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는데도, 소년은 도시락을 꺼내기가 망설여집니다. 보자기에 곱게 싸인 양은 도시락을 여는 순간 아이들의 핀잔이 쏟아집니다. 오늘도 역시 멸치랑 김치를 싸왔다고, 너희집 반찬은 왜 맨날 ‘치’자 돌림이냐고 말입니다.

소년의 아버지는 작은 재래시장에서 건어물 가게를 했는데, 장사일이 대부분 그렇듯 매일 가게문을 닫는 시간은 새벽 한 두시였습니다. 그렇게 집에 돌아오면 고단한 몸을 이끌고 몇 시간 못자 일어나야 했습니다. 새벽부터 학교에 갈 아들을 위해 점심 도시락을 싸야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집 같았으면 새벽밥을 짓는 것은 어머니의 몫이었을 텐데, 소년의 집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소년의 어머니는 병중에 있었고, 늘 자식들의 뒷바라지를 해주는 일은 아버지의 몫이었습니다.

소년이 반찬투정을 하는 날이면 아버지의 잠은 4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계란옷을 입힌 분홍 소시지가 익어가는 냄새를 맡으면 그날 아침 소년의 등굣길은 신이 났습니다. 그렇게 아버지와 어머니 두 사람의 몫을 살았던 소년의 아버지는 그래서인지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정작 자신은 매일 김치로 끼니를 때우며, 닳고 닳은 신발을 신고 다녔지만, 내색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은 뒤늦게서야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소녀는 오늘도 술에 잔뜩 취해 비틀거리며 집에 돌아온 아버지의 모습이 보기 싫어 자리를 피해버립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돈이 없으면 사채를 끌어다가 도박판에 갖다 붓는 중독자였습니다. 생계를 위해 하루도 쉬지 않고 돈을 벌러 나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소녀는 아버지에 대한 증오심이 커졌습니다. 그리고 대학 진학마저 포기 하고, 생활비와 쌍둥이 남동생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치열한 삶을 삽니다.

아버지 대신 생계를 위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던 소녀의 어머니는 결국 병을 얻게 됩니다. 아픈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 어렵게 마련한 수술비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한 아버지의 손에 넘어가 도박비로 쓰여 버립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쓸쓸히 죽음을 맞이했고, 소녀는 아버지와의 인연도 끊어버립니다.

결혼할 때가 되자 아버지가 창피했던 소녀는 거짓으로 고아 행세를 하며 부잣집 남자와 결혼을 합니다. 남은 가족들에게는 저 멀리 유학을 떠나겠다는 말 한마디와 함께 돈 몇 푼을 남기고 말입니다. 하지만 거짓말로 시작된 결혼 생활은 모든 진실이 밝혀지며 비극적으로 끝을 맺습니다. 모든 사실을 알고 있던 아버지는 위태로운 삶을 사는 딸을 묵묵히 지켜보며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돌아갈 곳 없이 혼자가 된 그녀는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두 아버지의 이야기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첫 번째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한없는 희생과 헌신을 보여준 아버지이고, 두 번째 아버지는 도박에 빚을 지고 가족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 못난 아버지였습니다. 하지만 두 아버지는 똑같이 자신의 아들과 딸에게 변함없이 소리 없는 사랑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분명 상대가 알아주지 않아도 하는 ‘외로운 사랑’이었습니다.

오늘 나에게도 소리 없이 사랑을 보내고 있는 분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미처 깨닫지 못해도 변함없이 사랑과 응원을 보내고 있는 사람을 돌아보시고, 먼저 사랑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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