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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조정래/해냄사>
  • 안산신문
  • 승인 2019.04.03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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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떠올랐는지 모를 그믐달이 동녘 하늘에 비스듬히 걸려 있었다. 밤마다 스스로의 몸을 조금씩 깎아내고 있는 그믐달빛은 스산하게 흐렸다. 달빛은 어둠을 제대로 사르지 못했고, 어둠은 달빛을 마음대로 물리치지 못하고 있었다.”

소설의 첫 문장으로 해방 직후의 보성군 벌교읍 밤풍경을 이렇게 묘사하면서 《태백산맥》은 시작된다. 여순사건의 현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벌교읍을 중심으로 1948년에서 1953년까지 일어난 수많은 사건과, 270여 명에 달하는 등장인물들의 삶을 다루고 있다.

《태백산맥》은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는 여순반란사건(1948.10.19)이 끝난 후부터 1948년 12월 빨치산 부대가 율어면 지역을 해방구로 장악하는 데까지를, 제2부는 여순사건 이후 약 1년 뒤까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제3부는 1949년 10월부터 1950년 12월까지 6·25 전쟁 발발 전후를, 제4부는 1950년 12월부터 1953년 휴전협정 직후까지의 시기를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의 가장 큰 골격은 염상진을 위시한 좌익세력과 토착지주 및 자본가를 중심으로 한 우익세력의 갈등이다. 그리고 전쟁의 전개에 따라 정권이 바뀌면서 야기되는 혼란이다. 그 속에 갇힌 민중과 지식인들은 혼돈 속에서 제각기 자기의 길을 갈 수밖에 없는데 그 노선 선택의 양상과 분단의 비극이 소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해방이후 북에는 소련군이 남에는 미군이 진주해 들어오면서, 남쪽 이승만 정권하에서 살아남은 소위 친일파들로 인한 문제를 반복하여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대하역사소설 《태백산맥》은 1983년 처음 출간된 이래로 1천3백만 부 이상이 팔리는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10권이 나올 때까지 매번 기다리던 사람들이 서점으로 몰리는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다. 또한 20세기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각계각층의 다양한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갖가지 위기 속에서 나름대로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박감을 준다. 총 열 권으로 방대한 분량의 역사소설이라는 선입견이 얼핏 지루할 것 같은 느낌을 주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제1권을 손에 잡게 되면 마지막 권의 완독까지 몇 개월 동안은 수면 부족으로 체중이 주는 것도 모를 만큼 재미있는 책이라고들 한다.

최근의 우리 사회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읽어야할 책이다. 그것은 이 책이 그 변화에 일조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빨치산에 대하여 우호적으로 썼으니 이적성이 있다는 논란도 있었다. 작가 조정래는 일부 우익단체들의 고발로 검찰에서 국가보안법상의 이적성 여부를 조사받기도 했지만 끝내는 무혐의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실제로 어디에서고 이 책을 읽고서 공산주의자가 되었다는 사람을 나는 보지 못했다.

너무도 당연한 것임에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지내왔던 것을 이제 이 소설이 집어내 보여주고 있다. 그리 어려울 것도 없는, 비밀이랄 것도 없는,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그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 책은 우리를 그저 그 곳으로 데려가고 있다. 흥미진진한 등장인물들의 이야기에 몰입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혼탁과 왜곡으로 가려져 있던 그 진실들을 수월하게 목격하게 된다.

                                         이장범<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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