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보냈던 마을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아무개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고 가족이 몇 명이며 식사 때가 되면, 어머니 심부름으로 반찬 나누어 먹느라 이집 저집 반찬거리 들고 다녔던 기억이 있다.  저녁까지 친구들과 정신없이 노느라 밥 먹는 것도 까먹어서 여러 번 재촉을 받고서야 겨우 집으로 돌아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처럼 게임에 정신 팔리지 않고 핸드폰이 없어도 불편하거나 심심하지 않았던 시절이다. 마을에 모르는 사람이 없고 어른들께 인사하는 습관이 생겨 지금도 인사 하나는 잘한다. 급격히 산업화가 되고 도시화, 핵가족화가 되면서 가정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위기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웃과의 관계도 예전만큼 살갑지 않고 삭막하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러려니 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필자는 오래 전부터, 마을의 활력이나 관계가 주민의 의지에 달려있다고 생각했다. 주민들이 모일 수 있도록 좋은 분위기와 함께, 마을 일에 참여할 수 있게 역할을 만들어주는 틀을 짜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에 대해 행정이 결정하는 대로 무조건 따라가는 시대는 가고 정보가 공개되는 직접참여의 시대로 스마트하게 변하고 있다.

성태산에 건물을 짓는다고 가정해 보자. 성태산은 아이부터 어른까지 친근하게 이용하는 마을의 자원이고 수백 년 전부터 백제와 고구려 땅에 속하며 인고의 세월을 지켜 온 힐링의 장소인데 주민의 동의 없이 개발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까? 가능한 주민들이 참여하여 적합한 장소를 정하는 일에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는 과정을 공유하고 다수의 의견을 모은다면... 그래서 그 결과를 바탕으로 행정에 대안을 제시하여 주민의 역량을 보여준다면 의미 있는 선순환의 모델이 되지 않을까!

최근 전국적으로도 주민의 의견이 반영되는 사례들이 주목을 받고 점차 많아지고 있는데 이것은 분명 집단이기주의인 님비현상과 대비되는 청신호다. 실제로 일동 행정복지센터 옆에 체육문화센터와 주차장이 조만간 시공되는데 주민들 중 관심 있는 분들의 요구로, 건물의 쓰임새와 공간 활용 등을 고민하는 디자인대학이 새해 벽두부터 열렸고 많은 주민들이 열정적으로 참여했다. 전문가와 행정, 주민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좋은 아이디어가 많이 나왔고 ‘건물을 짓는데 반드시 주민의 참여를 보장한다’는 문구를 명시하자는 요구까지 이어졌다.

특히 백년 후를 내다보는 철학을 담자는 주민들의 말씀에 감동이 됐다. 그런데 적당한 부지가 없어 공원녹지에 건물을 짓게 되었다. 어떤 주민은 녹지를 줄여가면서까지 해야 할 가치가 있는지 물었고, 주차장과 녹지 중 어떤 것이 중요한지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한다는 의견도 주셨다. 한 뼘의 녹지를 만들기 위해 들어가는 예산과 노력을 생각하면 우리의 결정이 너무 쉽게 이루어졌다는 지적이다.

한편에서는 “악마의 주차장”이라고 불릴 만큼 주차 문제가 심각하고 대안이 필요하기 때문에 주차장을 더 늘려야 한다는 주민도 많았다. 짓는 김에 고삐를 당겨 최대한 주차장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의견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듣고 함께 고민하는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마을에서 활동하면서 같이 살아가는 협력의 길을 찾으려고 무단히 노력했고 어느 정도는 진심이 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다름을 인정하고 조율하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길을 찾는데 각자 의견을 보태고 참여하는 과정이 진정한 민주주의라고 한다. 토크빌은 주민자치를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표현했다. 격론을 오가더라도 주민 스스로 결정하고 실행해 가는 과정이 중요하며 이것이 체계화 된다면 자치의 새로운 길이 열릴 거라고 믿는다.

생떽쥐페리의 어린왕자에 보면 “5000송이의 장미꽃보다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바람을 막아 주며 정성을 다한 나의 한 송이 장미가 더 귀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관심을 가지고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소중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필자에게도 마을은 한 송이일지라도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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