하는 사람이다.”

-큐레이터는 창의적인 전시기획으로 보여주는 전문가다. 그동안의 전시기획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일은.

“설치미술가 김수자 작가의 ‘지수화풍’ 기획 전시다. 2010년 9월 영광원자력발전소에서 마련한 이색적인 비디오설치 미술전시회다. 아름다운 영광 앞바다와 자연을 담은 설치미술이다.


‘지수화풍’ 기획 전시는 원전 방류제 위에 6점의 영상작품을 설치해 ‘지수화풍’을 소재로 담아낸 작품들이다.
영광원자력발전소 공간은 보안구역이자 환경적인 장소다. 원자력 에너지가 인류와 같이 갈 것이냐, 아니냐를 질문 던지는 프로젝트였다.

당시 세계 미술계가 놀랐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이 전시 6개월 후 일본의 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다.”

-국립현대미술관 공채 1기(1989년)로 26년을 근무했다. 큐레이터의 매력을 꼽는다면.

“큐레이터는 예술가는 아니지만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창조자가 만든 예술의 영역을 대중들과 전시 기획 방식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큐레이터가 전시물을 나열하는데 그쳤지만 현재는 해석의 영역으로 넘어왔다. 기획자의 창의력으로 만들어내는 역할을 해야 한다.

현대미술에서의 기획자는 자신의 전시가 얼마만큼 창의적이냐, 진보적이냐, 남들이 보여 주지 못한 시각을 보여주느냐에 승부가 걸려 있다. 현대미술 전시 기획자는 ‘나를 잡아볼 수 있으면 잡아보라’는 생각으로 계속 뛰어야 한다.

하지만 큐레이터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이다. 무척 고단하고 좌절을 많이 겪는다. 기획을 잘 해도 자금이 부족하거나 열정이 부족하거나 우역곡절이 많다. 그래서 스스로에게도 ‘타협하지 말자’고 수시로 다짐하곤 한다.”

-경기도미술관장으로 2015년 4월에 취임했다. 지난해 4월 연임으로 4년차로 접어들었다.

“경기도미술관장으로 취임해보니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가 돼 있었다. 미술관의 모든 기능이 올스톱 상태였다. 취임 후 2년 동안은 현안사항을 챙기고 문제점을 진단하면서 정상화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연임하면서 미술관 고유기능인 전시, 교육, 문화서비스, 관람객 서비스 등을 기반으로 경기도미술관의 위상을 올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경기도민이 1천300만 명이다. 미술관이 명성을 가지려면 차별성 있는 전시와 전시기획력, 국제적인 네트워크 등이 있어야 한다. 이런 요건이 갖춰져야 국내외 영향력을 넓히는 것이다.

미술관의 국제전이 소문이 나면 작가도, 관객도 자연스럽게 몰려온다.
경기도미술관이 그동안 대한민국 미술계에서도, 작가들에게서도, 외국에서는 존재 자체도, 경기도민에게도, 안산시민에게도, 지역사회에서도 외면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 각종 기획 전시를 통해 국내외에 소문이 많이 났다. 현재 많이 끌어올렸다.”

-취임 이후 경기도미술관의 역할은 어디까지 와 있나.

“취임 이후 미술관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경기도미술관장으로 부임하면서 이듬해 특별기획전 ‘4.16동행전’을 열었다. 세월호를 소재로 한 전시가 아니라 사회적 주제를 갖고 미술관 역할을 묻는 전시였다. 공공미술관의 역할과 경기도미술관이 살아있다는 평가를 이끌어냈다.


당시만 해도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던 시절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타협하지 않고 미술관의 본질을 잃지 않으려 노력한 것이다. 공공미술관이 가야할 길을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경기도미술관 소장품 가운데 대표할만한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지.

“작품 수집은 미술관의 중요한 기능 중 하나다. 경기도미술관은 불행하게도 2011년부터 소장품 구입을 위한 예산이 없다.

다행인 것은 경기도미술관이 개관된 2006년부터 수년 동안 80억원을 들여 1990년대부터 2010년까지 한국현대미술 작품 500여점을 구입해 소장하고 있다.

이 기간은 한국적 개념미술로 포스트모더니즘 시기다. 현재 한국 현대미술의 작품성을 보여주고 담론을 형성했던 작품들이다. 소장품을 교육전시로 활용 중이고 대여도 하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이 앞으로 제 기능을 하려면 매년 15억~20억 원의 작품구입 예산이 세워져야 한다.”

-경기도미술관의 해외교류전이 매우 활발하다.

“미술관의 위상은 국내는 물론 해외 작가와의 네트워크 구축에 의해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경기도미술관에서 전시하고 싶다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 해외교류전을 많이 가져야 하는 이유다.

