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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경제학김희경<안산제일복지재단 수석이사>
  • 안산신문
  • 승인 2019.09.0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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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평안북도 용천에서 쌀장사를 하던 일본인 상점에서 일하던 종업원이 돈을 빼돌린 일이 발각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경찰에 신고하지 아니하고 다시 일하도록 했고 오히려 상점의 총지배인으로 삼았다. 용서를 받은 그 종업원은 더욱 충성스럽게 일을 했다고 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새삼 떠오르는 것은 우리 사회가 분노와 증오가 팽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린시절을 이야기하면 누구나 다 그 때가 그립다. 참외와 수박은 물론 자두서리, 정월 보름에는 김치서리, 닭서리를 해도 어른들은 일부러 가져가도록 내어놓기도 했다. 물론 잡힌다하더라도 고소하거나 배상하지 않았다. 용서하고 웃어넘기셨다. 보리고개를 겪으면서도 마음은 여유롭고 넉넉했었다.


  “용서는 마음의 경제학”이라고 영국의 시인 한나 무어는 말했다. 용서는 분노와 증오의 비용을 없애고 영혼을 낭비하지 않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단한번만 지불하면 오랜동안에 걸쳐 쌓이고 쌓인 마음의 고통을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는 마음의 비용이 곧 용서이다. 켭켭히 쌓인 아픔과 상처에서 벗어나면 삶의 무게가 훨씬 가벼워진다. 용서에 대한 연구를 했던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프레드 러스킨교수는 “용서하는 습관은 면역체계를 강화하고 혈압을 낮추며 불안과 우울증을 감소시킨다”고 했다.

때로 아버지나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잊지 못해 정신적으로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을 만난다. 성인이 되어서도 아동기에 겪었던 경험이 자신의 인생각본인 신념으로 고착되어 살기 때문이다. 그러나 치유과정을 통해 부모를 용서하게 되면 그 당시의 부정적이었던 부모를 오히려 긍정적으로 이해하고 감사와 죄송한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청산이라는 말을 자주 쓴다. 일제청산, 과거청산, 적폐청산 등이 그 예이다. 그러나 지난일은 청산되어지질 않는다. 왜냐하면 이미 지나갔기 때문이다. 진정한 청산은 잊는 것이다. 물론 잊을 수 없지만 용서하면 잊을 수 있다. 용서는 새로운 관계를 위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꼭 사과를 받아내야 용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용서는 주관적 행위이자 결단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는 지난 아픔과 고통으로 인한 분노와 증오, 미움과 복수심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는 중국드라마를 즐겨본다. 그런데 중국의 무협드리마의 줄거리는 대부분 복수혈전이다. 복수를 위해 칼을 갈고 도들 닦고 무술을 연마한다. 결국은 모두 피투성이로 죽는다. 평화는 용서로부터 시작된다. 가정과 사회 공동체가 행복하고 평화를 가지려면 용서하는 마음이 습관화되어야 한다. 인간은 완전할 수 없다. 때로는 이를 빌미로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도외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용서하는 사회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용서없는 사회는 알량한 명분 때문에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지불하게 된다. 예를 들어 100여명의 여야의원들이 국회선진화법에 의해 고소고발에 연류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무슨 망신인가? 정치력이 이정도 수준인가? 용서와 화해와 협력은 북한보다 우리 내부에서부터 만들어 내야한다. 이를 위해 들어가는 낭비적 비용들을 생각해본적이 있나? 일본을 비롯한 외국과의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용서는 약자의 행위가 아니다. 용서는 과거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지 없었던 일로 묵살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라는 시도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해보는 용기와 분노를 부추키는 것보다 용서를 설득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용서할 수 있는 마음과 정신이 한민족의 자긍심이 아닐까? 더 이상 한(恨)의 응어리로 대를 잇게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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