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땟골마을을 아시나요양진영<법무법인 온누리 대표변호사>
  • 안산신문
  • 승인 2019.03.20 1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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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에 ‘땟골’이라고 불리는 부락공동체가 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 우즈벡에서, 러시아에서 뿌리를 찾아 건너온 까레이스키의 후손들이 주를 이룬다.

공단지역인 안산은 아시아 이주노동자들이 많다. 저임금 노동에 의지한 군소제조업체들이 공단을 형성하고 그 주변에 모여든 이주노동자들이 쪽방과 고시원에서 공동체를 이루었는데 그 중심에 지구촌 마을로 알려진 원곡동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도 끼지 못하고 변방으로 밀린 사람들이 원곡동 외곽에 터를 잡기 시작했는데 이곳이 바로 땟골마을이다.

2000년 초반 경부터 이곳으로 까레이스키 후손들이 몰려들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고려인촌으로 불리다가 누군가에 의해 자연스럽게 땟골마을로 통용되고 있다. 이들은 누구인가? 이들의 조상은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9. 3. 17. 대한민국 독립운동의 한 획을 그은 ‘연해주 대한국민회의 3.17 독립선언’을 주도한 선각자였고, 깨어있는 시민이었으며 시대의 풍운아들이었다.

그 이후로도 가장 앞장서서 독립군을 이끌었던 자랑스런 땟골의 선조들은, 일본과의 전쟁을 우려한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게 되었는데 그 때부터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의 정처 없는 유랑은 시작되었고 아직도 그들의 방랑은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그 후 고국과는 이역만리 떨어진 중앙아시아 황무지에 민들레 홀씨처럼 퍼져서 특유의 강인함으로 질갱이 같은 모진 목숨을 지탱해냈다.

그렇게 몸서리치면서 처절한 삶을 버텨냈더니 예기치 않은 소련연방의 해체로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은 또다시 유리하고 있다. 그 와중에 한줄기 핏줄의 인연으로 이들 중 일부는 무작정 한국에까지 흘러왔고 소문에 따라 이방인들이 많이 드나든다는 안산과 인연이 닿아 결국 땟골 공동체를 이룬 것이다. 이들의 현재의 삶의 현주소는 뚜꺼비집으로 묘사되는 쪽방촌과 고시원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나마도 얼마 전까지는 재외동포 지위가 한국 국적의 2,3세까지만 인정되는 바람에 4세 후손들은 성인이 되면 강제추방이 되어 생이별을 감수해야 하는 운명이었다. 다행히 지난해부터 4세대 동포의 국내체류를 허용하는 인도적 조치가 시행된데 이어 올해 들어 재외동포법 시행령 개정안이 입법 예고되어 향후에는 4세대 이후의 직계비속도 재외동포의 자격을 얻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이들도 최장 3년까지 국내체류자격을 얻고 부동산 및 금융거래도, 건강보험적용도 받을 수 있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 독립운동 조상들에게 최소한의 낯은 들 수 있게 된 것 같다.

이 땟골에서 지난 3월 17일, ‘연해주 대한국민회의 3.17 독립선언 100주년 기념식’과 ‘고려인 독립운동 기념비 건립 국민추진위원회 출범식’이라는 의미 있는 행사가 있었다. 이 뜻깊은 행사를 주도한 고려인동포 지원센터 ‘너머’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이제 시작이다. 연해주 독립운동가들은 나라를 위해 자신들 한몸은 초개처럼 던졌다 하더라도, 자신의 후손들마저 쪽방촌에서 눈물의 빵을 먹고 근근이 연명한다면 그토록 사랑한 조국의 무정함에 크게 섭섭하지 않을까? 이제 100년 된 그들의 정처없는 방랑도 그칠 때가 되었다. ‘너머’의 너머를 바라보자. 땟골의 조상을 기억하고 이들 후손들의 눈물을 닦아주자. 역사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당장 이번 주말에는 그들의 마을카페 ‘우갈록’에 가서 차 한 잔이라도 하면서 우선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우리의 할 일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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