최근 ‘모니카와 떠나는 세계명화여행전’(2015.4~8월)을 비롯 ‘리듬풍경(2015.9~11월)’, ‘영상과 물질-1970년대 일본의 판화(2016.2~4월)’, 프랑스 케르게넥미술관에서 가진 ‘경기도미술관의 단색화 소장품을 소개하는 특별전시(2016.7~9월)’ 등을 가졌다.

지난해의 경우 ‘한국-독일 현대미술 교류전 <아이러니 & 아이디얼리즘>(2017.9~12)’,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라르타미술관에서 열린 ‘<수행의 길 : 한국의 단색화(2017.10~11)’, ‘한-독 현대미술 교류전 2차 순회전(2017.12~2018.1월)’ 등을 마련했다.

올해는 프랑스 벽화전 ‘그림이 된 벽(2018.4~6월)’과 한-독 현대미술 교류전 ‘아이러니 & 아이디얼리즘’ 3차 순회전(2018.4~6월) 등을 선보였다.”

-‘현대성을 가진 경기도미술관’으로 자리매김 시키는 것이 목표다.

“경기도미술관은 진취적인 미술관이다. 미술관 정체성을 위한 방향설정과 함께 당대 미술관에 포인트를 두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앞으로도 동시대에 호흡하는 작가와 실험적인 기획 전시를 할 것이다. 사회 아픔에 대한 질문과 역할을 계속해야 한다. 학술행사를 통해 세월호 이전과 이후를 조명하는 일도 해야 한다. 현대 미술관의 역할이다.”

-경기도미술관을 대한민국 3대 미술관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미션이다.

“미술관도 부침이 있다. 현대 미술관은 전시기획을 통해서 보여주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미술관과 작가가 공동 노력하면 자생력도 생긴다.

경기도미술관이 성장하려면 미술관이 위치한 안산은 물론 경기도, 대한민국 전 국민의 참여 확산으로 번져야 한다.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에 이어 경기도미술관을 대한민국 3대 미술관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비전이다.”

-경기도미술관이 2006년 10월 개관해 12년이 됐다. 그동안 경기도민과 안산시민에게 기여한 점을 평가한다면.

“미술관은 지역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가치가 있고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 경기도미술관도 전시 과정에서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설명하는 도슨트(Docent) 프로그램을 통해 관객과 소통하려 노력한다.

미술관이나 박물관 등에서 전시작품을 설명하는 ‘도슨트’ 프로그램 외에 오는 10월 소장품 선집을 발간할 예정이다.

경기도미술관은 지난해 9월 1일부터 연중 무료 관람에 들어갔고 가을부터 ‘미디어월’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미술관은 상징적인 집이다. 경기도미술관과 같이 해온 사람들이 미래의 꿈을 가져갈 수 있는 의미 있는 집이 되고 싶다.”

-한국 미술이론 발전에 기여한 연구자, 평론가, 미술행정가 등에게 시상하는 ‘석남을 기리는 미술이론가상(2015년 11월)’을 받았다.

“석남 이경성 선생은 미술이론가로서 한국 근현대미술사의 초석을 세운 분이다. 미술비평가로서, 전시기획자로서, 미술관장으로서, 미술행정가로서 한국현대미술의 중심에서 활동했다. 개인적으로 1989년부터 1992년까지 3년 동안 모셨다.

이경성 선생은 한국미술관과 박물관계의 상징 인물이다. 석남을 기리는 미술이론가상은 그동안 작가에게만 주다가 이론가에게도 대상을 넓혔다.

석남 선생이 생전에 지침으로 준 말이 생각난다. 큐레이터는 첫째, 화상들과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하라, 둘째, 누구에게나 빚지지 말라(일적으로나 말적으로나)는 것이다. 공정하게 살라는 말이었다.


수제자가 아니었지만 큐레이터로서 자존심을 지키는데 많은 도움을 준분이다. 그 분을 기리는 상을 받아 너무 기쁘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을 추천한다면.

“중국 고전 ‘도덕경’이다. 도덕경은 노자가 남긴 글이다. 도덕경 내용은 현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많다. 도덕경은 영혼을 일깨우는 통찰이 담겨 있다.

노자가 도덕경에서 잔잔히 들려주는 진리의 말은 물질문명에 대해 지나친 믿음을 갖고 사는 현대인에게 마음을 비우고 조용히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한다.

미술계에서 일하면서 물이 흐르는데 시작과 끝이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사람을 미워하고 미워하지 않는 것들도 모두 포함돼 있다. 도덕경을 통해 ‘흐름에 맡기라’는 진리를 알았다. 현재도 머리맡에 놓고 수시로 읽는다.”

-인생 100세 시대다. 현재 하고 있는 일 이후의 꿈은.

“그동안 전시 기획자로 살아왔다. 앞으로 남은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은퇴 후에도 하고 싶은 전시 기획만 있으면 어디든지 달려갈 것이다. 끊임없이 전시 기획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여종승 기자>

여종승 기자  yjs499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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