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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여행이야기<9>갑자기 변한 일기로 하게 된 행복 여행
  • 안산신문
  • 승인 2018.11.14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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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시인 이해인의 저서 ‘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 중에)

 인생이 계획대로 만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게 믿고 사는 사람도 있어 계획을 잘 세우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세상의 일들이 마음대로만 풀린다면 재미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의외로 많다. 실제로 일을 하다 보면 자주 기대하지 않은 사건·사고에 마주친다. 신안군에 가거도라는 섬이 있다. 소흑산도라고 더 알려진 섬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섬이고,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세 시간 이상을 가야 있다. 어쩜 제일 외딴 섬으로 생각되는 섬이다. 울릉도보다는 가깝지만, 사람들에겐 훨씬 더 멀게 느껴지는 곳이다.


  군의 부탁으로 가거도의 한 폐교를 리모델링을 하려고 세 전문가와 목포로 내려갔다. 항 근처에서 잠을 자고 아침 일찍 부두에 나갔으나 폭풍주의보로 적어도 이틀 이상은 배가 뜰 수가 없다고 하였다. 아직 3월이어서 서풍이 거친 탓일까? 전날에도 예측이 되지 않았던 바다 사정이 험하게 변하였다. 일정을 3박 4일로 잡고 떠난 여행이라 집으로 돌아가던가 아니면 이곳에서 다른 여행을 하든지 결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다른 세 사람에게 목포와 멀지 않은 장흥을 여행하자고 제안하였다. 모두 동의하였지만, 함께 여행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장흥에는 언제나 반겨줄 오랜 친구가 그곳에 살기도 했고, 몇 번 방문했던 터라 필자에겐 낯선 곳이 아니었다. 장흥은 예로부터 물산 풍부한 고장으로 이름나있다. 다양한 농수산물이 생산된다는 것은 음식문화가 발달했다는 말과 다름없다. 그래서 먹거리와 볼거리까지 많은 장흥이 떠올랐던 것이었다. 남북으로 긴 지형 이어서인지 산과 들 그리고 바다에서 생산된 산물들이 이곳에는 많다. 산에서 나는 버섯과 들판에서 자라는 한우 그리고 바다 키조개의 조개관자를 함께 먹는 장흥삼합이 탄생했다. 전국에서 한우가 가장 많은 고장에 키조개도 다산하기에 최고의 삼합 조건을 갖추었다.


  이 해안지역은 다른 지방과 비교해 짧은 해안선을 가졌지만, 해산물이 풍부하다. 바지락도 많이 난다. 아마 3대 주산지일 것이다. 안양읍 수문리에 가면 유명 바지락 횟집들이 있다. 부안에는 바지락죽 있고 안산 대부도에는 바지락칼국수가 있다면 이곳은 회가 있다. 그러나 날것으로 먹는 것은 아니다. 살짝 데친 다음 식초와 여러 가지 야채를 함께 새콤, 달콤, 맵싸하게 무친 것이다. 식초의 맛과 양이 회 맛을 좌우한다. 그것뿐인가? 굴구이집이 모인 곳도 있고, 갑오징어를 잘하는 유명 식당도 있다. 그 집엘 가면 갑오징어 회를 먹고 나면 먹물로 밥을 비벼주는데 일품이다, 이탈리아 요리 가운데 오징어먹물 리소토가 있는데 누가 먼저인지 따져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맛은 이곳이 확실히 우위인데.


  우린 두 곳에서 전통 차를 마시는 호사를 노렸다. 다 자연산 차나무 잎으로 만든 것인데 두 집의 은근한 경쟁 관계도 재미있었다. 한 곳은 작고 예쁜 연못가에 있는 다원에서는 청태전이라는 엽전 모양의 발효차를 접했다. 맑고 깔끔한 뒷맛이 그만이었다. 본디 한 사찰에서 전해 내려온 것인데 이곳에서 대중화와 명품화를 노력하고 있었다.

여러 차 심사에서 최고상을 받았다. 다른 한 곳은 한 과수원에 은거한 한학자가 만든 것인데 혼자만 즐기는 것을 운좋게도 함께 할 수 있었다. 이 차 맛은 좀 더 진한 향을 내어놓았다. 좋은 차 맛은 오랫동안 입안을 맴돈다. 조금 과장해서 쌀쌀한 초봄에 마시는 땅이 키워낸 온기는 뱃속을 깨끗하게 씻어주었다고 하면 어떨까?


  이 특별한 고장의 진산이라고 할 수 있는 천관산 아래에는 실학자인 존재 위백규의 고택을 비롯한 여러 고택의 특별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여행도 되었다. 존재 고택에서 사랑채와 별도로 만들어진 서재 별채는 건축학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 하였다. 이 서재가 참 부러웠다. 주변 풍광과 잘 어울리고 있는 고택은 그 자체가 자연 일부가 되어 있었다. 고택의 뒷산이나 여러 산길에 떨어진 동백꽃이 수없이 많았다.

붉디붉은 꽃이 통째로 길가에 널려있으니 처연해 보였다. 선비의 고장 장흥의 봄날은 특별한 꽃과 이별하면서 시작되고 있었다. 제주일보의 부영주 기자는 그의 칼럼 ‘동백꽃이 사랑받는 이유’에서 이를 “옛 선비들의 말이 꽃의 절정은 낙화 때라고. 그 말이 조금도 과장이 아닌 듯하다. 필 때보다 질 때 더 아름다운 게 생멸(生滅)의 미학이라고 했으니. ..... 마치 기다렸다가 한순간에 무너져내리는 눈사태처럼 비장한 아름다움을 최고점까지 끌어올리고 마지막 순간에 불꽃으로 사그라지는 황홀한 정사(情死) 같다.”라고 표현했다.

 

사진 1. 숙소로 올라가는 길은 배롱나무 길이었다. 봄비가 촉촉이 내려 분위기 있는 봄 풍경을 연출하였다.
사진 2. 갑오징어 먹물 비빔밥은 이 특별한 고장을 더 빛나게 하였다.
사진 3. 존재 고택, 안채와 조금 떨어진 건물이 서재이다.
사진 4, 동백꽃은 어디에나 있었다. 그 처연한 아름다움이 여행객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았다.

안산신문  ansam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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