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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정과 열정사이
  • 안산신문
  • 승인 2019.10.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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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법부법인 온누리 대표변호사>

이는 일본의 대표적인 연애소설 제목이다. 파란 색은 츠지 히토나리가 남자주인공 쥰세이 입장에서, 붉은 색은 에쿠니 가오리가 여자주인공 아오이 관점에서 풀어나간 같은 제목 다른 내용의 책이다. 두 사람은 동일한 과거를 다르게 오해하고 냉정한 오랜 세월을 보낸 끝에 오래된 약속장소이자 연인들의 성지인 피렌체 두오모 성당에서 서로에 대한 열정의 접점을 확인하면서 너무 극적인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꽤 매력적인 소설이다.
오래 전에 이 소설을 읽었으나 그 여운이 늘 마음에 남아 있던 터라 지난 여름 유럽을 여행하면서 짧은 일정 속에서도 콕 집어 피렌체 두오모 성당을 찾아, 쥰세이와 아오이의 흔적과 느낌을 담아보려 했을 정도다.
최근 이런 낭만적인 스토리와는 전혀 다른 현실 장면에서 책 제목을 뜬금없이 기억속에서 다시 소환해 보았다. 광화문과 서초동, 서초동과 광화문, 그 각각의 장소에 운집한 같은 대한민국 국민, 다른 생각을 가진 우리들은 잠시 헤어진 연인일까, 아니면 결코 함께할 수 없는 창밖의 타인일까. 외치는 소리들만 들어보면 이만한 열정도 없다.
그러나 서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를 들어보면 그렇게 차가운 냉정도 없다. 그들의 속마음은 열정일까, 냉정일까, 진심으로 궁금하다. 아니면 이렇게 말하고 생각하는 이가, 식은 죽처럼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매력상실의 존재인가. 다 제쳐놓고서라도 다들 먹고 살기 힘들다고 하면서 이렇게 사회문제에 직접 나서는 이들이 많은 현상 자체부터 신기하다.
지금부터 약 2,500년 전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 도편추방제라는 제도가 있었다. 민주주의의 태생지인 아테네에서 독재자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의 이름을 조개껍질이나 도자기 파편에 적게 한 후 총 6천표가 넘으면 10년간 국외로 추방하는 제도이다. 그 당시는 인구가 고작 몇만 명 정도였으니 가능했을 법한 이 제도가 5,000만 명이 넘는 인구가 사는 우리 대한민국에서 불과 2년 전에도 이미 시행된 적이 있었다. 추방의 방식과 장소만 다를 뿐이다. 그 추억 때문인지, 아니면 살림살이를 맡겨 논 청지기들의 무능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우리는 이제 무슨 일이 터지면 직접 와이셔츠 소매 걷어 부치고 거리를 나설 준비가 언제든지 되어 있는 듯하다.
머릿수는 이미 2002년 월드컵 4강때 운집한 응원단 숫자를 가뿐히 넘어섰다. 이제 차분히 현실을 돌아보자. 2,500년 전의 직접민주주의를 상설화하기에는 이미 너무 많은 사람이 같은 공간에 산다. 단순하게 생각해도 모두가 거리에 나서거나 한 장소에 모여 문제를 풀기에는 너무 고차원방정식 사회이다.
돌을 맞을 각오로 더 냉정하게 진단해 보자. 그렇게 열정적으로 사회현안에 열을 올리는 사람들 중에는 SNS 매너가 결격인 사람이 많고 남의 얘기를 경청하는 태도가 빵점인 사람도 많다. 그런 매너로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의 진정성은 의심받아야 마땅하다. 형사소송법에 독수독과이론(毒樹毒果理論)이 있다. 독있는 나무에는 독있는 과실이 맺힌다는 뜻으로, 위법하게 수집된 1차 증거에 의해 발견된 2차 증거도 증거능력이 없다는 의미에서 쓰인다. 소위 위법수집증거배제원칙의 논거인 것이다.
그렇게 열을 올리는 자신의 주장에 타인의 공감을 얻기 위해서는 목소리만 키울 것이 아니라 눈동자부터 맑아야 한다고 본다. 호소력은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바라보는 눈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간절한 눈빛만큼 더 가슴에 와닿는 대화가 있을까. 이런 사람들은 거친 언어를 사용하지도 않고 신언서판 어디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는다.
다시 “냉정과 열정사이” 책으로 돌아가 보자. 책제목 순서처럼 열정보다 냉정이 앞서야 한다고 본다. 아오이는 헤어진 기간 내내 냉정했지만 그녀 안에는 어쩌면 쥰세이보다 더 큰 열정이 간직되고 있었다.
쥰세이는 우연한 기회에 이런 아오이의 본심을 발견하고 10년 전 약속을 소환하여 피렌체 두오모 성당 꼭대기로 가서 아오이를 기다린 것이다. 그런데 아오이는 애초부터 이 약속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이런 아오이의 사랑이 쥰세이보다 더 뜨겁고 한결같다고 믿는다.
우리 사회는 미처 거리에 나서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이들이 많다고 확신한다.
그러므로 광장에 나가는 열정도 대단하지만 생활터전에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냉정도 함부로 재단해서는 안 될 것이다. 결국 위 냉정과 열정사이를 흐르는 강은 나라 사랑하는 바다에서 함께 만날 것을 믿는다. 이런 믿음이 있기에 2019년 대한민국은 여전히 역동적이고 매력이 있고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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