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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너로 살고 있니<김숨/마음산책>
  • 안산신문
  • 승인 2019.07.31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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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희는 경력 15년의 무명 연극배우다. 한 번도 주연을 해본 적이 없지만 무대 위의 자신을 위해서 무대 밖의 모든 것을 포기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스스로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절망감과 앞으로 더 불행하고 외로울 것이라는 불안감에 사로잡혔다. 마침내 그녀는 무대 위에서 발작하여 쓰러졌고, 무대를 떠난 그녀는 모든 것을 잃었다. 배우 생활로 받는 월급 20만원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수입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그녀는 간병인 일자리를 얻어 경주로 내려간다. 간병환자는 11년째 식물인간으로 병상에 누워있는 마흔네 살 동갑나기 경희다. 경희는 경주국립박물관에서 학예사로 근무하는 남편과 올해 열여섯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모든 것을 잃고 죽은 듯이 살아있는 선희와 식물인간이 된 경희는 닮아있다. 이 소설은 선희가 자신의 환자 경희에게 보내는 독백과도 같은 편지로 전개된다. 선희는 간병인으로 일하면서 주위의 다른 환자들, 보호자, 간병인 등 많은 사람들과 만난다. 그들의 이야기를 하면서 작가는 은유와 암시를 통하여 ‘나’를 잃은 선희의 적나라한 상황과 그녀가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려놓았다.

선희는 재활치료로 걸음마를 새로이 배우는 한 노인을 알게 된다. 어느 날 노서동 능들이 있는 잔디밭에 쓰러진 선희를 보고 노인은 사력을 다해 걸어와 깨운다. 그래서 그녀는 무대에서 쓰러진 이후 처음으로 자신을 되찾는다. 근무지를 먼 곳으로 옮긴 경희 남편은 병원을 찾아와 여자가 생겼노라 고백한다. 그리고 얼마 후, 경희를 요양원으로 옮기겠다고 통보해온다. 경희에게 애착을 갖게 된 선희는 경희 남편에게 “그녀로부터 나를 떼어놓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이제 선희도 노인처럼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향한 걸음마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마치 잔잔한 물가를 걷듯이 차분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선희가 어떻게 ‘나’를 잃어버렸는지,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으려면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를. 작가 김숨은 또 그것들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고 어떤 양상을 보이는지를 반복하여 예를 들어가며 조곤조곤 들려준다.

나를 응시하는 상대의 눈 속에 소유하려는 욕망 같은 것이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존재를 확인 받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게 보이거나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한다. 그것은 내가 의도를 가진 존재가 되어야만 가능하다. 내가 나를 버렸다는 것은 내가 그 의도 갖기를 포기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나의 현재는 과거를 밟고 설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무대가 경주의 능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듯하다. 나는 나를 시간이라는 무대 위에서 잃어버렸다.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서는 잃어버렸던 현장으로 다시 가야한다. 그래서 주인공 선희는 자신이 쓰러졌던 극장 목성의 무대로 가지 않고, 고대의 능들이 중첩되어 곡선을 이루는 노서동 고분 잔디밭으로 갔는지도 모른다. 그곳에는 걸음마를 연습하는 노인이 있다. 노인은 선희를 알아보고 오직 그녀를 위해서 있는 힘을 다해 걸어와 정신을 잃은 그녀를 깨운다. 그럼으로써 선희는 잃어버렸던 나를 찾을 수 있었다.

무관심은 자신과 누군가의 존재를 사라지게 할 수도 있고, 관심과 애착은 무의미했던 누군가를 비로소 존재하게도 할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네가 존재할 때 가능하다. 이 책은 그것들을 들추어내는 다양한 화두들을 끊임없이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생각보다 큰 명제이기 때문에 하루아침에 간단히 파악될 수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러나 당신이 보다 진지한 삶을 원한다면 이제부터라도 그 고민을 시작해야 한다.

“너는 너로 살고 있니”, 어쩌면 무거울 수도 있는 이 주제를 작가 김숨은, 마음 편한 동네 카페에 앉아서 들려주는 가까운 이웃의 이야기처럼 풀어나간다. 굳이 에둘러 가지도 않고 친절하고 수월한 어조로, 그리고 반복하여 그것을 설명한다. 그러한 이 소설을 접하는 것만으로도 독자에게는 흔치 않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정겨운 파스텔톤의 목판화 24점도 실려 있어 소설의 주제에 시각적으로 접근하는 미적효과를 제공하고 있다.
 

이장범<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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