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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중 잠시 시간이 남을 땐 책방에 가자제종길의 여행이야기<13>
  • 안산신문
  • 승인 2018.12.12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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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작가를 만나러 온 이들, 혹은 어딘가에 앉아 조용히 책에 몰두하는 이들은 대부분 ‘그녀’들로, 연령대가 다양하다. 특히 하얀 머리의 호호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책을 고르고, 즐겁게 수다 시간을 보내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그것은 나의 그레이 로망이기도 하다. - 구한정의 ‘북카페 인 유럽’ 중에서 -
 

  하루가 비었다. 믿었던 이들도 삼삼오오 뭉쳐서 어딘가로 사라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체 여행으로 오지 않았을 때 자주 겪는 낭패감이다. 어디에도 내가 낄 틈은 없어 보였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생태학대회에 참석했을 때였다. 혼자 떠나 온 여행일 때 외로움은 기본이라는 생각을 늘 하곤 했지만, 그땐 다른 때보다 쓸쓸함이 훨씬 강하게 밀려왔었다.

밤이 늦도록 다음 날 무엇을 할지를 정하지 못했다. 조금 늦잠을 자고 아침에 결정하지 하고 잠을 청했다.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인 작가나 학자들은 결정을 마지막까지 미루어두는 습관이 있다. ‘어떻게 되겠지’이다. 딱 그런 심정이었다.

 다음 날 아침에 딸이 보내준 부탁 메모를 보다가 한 책방의 주소를 발견하였다. 그래 오늘 하루 책방 여행을 해보자고 결정하였다. 갑자기 그 하루가 즐거워졌다. 런던의 유명 관광명소를 찾는 것보다 훨씬 잘한 선택이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책 수집을 무작정 좋아하는 필자의 자화자찬이다. 런던 시내에 있는 유명 책방들의 주소를 찾고 관광지도에 점을 찍고 이동 중에 중고서점가를 지나도록 계획을 세웠다.

책방 주변의 거리도 살펴보면서 지루하지 않게 다녔다. 눈에 띄는 책을 하나 둘 사다 보니 숙소로 돌아갈 때 양손에 책이 가득하였다. 지하철을 오르고 내릴 때는 허리도 아프고 다리도 저렸다. 잠시 책을 이렇게까지 사야 하나 하고 후회를 했다. 하지만 책들은 지금 필자의 책 창고 한 곳을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온종일 책방에 소비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여행 중 잠시 시간이 날 때 책방을 찾으라고 권하려는 것이다. 책과 하루는 소비하는 것은 꽤 힘든 일이고, 책을 들고 먼 길을 걷는 것은 고난인 까닭이다. 그러나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정도면 어떨까? 먼저 숙소나 약속 장소 근처에 있는 책방을 찾아라. 투자한 시간에 비교해 책방에서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다. 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디자인을 볼 수도 있고, 좋아하는 분야의 잡지를 만날 수 있다. 유럽이나 일본, 미국이면 작은 동네라 할지라도 그 동네 서점에서 주민이 지은 책 한 권쯤을 마주할 수도 있다. 아니면 그곳의 역사나 자연에 관한 책이라도. 중고서점이라면 우리나라에서 단 한 권도 없는 책을 가질 수도 있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연수할 때인데 그리 멀지 않은 가든 베이(Garden Bay)로 연구소 동료들과 여행을 하였다. 그곳에서 점심을 하게 되었는데 식사 후 한 시간 정도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필자는 서점을 찾았고 마침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아주 작은 중고서점인데 책도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한 쪽에 푸른색 표지의 낡은 책이 눈에 확 띄었다. 이것이 웬일인가? 꼭 읽어보고 싶었던 그 책이었다. 해양 생태학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루이스(Lewis J.R.) 교수의 1964년 저서 ‘바위해안 생태학(the Ecology of Rocky Shores)’이 시골의 작은 책방에서 발견된 것이었다. 가격도 쌌다. 필자를 찾아 책방으로 온 다른 학자들도 그 책을 보며 부러워했었다.

경험해 보시라! 잠시라도 책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북카페나 큰 서점을 찾아가 보면 그 의미를 금방 알 수 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모두 미소를 머금고 있거나 평안한 얼굴을 하고 있다. 화난 표정으로 읽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학생들이라면 수많은 책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분야를 찾아 미래를 개척해 나갈 수도 있다. 책방에서는 온라인에서 표적을 정하고 속도감 있게 책을 사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것을 제공한다. 낭만적인 분위기와 지적인 만족 그리고 스트레스로부터 해방된 휴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책이 없는 곳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여행을 떠날 때 무조건 책을 한 권을 사서 가방에 넣어 가면 된다. 혼자가 되거나 잠시 짬이 날 때 그 책을 꺼내어 읽으면 되니까. 도로변이나 공원에서 아니면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거나 카페에서 친구보다 조금 일찍 왔을 때 책을 읽으면 된다. 모두가 핸드폰을 바라보고 있을 때 혼자 책을 보고 있으면 어떨까? 상상에 맡기겠다. 어쩌면 여러분들 중에 책을 좋아하게 되어 나중에 북카페나 큐레이션 서점을 열지도 모른다.
 
 사진 1. 캐나다 가든베이의 중고서점에서 발견한 국내 한 권뿐이라고 믿는 책의 표지
사진 2. 책은 가장 품위있는 기념품이다 (영국 자연사박물관 기념품점에서)
사진 3. 중고서점에는 컴퓨터에서도 찾을 수 없는 자료들이 가득하다 (일본 동경).
사진 4. 책을 수집하다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생기고, 경우에 따라서는 수집자를 전문가로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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