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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적
  • 안산신문
  • 승인 2018.10.24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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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지웅, 문학동네)

빨간 문을 연다. 젊은 작가의 열정만큼 강렬한. 그가 말하는 나의 친애하는 적은 누구일까 궁금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두기란 어렵다. 너무 다가가면 아픈 일이 생기고 너무 멀어지면 외롭기 짝이 없다. 주변 모두를 친애하는 적으로 보면 상대를 존중하면서 동시에 조심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작가는 영화평론가이자 방송인이다. 항상 자신을 “글 쓰는 허지웅입니다.”라고 소개한다. 전문분야는 영화비평이지만 시사비판적인 글로 구설에도 자주 오른다. 평소 다양한 실언으로 대중들로부터 호불호가 갈리는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까칠하고 직설적인 발언을 잘하는 그가 친애하는 적인 셈이다.

목차를 살펴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장이 슬프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추는 모두 채워져 있다거나, 우리는 슬플 시간도 없다고 한다. 바쁜 세상이다. 슬픈 게 취미인 사람이 있을까. 슬퍼할 겨를이 없으니 슬퍼해서도 안 된다. 곳곳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장이 많이 쓰였다.

천장이 슬프다는 건 비어있는 귀퉁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내려앉아 나를 누른다. 숨이 막히고 눈물이 새어나온다. 살다보면 별일이 다 있다.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니까. 고통을 스스로 별일로 받아들이는 것보다 남들이 이해할 수 없는 누군가의 사연을 별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힘들다. 그의 슬픔이 드러난다.
 
작가는 나의 가장 친애하는 적으로 엄마는 꼽는다. 글을 쓰면서 독자는 늘 한 사람 엄마였다. 엄마가 읽어주고 엄마가 재미있다고 말해주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한다. 그의 말처럼 엄마는 거대한 사람이다.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엄마한테는 꼼짝 못한다.

영화 평론가답게 영화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별일이 다 있기 때문이라는 말이 아름답게 쓰인 영화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라고 한다. 라스가 비앙카와 관계를 맺고,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고 질투하고, 징징대고 안기고 치유 받다가 급기야 이별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말한다.

<곡성>은 몇 년 전,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봤던 공포영화다. 그는 곡성이 믿음에 관한 영화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보는 동안 사악함에 몸서리친 영화였다. 감독은 자신의 말을 신뢰하지 않는 자에게 오랫동안 시달렸을 거라고 한다. 살인과 영적 능력, 귀신들림, 엑소시즘, 살아있으면서도 죽은 사람. 그의 말처럼 다 보고 나서도 수수께끼를 남기는 영화다. 공포를 아직 느껴보지 못했다면 책이든 영화든 강력히 추천한다.

형이 등장한다. 작가에게 철 지난 농담을 잘하고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고 이혼 이야기를 들어주는 형. 체중 감량을 하던 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한 형. 사랑해라는 말을 미처 하지 못했는데 떠난 형은 너무나 잘 알려진 마왕 신해철이다. 심각한 우울증을 앓으며 떠난 형을 떠올리는 일은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궁금했던 작가의 삶에 관한 이야기는 없지만, 영화의 새로운 해석이 궁금한 독자라면 시원하게 풀어줄 것이라 기대한다. 종잡을 수 없는 그의 언변처럼 날카로운 그의 눈빛처럼 역사란 누구에게나 불편해야만 정직한 것이라고 말한다. 국정교과서는 결국 망하게 할 것이라는 쓴소리도 한다. 작가는 따뜻한 말 대신 까칠한 말을 잘한다. 그런 그를 응원하는 사람도 많다. 나의 친애하는 적처럼 차가우면서 뜨거운 말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 그는 지금이 ‘끓는점’일 것이다. 차갑게 끓는점. 

                                              홍혜향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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