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내버스를 또 타고 싶다

류근원 <동화작가>

나무들이 경쟁이라도 하듯 옷을 훌훌 벗어던지고 있다. 자고 일어나면 은행나무 아래 세워둔 승용차는 노란색으로 도색을 한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승용차를 보는 착각마저 들 정도이다.
낙엽 깔린 길이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다. 나뭇가지에 달려있던 단풍잎보다 길에 깔린 낙엽들이 더 아름답게 들어온다. 늘 위만 바라보며 살아왔던 삶을 이제야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그런 것 같아 피식 웃음이 새어나온다. 그래서인지 자투리로 남아있는 가을의 모습이 애잔할 정도로 눈과 가슴으로 들어온다.
푸른 하늘과 구름과 산들이 가을의 끝에서 손짓을 한다. 그래서 요즈음 가까운 바닷가와 산을 자주 찾는 편이다. 주로 버스를 이용한다. 버스는 승용차를 몰고 갈 때 못 보던 풍경을 여유롭게 볼 수 있는 즐거움을 준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이내 불안감으로 바뀔 때가 종종 있다. 운전을 하면서 휴대폰을 사용하는 기사들 때문이다. 운전 중 휴대폰 사용 시 적발되면 도로교통법에 따라 범칙금 10만원과 벌점15점 그리고 과태료 10만 원의 행정처분을 받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지에서 도착지까지 휴대폰을 놓지 않고 통화하는 막무가내 식 기사도 보았다. 운전하는 그 시간만큼은 승객들의 안전이 기사들에게 담보 잡힌 격이지 않은가.
운전 중 휴대폰을 사용할 경우, 사고발생 비율이 정상운전 때보다 ‘6∼8배가량 높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또한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반응 속도도 0.7∼0.9초 정도 늦어져 사고발생 시 치명적인 대형사고로 이어진다고 한다. 그런 만큼 운전 중 휴대폰 사용은 반드시 근절되어야 한다. 더구나 시내버스의 경우에는 안전띠 자체가 없어 사고가 날 경우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한 달 전, 시속 100㎞의 빠른 속도로 질주하는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휴대폰 동영상을 보고 있는 텔레비전 뉴스는 시청자들을 경악시켰다. 7년여 전, 화물차가 상주시청 소속 여자 사이클 선수단을 덮쳐 3명 사망, 5명 부상의 끔찍한 사고를 냈다. 사고 원인은 화물차 기사의 DMB 시청이었다.
이러한 사고를 막기 위해서 시민평가단을 운영, 기사들의 준법 준수도 순위에 따라 업체에게 차등성과급을 지급하고 있는 지자체도 있다. 휴대폰 사용, 불친절, 신호위반, 난폭운전 등 각종 문제점을 해결해 나아가고 있다.
우리 시도 그런 사례를 벤치마킹하는 게 버스문화를 개선하는데 일조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휴대폰 사용 문제와 함께 기사의 불친절도 이슈로 떠올랐다. 그러나 친절한 기사들도 많다.
11월 19일, 원곡동에서 집으로 가는 시내버스를 탔다. 버스에 올라서는 순간, 기사의 “안녕하세요?”라는 큰 소리에 당황, 올라선 후에야 뒤늦은 인사를 멋쩍게 하고 말았다. 기사석 바로 뒤에 앉게 되었다.
올라오는 승객에게 일일이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라며 인사말을 건네는 기사였다. 기사의 인사를 받는 승객들의 표정이 천태만상이었다. 웃음으로 말없이 대하는 사람, 무뚝뚝하게 올라오는 사람, “안녕하세요?”라며 환한 웃음과 함께 인사하는 사람….
기사의 손님맞이는 인사말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자리 앉으세요, 출발합니다.”라는 말을 한 후에야 비로소 버스가 움직이는 것이었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기사였다. 정류장마다 서는 동안 마음이 얼마나 즐거워졌는지 모른다. 아름다운 기사 때문에 두 정류장이나 지나쳐 내리고 말았다. 돌아오는 길이 조금도 멀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아름다운 말 한 마디는 우리의 일상을 즐겁게 만들고, 사람 사이에 막힌 담을 허물어 주는 역할을 한다. 더불어 사는 인생길에 마음을 담아 건네는 친절은 누군가에게 분명 위로가 된다. 행복을 준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그 기사를 생각하면 절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 시내버스를 다시 타고 싶다. 행복을 선사하는 시내버스라고 부르고 싶다.
11월 19일 정확하게 16:18분경, 스타프라자 정류장을 지났던 350번 경원여객 경기 73바 1283 시내버스였다.

안산신문 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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