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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다립니다…
  • 안산신문
  • 승인 2019.11.27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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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비드 칼리, 문학동네>

  가로 27cm, 세로 11cm로 조금 긴 편지봉투 사이즈를 지닌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 겉표지에 엉킨 빨간색 실의 양쪽 끝을 남자와 여자가 잡아당기고 있는 그림이 있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기다리는 것들’에 대해 하얀 종이 위에 검정 펜의 일러스트와 빨간 실로 아름답게 표현해 놓았다. 빨간 실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네 인생을 요점정리 한 것 같은 간결함과 동시에 묵직한 감동과 깨달음이 찾아온다. 이 책에서의 빨간 실은 타인, 가족 등 지인과의 유대관계를 의미하며, 작가는 주인공의 심리상태에 따라 실의 모양이나 굵기를 다양하게 표현해 강렬한 인상을 준다.
  어린 아이였을 때는 어서 키가 크기를, 케이크가 익기를, 그리고 크리스마스가 오기를 기다린다. 세월이 지나 청년으로 성장한 주인공은 군대에 가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사랑하는 그녀가 청혼을 받아주기를 기다린다. 결혼 후에는 부부가 함께 아기를 기다린다. 임산부가 빨간 털실로 굵은 목도리를 뜨개질하며 아기를 기다리는 모습에서 아이에 대한 엄마의 간절한 기다림과 큰 사랑이 느껴진다. 어린 자녀가 성장해 가족과 멀리 떨어져 생활할 때 부모는 자식으로부터 안부전화를 기다린다.
  병든 아내가 완쾌되기를 기다리며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한 빨간 끈을 부여잡고 있는 늙고 연약한 남편의 모습은 먹먹하다. 빨간색 실은 서로가 이어져 있음을 눈으로 보여줘 기다림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해준다. 또한 이 책은 기다린다고 해서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만은 않음을 깨닫게도 해준다. 먼저 떠나간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남편은 따뜻한 봄이 또 다시 오기를 기다린다. 노년의 쓸쓸함과 간절함으로 안쓰러움마저 느껴진다. 이 그림책의 마지막은 실타래와 함께 ‘끝’을 ‘끈’이라고 수정하면서 마무리된다. 끝까지 가족, 지인과 관계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목소리를 듣는 듯하다.
  책을 보는 동안 섬세하고 애잔하게 ‘기다림의 미학’을 표현한 작가의 깊은 통찰력과 뛰어난 표현력에 감동한다. 책 전반부에서 보여준 기다림은 무엇이든 빨리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 조급한 반면, 후반부에서 보여준 기다림은 시간적, 정서적 여유를 느끼게 한다. 동시에 애잔함과 쓸쓸함도 준다. 사람들은 오래 기다리게 하거나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짜증을 낸다. 반면에,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면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한다. 좋은 결과에 대해 솔직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일희일비하지 않고 여유를 갖고 기다림을 즐기는 정서적 성장도 필요하겠다.
  스위스 출신의 작가 다비드 칼리는 예리한 필치로 유머감각이 돋보이는 작품을 다수 발표하고 있다. <나는 기다립니다…>로 2005년에 바오밥 상을, <피아노 치기는 지겨워>로 아동문학의 노벨문학상이라고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 상을 받았다. 다비드 칼리는 동화작가이지만 어른들의 심금을 울리는 작가로 유명하다.
  이 책의 일러스트를 담당한 세르주 블로크는 유럽 풍자만화 협회의 회원이며 <워싱턴 포스트>지와<뉴욕 타임즈>지에 삽화를 싣고 있다. 또한, <세상을 뒤흔든 31인의 바보들>로 2007년 볼로냐 라가치 상 논픽션 부분에서 받았다. 이 책의 ‘신의 한수’는 세르주 블로크의 일러스트라고 할 수 있다. 그의 그림이 없었다면 전 세계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무더운 날씨가 이어져 일상이 지치고 고단할 때, 위로와 힐링을 받고 싶을 때 이 그림책을 꺼내보기를 권한다. 기다림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무게를 느껴보는 기회를 가져보길 추천한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다. 기다릴 것이 있다는 것은 삶을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설령 기다리는 대로 결과가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또 다른 새로운 기다림을 찾으면 된다.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할 것은 ‘관계의 끈’이다.

권수진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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