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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 안산신문
  • 승인 2019.10.02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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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제7일

<위화 지음/문현선 옮김, 푸른숲>

  세상이 창조되는 데에 7일이 걸렸다. 그렇다면 세상을 떠나는 데에도 7일이 걸리지 않을까. 죽은 당신이 저승으로 떠나기까지 7일의 기간이 주어진다면, 당신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하겠는가?
  한국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중국 소설가를 꼽자면 위화는 단연 첫 손가락에 등장한다. <허삼관 매혈기>가 한국에서 영화화되어 널리 알려지면서 위화는 한국 독자들에게 가장 대중적인 중국 소설가로 사랑받고 있다. 1983년에 첫 작품 <첫 번째 기숙사>를 발표하며 데뷔한 저자가 30여 년 문학 인생의 결정판으로 꼽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 <제7일>이다.
  <제7일>은 죽은 양페이가 화장터로 오라는 쪽지를 확인하며 시작한다. 주인공이 죽은 후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7일 동안 머물며 펼쳐지는 이야기다. 여기서 7일은 창세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고 한다.
  첫째 날, 불의의 사고로 불현 듯 죽음을 맞은 양페이는 수의도 없어 신혼 때 입었던 잠옷을 대신 입고 화장터로 간다. 화장터에 모인 사람들은 그들을 위한 묘지 즉 안식을 향하여 차례로 화장된다. 그러나 그를 위한 유골함이나 묘지도, 그것을 준비해줄 유족도 없는 양페이는 화장터를 떠난다. 둘째 날, 이혼한 아내를 만나 또 한 번 가슴 시린 이별을 한 그는 셋째 날부터 그의 아버지를 찾아 나선다. 스물한 살 선로공이던 그의 아버지는 우연히 철로에서 갓난쟁이를 주운 이후, 결혼도 포기하고 이 갓난쟁이를 아들로 삼아 번듯한 청년으로 키워냈다. 아버지의 가슴 절절한 사랑을 기억하는 양페이는 자기보다 먼저 죽었을 아버지를 찾기 위하여 사후 세계의 이곳저곳을 수소문한다. 양페이의 회상과 생전의 지인들을 죽은 후 조우하는 사건들이 교차하면서 차례로 넷째 날, 다섯째 날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저자는 양페이의 여정을 빌어, 천박한 자본주의와 부조리한 공산주의라는 양극단의 패악을 함께 앓고 있는 중국의 민낯을 드러낸다. 자본 제일의 논리에 밀려 가족이 분해되고 장기 밀매가 공공연하게 자행된다. 산아제한 정책에 따라 강제 유산된 영아의 시체 수십 구가 사체가 아닌 쓰레기로 취급되고 부실공사로 인해 수백 명의 사람들이 죽었음에도 사고는 물론 그들의 죽음마저 은폐되는 등 중국(을 비롯하여 대부분의 나라가)의 황당한 현실을 저자는 특유의 유머와 역설로 엮어낸다.
  그저 한바탕 웃음으로 넘길 수만은 없는 이 혼탁하고 암울한 세상 속에서 찬란하게 도드라지는 것은 ‘인연’이다. <제7일>의 이야기에는 죽은 연인의 묘지를 마련하기 위하여 신장을 파는 사람, 죽어서도 떨어지지 않고 함께 지내는 가족, 생전에는 원수지간이었으나 죽은 후에 만나서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된 두 남자 등 가슴 찡한 여러 인연들이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작품 속에서, 살아 있는 유족이나 친구들이 무덤을 준비해주지 못하면 망자는 영원히 귀신이 되고 안식할 수 없다. 인연이 이승과 저승을 초월하여 운명을 결정짓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마치 우리 현실의 생애가 그러하듯이.
  이런 인연들 중에서도 유난히 빛을 발하는 것은 양페이 부자(夫子)다. 양아들인 양페이에게 온 생애를 바친 아버지는 불치병이 걸린 자신이 양페이의 앞날을 막을까봐 몰래 집을 떠났다. 양페이는 세상 그 무엇보다 가장 자신을 사랑한 아버지를 잊지 못하고 죽은 후에도 아버지를 찾아 결국 7일 째에 그와 함께 안식한다. 피 한 방울 안 섞였지만 그 어떤 혈연보다 애틋한 이들 부자의 사랑은 과연 우리가 아직 살아 있을 때에 무엇을 눈여겨보고 귀중하게 지켜야 할 것인지를 자문하게 한다.
  몸이 죽은 다음, 혼(魂)이 된 우리에게 주어질 시간이 7일일지 혹은 그보다 적거나 아니면 많을지 누가 알 수 있을까? 어쩌면 며칠의 시간이 있다는 것은 중요한 게 아닐지도 모른다. 위화의 소설 <제7일>을 읽은 후에 비로소 ‘죽은 후, 반드시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당신에게는,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경계를 헤매는 신세가 되었더라도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는지? 그 사람은 당신에게 어떤 사람인가? 당신을 사랑해준 사람, 아니면 당신이 사랑한 사람? 어떤 사람이든 그가 떠올랐고 그런 그가 지금 곁에 있다면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당신은 그에게, 그는 당신에게 안식을 주는 사람이라는 사실 말이다.  
  온갖 사건과 사고로 떠들썩한 하루, 지저분하고 소란스러운 삶에 피곤하다면 망자의 이야기 <제7일>로 눈을 돌려보시길 바란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삶이란 그 어디에서든 고단하지만 소중한 인연이 함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감동과 위로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정상미<중앙도서관 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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