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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 여행이야기(54)왜 ‘무작정 떠나기’인가?
  • 안산신문
  • 승인 2019.12.04 1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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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있는 관광지를 꼭 가봐야한다는 생각도 떠나는 명분을 제공한다. (충남 예산)

인류가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한 지는 불과 일만 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백배, 어쩌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떠돌이 유목 생활을 했었다. 한 곳에 정착해 살거나 한 사무실에서 몇 년을 지내는 일과 사뭇 다른 일이었다.
 
   왜 ‘무작정 떠나기’인가?

   이 여행 연재를 시작할 때 주제가 ‘무작정 떠나는 여행’이었다. 그땐 무작정 떠나야 하는 이유로 우선 그렇게 떠나야 더 재미가 있고, 생태관광과도 접목하면 좋을 것이라는 관점에서 썼다. 또 지면의 한계가 있어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접근하지 못했다. 무작정이라는 사전적 의미는 ‘얼마라든지 혹은 어떻게 하리라고 미리 정하는 것 없음.’ 또는 ‘좋고 나쁨을 가림이 없음.’인데 실제 쓰임에서는 두 가지 뜻을 다 함축하여 쓰는 경향이 있다. 즉 미리 정하는 것이 없다는 것은 옳고 그름이나 유·무익을 가리지 않고 한다는 의미를 지니는 까닭이다. 유의어로는 ‘다짜고짜’, ‘무조건’, ‘무턱대고’ 등이 있다고 하였다. 이들 단어가 주는 어감은 비록 미세한 차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연보다는 그냥 ‘대책이나 계획 없이’나 ‘이유 없이’를 더 강조하는 것 같다. 사람들이 무작정 떠날 때도 다 나름의 이유가 있는 것인데, 즉 이유 없이 떠난 것도 여행의 이유가 되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이유까지도. 사람들이 이럴 때 어떤 단어를 써는가를 인스타그램에서 살펴보았더니 ‘무작정 떠나기’와 함께 비록 해지 태그의 사용 수는 적었지만 ‘훌쩍 떠나기’, ‘갑자기 떠나기’ 등도 있었다. 이밖에도 ‘의도하지 않은 여행’, ‘급여행’, ‘아무 생각 없이 떠난 여행’, 등 유사한 표현도 많았다. 이런 단어들은 여러 사람과 떠나기보다는 혼자인데 아닌 경우는 아주 친한 지인 또는 연인과 떠나는 것이 대부분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왜 사람들을 혼자서(실제로는 여러 명이 떠나더라도) 구체적인 계획 없이 떠나고 싶어 할까??

동화 속 같은 거리에 서면 평소에 갈 곳으로 정해 놓은 곳이 이곳이었던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프랑스 꼴마르)


   사람들이 일상에 너무 지쳐서 일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의 핏속에 아직 유목민의 그것이 남아 있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이 두 가지인 경우를 최근에 읽었던 두 산문집으로 풀어나가고자 한다. 전자인 경우는 여행은 사회적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일에 너무 시달리는 거나 인생의 목표를 잃었을 때 나타나는 일종의 자가 치유 현상처럼 보인다. 물론 즐기려는 방편으로도 보이지만 관련 SNS의 글이나 사진의 행간과 연출을 보면 현 상황에서 탈피하고픈 의도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 훌쩍 떠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느는 것 같다. 20대 후반의 작가가 쓴 여행기 -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의 첫 소제가 ‘위기의 청년들’인데 이런 대목이 나온다. “사람들을 만나면 모두 저마다 마음속에 먼 나라 하나가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곤 한다.” 그리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더불어 하지만 “언젠가 이 궤도를 벗어나 먼먼 나라로 날아가리라, 하는 꿈, 모두 마음속 보석상자에 나라 하나를 숨겨놓고……. 상상하며 야근도 버텨내고 주말 근무도 이겨내 왔던 것이다.”
  두 번째로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이 여행에 끌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곳에서 보면 ‘무작정 떠나기’보다 ‘여행에 미치다.’라고 적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것, 어쩌면 떠도는 것에 본능적으로 끌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렇다고 본다. 그냥 떠나야 마음이 편안해진다는 것을 스스로 잘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중독이다. 떠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상황을 어찌해야 하는가? 여행이 일종의 해독제이자 해결책이다. 어떤 스트레스가 생기면 우리 몸 속에 내재되어 있는 무엇인가를 자극하여 격발하게 하는 트리거가 있는지도 모른다. 다른 산문집의 저자는 우리나라에서 주는 온갖 문학상을 다 받은 인기 작가인데 그의 책 ‘여행의 이유’에서 그는 초등학교 6년 동안 이사를 여섯 번 다녔음을 적고 있다. 그리고 엄청 떠돌아(?)다녔음을 글로 나타내었는데 필자는 그의 ‘역마살’ 때문임을 간파하였다. 필자는 생태학자로서 바라볼 때 역학에서 말하는 타고난 운명인 ‘역마살’을 아직 정착 생활에 상대적으로 덜 적응한 사람들을 나타내는 표현 중 하나로 바라본다. 그는 책에서 젊은 시절 유럽의 배낭여행에서 바게트 하나로 끼니를 때울 때 비로소 행복감과 자유로움을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또 이런 구절도 나온다.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순간 내 삶이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다시 듣게 된다고 하였다.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 아주 어릴 때부터 ’여행‘ 자체가 꿈이었고,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물지 못하는 나쁜 습관이라 여겼던 것도 필자 만의 일이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을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생각하였다.

네덜란드가 꿈꾸던 나라라면 풍차가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이런저런 비슷한 이유로 여행을 떠났던 사람들의 여행기와 각종 정보를 담은 여행잡지의 수가 서적 판매의 극심한 불경기에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독특한 현상이다. 이러한 점에서 사람들이 일상으로부터 탈출하는 여행이 삶을 잘 유지하게 하는 거의 유일한 방편으로 자리 잡아가는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것이 젊은이들만의 현상일까? 아니다. 누구나의 작고 답답하게 여겨지는 일상생활 공간으로부터 잠시라도 나가고 싶은 소망이 있다. 당일치기 등산이나 다른 도시의 카페를 가는 일에 사람이 몰리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리라. 다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서 산다. 빡빡한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이다. 그래서인지 국제적인 여행 동향에서도 경제적인 상황과 관계없이 여행객 수는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자의 작가는 떠나기를 결행하면서 그것이 도전의 기회임을 직감하였고, 후자는 자신의 떠돈 경험이 그의 소설을 더 풍요롭게 하였다고 간접적으로 이야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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