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기획/특집 제종길의 여행이야기
한번 여행으로도 평생을 이어갈 우정이 쌓인다.제종길의 여행이야기<16>
  • 안산신문
  • 승인 2019.01.09 12:30
  • 댓글 0

 

해묵은 바위의 피부처럼 회색 조로 곱게 두툴거리고 그 위에 거리의 노상 여인, 농부, 노동자, 시골의 가난한 애들이 까만 선으로 그려 나오는, 그리고 그지없이 한국적인 이미지를 펼치던 그의 마티에르(질감)와 은근하게 깊숙한 향토색은 전혀 그만의 독창적인 표현이었다. - 네이버 지식백과 ‘화가의 생애와 예술세계 박수근’에서 인용 -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여행하다 보면 상대에게 이전에는 잘 몰랐던 장점들을 알게 된다. 좋은 사람들하고 갔으니 그렇지라고 지적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하지만 여행이 그렇게 만들기도 한다. 함께 한다는 자체가 서로에게 어느 정도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측면이 있어서다. 장점을 본다는 것도 단점을 이해하고 그것을 보완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더군다나 나이 50세를 넘어선 사람들끼리 며칠을 함께 하려면 배려심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진솔한 이야기를 끌어내고, 대화가 오랫동안 감추어 두었던 고민거리를 해소해 서로에게 위안이 된다면 일행에게는 최고의 여행이 된다. 우정이 꼭 오랫동안 정을 쌓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하다 보면 하루 이틀에도 어떤 이에게는 함께 이웃하여 살면 참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여행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갑작스러운 주선으로 일본 나오시마를 여행했던 세 부부가 다시 만나 즉흥적으로 국내 여행을 하게 되었다. 누가라 먼저고 할 것도 없이 모두 같은 생각을 하고 있어 추진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제안된 저녁 자리에서는 내내 여행이 가져다줄 즐거움을 앞서 즐겼다. 처음 만나 떠날 때보다는 무계획이 주는 우려와 불안감은 없었다.

이 조합이라면 어떠한 경우라도 흥미를 있을 것이라는, 어쩌면 우리끼리 지내는 것만으로도 여행할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어떤 생각이었던 서로에게 ‘같이 갑시다.’ 하는 마음이 전달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목적지는 ‘양구’였다. 첫 여행처럼 필자가 불쑥 제안하였고, 이번에 적극적인 찬성으로 시작하였다. 여행이 떠나기 전부터 필자에 대한 배려가 시작되었다.

 벼가 익어 푸른 하늘과 너무나 잘 어울리는 초가을이었다. 한반도의 정중앙에 있는 양구는 강원도의 장점들을 다 골고루 가지고 있는 고장이었다. 게다가 깨끗하기까지 하였다. 아마 전국 군 단위 지역 중에서 가장 깨끗한 시가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양구를 여행할 때마다 그런 느낌을 받았고, 이 점을 이야기할 때마다 일행들은 늘 동의하였었다. 안내자를 만나려고 읍내를 들어서면서 같은 말을 하였더니, 동행들은 “정말 그렇네요.”라며 놀라워했다.

갑자기 떠나 온 여행이라 숙소를 ‘양구 생태관광협의회’에 부탁을 하였고, 기꺼이 간단한 안내와 일정을 추천해주겠다고 하였다.

여유를 가지고 하는 여행이니만큼 이동시간을 봐가면서 정하자고 하였으나 볼 곳이 너무 많고 지역이 아주 넓었다. 꼭 봐야 할 곳을 현장에서 논의하여 ‘박수근미술관’, ‘두타연’, ‘을지전망대와 펀치볼’, ‘양구 백자박물관’ 등으로 네 곳을 잡았다. 다 대중적으로 인기가 있는 곳이지만 그래도 생태관광인 점과 지역 문화의 강점을 고려한 목적지 선정이었다. 도착하는 날은 읍내에 있는 미술관을 먼저 보고 다음 날 세 곳을 가기로 하였다.

 박수근은 양구가 자랑하는 미술인이다. 독학으로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하였던 그다. 단순한 선과 구도, 회백색의 화강암 같은 질감으로 우리의 토속적인 미감과 우리네 정서를 담은 가장 한국적인 작가로 한국인 사랑을 많이 받는 작가이다.

작품 가격이 가장 높은 것으로도 유명하다(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인용). 지난 2014년에는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그의 서정성은 태어나고 자란 고향 양구의 자연에서 온 것이라는 생각을 작품을 보면서 하게 되었다. 미술관은 회백색의 돌로 쌓아 올려 지었으며, 입구 옆에는 작가의 동상과 작품 ‘빨래터’를 재현해 놓았다. 부부의 무덤도 바로 옆 언덕배기에 있었다.

미술관 일대를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박수근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이처럼 고향에서 사랑을 받는 작가는 어디에도 없을 것 같았다. 부러웠다.

저녁에는 한 부부가 애써 가져온 다기 세트로 ‘보이차’로 밤새 이야기꽃을 피웠다. 그날부터 보이차에 매료되어 지금까지 즐겨 마시고 있다.

다음날 하늘은 쾌청하여 다시 한번 날씨 운을 확인시켜 주었다. 양구의 최북단이면서 가장 고지대인 해안면에는 ‘을지전망대’가 있다. 미리 통보된 명단을 확인 후 전망대에 올라 북쪽으로 바라보니 비무장지대와 인근 북한 땅이 눈 아래로 보였다. 전망이 시원하였다. 꼭 보전해야 할 우리의 유산이었다. 뒤돌아 남쪽을 내려보려다 보니 넓은 분지가 펼쳐져 있었다.

높은 산으로 에워싸여 있어 큰 화채 그릇처럼 보였는지 미군은 이곳을 ’펀치볼(Punch Bowl)’로 불렀다. 한국전쟁 격전지 중 한 곳이었다. 여의도 면적의 여덟 배나 되는 이곳은 이젠 양구 제일의 특산품 시래기의 주산지가 되었다. 시래기 마을에서 자연식 식단으로 점심을 하고, 방산면으로 옮겨와 ’양구 백자박물관’과 ’두타연’을 방문한 후 돌아 나오면서 되돌아보니 양구 초입에 ‘양구에 오면 10년은 젊어진다.’라는 커다란 문구가 보였다.
 
 

안산신문  ansam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