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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소방관을 위한 기도문
  • 안산신문
  • 승인 2019.11.06 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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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원 <동화작가>

안산소방서가 보이면 한 기도문을 절로 읊조리게 된다. 깜빡 잊거나 머뭇거리면 환청처럼 들려오는 기도문이다.
제가 부름을 받을 때는 신이시여/아무리 강력한 화염 속에서도/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중략// 저에게는 언제나 안전을 기할 수 있게 하시어/가냘픈 외침까지도 들을 수 있게 하시고/신속하고 효율적으로 화재를 진압하게 하소서//하략
11월 9일은 57주년을 맞는 소방의 날이다. 화재와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소방의식을 높이고자 정한 기념일이다.
우리나라는 세종 임금 때 병조(兵曹) 아래 금화도감(禁火都監)을 설치하였다.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소방서라 할 수 있다. 1991년 소방법을 개정하면서 119를 상징하는 11월 9일을 소방의 날로 제정하게 되었다.
산업과 과학의 발달에 따른 재해 발생의 증가로 소방 방재의 중요성은 날로 증대하고 있다. 그러나 소방공무원들의 근무환경은 아직도 열악한 수준이다. 인력 증원과 근무환경 개선의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분출되어 왔지만,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쇠귀에 경 읽기 식이다.
소방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2014년~2018년)간 공상을 신청한 소방공무원은 평균 495.8명에 달한다고 한다. 이 중 공상으로 승인되는 비율은 90.3% 정도라고 한다. 수치상으로는 많지만 그 이면에 감추어진 눈물겨운 이야기는 슬픔을 넘어 분노까지 일으키게 된다. 아직도 국가와 외롭게 싸우는 소방관들이 주위에는 너무 많다. 가장 큰 문제는 공무상 발생한 여러 질병이나 부상을 공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다. 특히 희귀병이나 암 등의 질병은 소방관들에게 있어서는 명백한 증명과 그 인과관계를 밝히는 일이 힘들다. 너무나 힘에 부쳐 포기하는 소방관들이 부지기수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도 소방관을 살리는 ‘공상추정법’이 즉시 시행되어야 한다. 미국과 캐나다 등의 나라들이 그 법을 잘 활용하고 있다. 이 선진국들은 소방관이 희귀병이나 암에 걸리면, 그 연관성을 우선적으로 직무에 두고 국가가 입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공상추정법’의 검토가 논의된 것은 2017년 9월이다. 그러나 아직도 국회에서 쿨쿨 잠자고 있다. 그 와중에 소방관들은 어이없는 죽음과 수없이 다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2018년 4월 초 일어난 고 강연희 소방관을 들 수 있다.
전북 익산역 앞 도로에 쓰러진 술 취한 남성을 구급차에 태웠던 강 소방관은 그 남성에게 심한 욕설과 머리를 맞았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신경 손상이라는 진단을 받은 강 소방관은 수술을 받았지만, 한 달 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강 소방관에게 욕설과 폭행을 한 40대 남자는 징역 1년 10개월을 선고받았다. 아무런 힘을 못 쓰게 만드는 이 나라의 법 앞에 소방관들은 얼마나 좌절했을까? 얼마나 분노에 치떨었을까? 이게 이 나라 소방관의 현실이며 법이다.
지난 달 초순, 상록구 부곡동의 한 지하주택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사람을 119구조대의 빠른 대처로 귀한 생명을 건졌다. 
9월초 태풍 링링으로 한 유치원의 지붕 판넬 추락 위험 신고에 119구조대가 신속 출동 해결해 주었다. 유치원에서 제공하는 차 한 잔까지 마다하고 소방대원은 다른 곳으로 떠났다. 이 이야기가 칭찬 게시판에 올라오자 답글이 실렸다.
‘당일 출동소요가 많아 유치원에 출동한 구조대원이 3명뿐이어 작업 중에 교직원 분들께 여러 가지 부탁을 많이 드렸는데, 잘 따라 주셔서 저희 구조대원들도 안전하게 활동 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 작은 이야기가 안산시민들의 마음을 큰 울림으로 따스하게 적셔주었다.  
어느 소방관을 위한 기도문의 마지막 연이다. 
그리고 신의 뜻에 따라/저의 목숨을 잃게 되면/신의 은총으로 저의 아내와 가족을/돌보아 주소서//
열악한 환경에서 말없이 자신을 불태우는 촛불 같은 소방대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법안이 나오길 바란다. 국회는 제발 내년 총선에 관한 야욕을 버리고 ‘공상추정법’ 법안이 하루속히 추진되도록 마음을 모으길 바란다.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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