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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여행이야기<12>떠나는 날 새벽에 결정한 제주여행
  • 안산신문
  • 승인 2018.12.0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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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정상적인 사람들은 남의 의도를 읽는 비범한 재능을 지니고 있으며, 그럼으로써 남을 평가하고, 받아들이고, 남과 결속하고, 협력하고, 남을 험담하고, 통제한다는 것을 발견해왔다. 각자는 자신의 사회관계망을 통해 소통하면서, 거의 끊임없이 지난 경험을 반추하는 동시에 이런저런 미래 예측 시나리오가 어떤 결과를 빚어낼지 상상한다. 에드워드 윌슨의 ‘인간 존재의 의미’ 중에서.

자정이 넘어서야 그래도 가야 한다고 마음을 먹었다. 새벽 2시가 한참 지나 아침 6시 30분에 알람을 맞추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항공권 구매를 위하여 컴퓨터에서 검색하면서 깜짝 놀랐다. 일요일에 제주도 가는 표를 구할 수 없을 거로 생각하면서도 혹시 한 장이라도 있기를 기대하였다.

그런데 웬일인가? 값싼 표가 많았다. 그것도 매시간 모든 항공사에. 그래서 고를 수가 있었다. 12시까지 서귀포로 가려면 적어도 9시 반 비행기는 타야하고 그러려면 집에서 8시에는 나서야 했다. 제주로 가는 편은 저가항공에서 28,000원 그리고 오는 편은 월요일 오후가 쌌다. 오후 3시 것으로 40,000원. 비싼 값이라도 치르더라도 그 바다를 가려 했는데 오히려 엄청 싼 표를 구하다니 기적이었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7시 반이 지나고 있어 자는 아내를 깨워 공항까지 태워주길 부탁하였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아내는 물었다. 왜 갑자기? 서귀포에서 다이빙샵을 하는 아내도 잘 아는 한 후배가 있다. 그 후배가 스쿠버다이빙(SCUBA diving)을 10,000회 하는 날을 일요일로 잡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못 가더라도 이 기록을 경신한 날은 꼭 가야 한다고 했다.

아내는 이해해 주었다. 일 년에 300회씩 하여 33년을 해야 이룰 수 있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아내도 다이빙을 배워 이 갑작스러운 여행을 이해했다기보다는 필자가 한때 미치듯이 바다를 찾아다닌 시절이 있었던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제주에는 매년 열 차례 이상을 다니는 동안 자주 만나는 동지 같은 지인인 것을 알아 말릴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장비를 챙기지는 못했지만, 제주 바다로 향하는 기분은 마냥 첫 다이빙을 떠나는 초보자처럼 설렜다.

 제주공항에서 SNS를 보니 필자와 비슷한 시간에 도착하는 팀들이 있었다. 다이빙계 양대 잡지 ‘수중세계’와 ‘해저여행’의 발행인들을 만났고, 곧 대구팀과 부산팀이 온다고 해서 함께 서귀포로 넘어가기로 하고 기다렸다. 대구팀은 한국 수중계에서 독특한 개성으로 40년 이상 위상을 유지해 온 팀이었다. 회원들은 서울사람 처지에서 보자면 좀 거칠지만, 인정이 넘치고 의리가 좋다. 물론 술도 세다. 다이빙하는 사람들끼리는 다른 분야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정과 설이 넘친다.

특히 필자가 처음 다이빙을 배우든 1979년 전후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다이빙하는 사람들끼리는 함께 활동하지 않더라도 서로 알 정도로 소문의 전파가 빨랐다. 물론 과장과 재미가 섞여서. 그러고 만나면 금세 형, 동생이 되고 새 조직이 되었다.

 다이버들의 만남은 대부분 정기 모임이 아니면 제주도 서귀포에서 만나게 되었다. 서귀포항이 일종 집결지이고, 문섬의 그야말로 성지였다. 한국 다이버라면 누구나 문섬을 거치게 된다. 그래야 말을 나눌 수 있고 다이버임을 인정받는다. 후배 김병일은 이곳을 만 30년 이상 지켰다.

어떤 해는 500회 이상 물속을 찾았고, 허리가 심하게 아픈 해에도 140회 이상을 하였으니 철인이다. 더 대단한 것은 만 번을 한 것이 아니라 만 번의 기록을 남긴 것이다. 수중계에서는 그 기록을 로그라고 한다. 그러니까 한국 최초의 10,000회 로그 다이버(log diver)인 것이다. 앞으로 이 기록은 10년 이상 깨어지기가 어려울 것 같다. 국제적으로도 대단한 기록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귀포로 가는 공항버스 안은 이내 시끌벅적하였다. 오랜만에 만난 친형제처럼 지난 소식을 묻고 수중계의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낄낄대며 대화를 나누었다. 한 무리의 늑대들이 어울려 서로를 위로하고 서열도 정하는 것처럼. 남쪽 바다로 가는 한 시간 반 동안은 필자는 이 세계를 정말 그리했다는 것을 느끼는 시간이었다. 바다 사나이들이 솔직담백함과 바다를 사랑하는 깊이가 말하지 않아도 소통이 되었다. 못 만났던 사람들의 안부도 묻고 새 소식도 전달한다. 또다시 만날 것을 기약한다.

온 나라 다이버들이 기록 다이빙을 보고 함께하기 위해 문섬 한개창에 모였었다. 우리 모두의 젊음을 쏟았던 그 바다, 그 물이었다. 가슴이 벅차고 이들과 함께했던 시간과 호흡들이 생각났다. 수면을 향해 끊임없이 올라가던 버블들이 보였다. 그가 시퍼런 물속으로 뛰어드는 순간 우리가 모두 함께 뛰어들었고, 지난 세월을 그리워했다.

끝나고 그의 제주 친구들이 마련한 파티에서는 모처럼 파티다운 파티를 즐겼다. 맛있는 음식 &특히 제철 대방어회와 소라물회,명료하지만 투박한 음악 그리고 약간은 소란했지만, 음악을 방해하지 않은 적당한 소음이 잘 어울려 멋진 분위기를 연출했다. 수중계의 전설들도 세월의 흐름을 아쉬워하면서 자주 교류하기를 기대하자며 멋진 기록의 날을 보냈다.
 
사진 1. 제주 문섬의 수중 전경. 한국 다이빙의 성지라고 할 수 있는 이곳은 전 세계에서 연산호가 가장 아름다운 곳 중의 한 곳이다. (해저저널 제공)
사진 2.10,000번을 적어 낸 수중을 다녀온 기록들. 강한 의지와 열정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진 3. 축하 행사가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바라보면 문섬의 부속 섬인 새끼섬과 조금 멀리 서 섬이 보인다. 바로 이 섬들 주변이 한국 다이버들이 제일 사랑하는 바다이다.
사진 4. 전국에서 온 다이버들이 함께 다이빙하며 축하해주었다. 노란색의 물안경을 쓴 이가 김병일 다이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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