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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눈 오는 날
  • 안산신문
  • 승인 2019.12.04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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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영 <법무법인 온누리 대표변호사>

30년도 훨씬 지난 어느 초겨울 날이다.
해가 설핏 기울어 가던 오후에 민사소송법 강의를 듣고 있던 그의 눈에 한 뼘밖에 안 되는 작은 창문 너머로 싸라기눈이 내리는 것이 들어온다. 그러잖아도 지루하고 딱딱하던 강의가 이제는 아예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강의라기보다는 아예 책을 읽고 계시는 교수님의 눈을 피해 아직 한 시간도 더 남은 강의실을 살며시 빠져나온다. 밖에 나오니 제법 눈발이 느껴진다. 서둘러 노량진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첫눈 오는 날의 어설프기 짝이 없는 데이트 약속이다.

그런데 장소만 정해져 있지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다. 1시간가량 이동하는 동안 싸라기눈은 그리 커지지 않았고 그나마 간헐적으로 끊어지기도 했다. 게다가 그녀가 사는 곳은 인천이다. 서울의 동쪽 끝과 인천과의 거리는 얼마쯤인가. 전국적으로 펑펑 내리는 눈도 아닌데 그곳에도 과연 작은 팝콘 같은 눈기운의 흩날림이라도 있을까.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이 무모하고도 스쳐 지나가는듯한 약속을 그녀는 기억이라도 할까. 갖가지 상념을 뒤로하고 약속장소에 도착해 보니 역시나 그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는다.
 
무선 전화기는 007 첩보영화에서나 보던 것이지 그 시절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기약 없는 기다림, 그리고 지치면 쪽지 서너 줄 남기고 일어서는 것밖에 없다. 맛도 잘 모르는 커피는 식은 지 오래되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신인이 딱히 받는다는 보장이 없는 흔적 몇 줄 남기고 있는데, 카페 입구에 두리번거리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다.
아, 첫눈 오는 날.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첫눈을 기다린다는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한 사람을 만나 커피를 마시고 눈 기차역 부근은 아니더라도 눈 내리는 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그 얼마나 큰 축복인가.
기억을 더듬어 본다. 그곳은 그녀와 그가 사는 곳의 중간지점이라 잡은 약속장소일 뿐이지 서로에게 익숙한 곳은 아니다. 그곳을 나와도 딱히 갈만한 곳을 알지 못한다. 그래서 둘은 마냥 한강대교 위를 나란히 걷는다. 말도 별로 없다. 손을 잡을 말한 숫기도 없다. 그냥 끝이 없는 길처럼 걷고 또 걸었다. 초겨울 강변의 날씨는 제법 쌀쌀했건만 간헐적으로 교차하는 그녀와의 눈빛은 참 따뜻했다. 팔짱을 끼고 더러 눈길에 미끄러지기도 하는 영화 속 장면만큼은 아닐지라도, 긴 침묵마저도 어색하지 않았던 젊은 날의 소중했던 초상이다.
 
  그렇게 청춘은 가고 세월은 흘러 그 얼치기 법대생이 법조에 입문한 지도 이십여 년이 지났다. 그 동안 수많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연을 접하면 접할수록 그는 뭔가를 자꾸 잃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감출 수 없다. 그 무엇의 정체를 딱 꼬집어 말하기는 어려우나 초(超)연결사회가 가속화될수록 우리 사회는 더 외로워지고 낯선 타인에 의한 집단 따돌림도 극성을 부리는 것 같고 그로 인해 정말 있을 수 없는 비극적 뉴스를 듣는 오늘이 너무 슬프기도 하다. 그러나 강태공이 낚고자 했던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세월이었듯이, 우리도 때론 세월을 거스를 필요가 있다. 그 때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Slow City를 추구하는 사람들처럼.
 
TV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혜리(덕선)가 첫눈을 기다렸던 그 시절 그 장면처럼, 올해의 첫눈은 2019년 대한민국을 위로하고 보듬어 주는 그런 첫눈으로 다가오기를 기대한다. 첫눈을 기다리는 사람들만이 첫눈 같은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듯, 아직도 첫눈 오는 날 만나자고 약속하는 사람들 때문에 내일은 항상 설렘으로 가득할 것이다.
 
25년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지금의 그녀도, 이런 까닭에 낡은 사진첩에서 꺼낸 추억 속의 첫눈에 대한 기억을 굳이 탓하지는 않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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