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근원 <동화작가>

춥다. 밖에 나가면 절로 목을 움츠리게 된다. 그래도 발걸음은 가볍다. 성탄절이 점점 다가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우체국의 인기 많은 연하장은 일찍부터 동이 났다. 상점의 유리창 너머 성탄절 카드를 고르는 연인들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목 좋은 거리마다 구세군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다. 엄마 손 잡은 꼬마의 자선냄비에 성금 넣는 모습이 앙증맞기 그지없다.
12월이 되면 각 지자체마다 사랑의 온도탑을 세워 성금을 모으고 있다. 많은 액수의 성금을 낸 사람들의 모습이 언론매체에 소개되는가 하면 익명으로 성금을 넣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 안산시도 시청 앞에 사랑의 온도탑을 세워 지난 11월 26일 제막식을 가졌다. 내년 1월까지 10억 원을 목표액으로 정했다. 목표액의 1%인 1천만 원의 성금이 모금될 때마다 사랑의 온도탑 온도가 1도씩 올라간다.
사랑의 온도탑 앞에 서면 절로 가슴이 데워진다. 마치 커다란 질화로 옆에 있는 느낌이다. 이 사랑의 온도탑에 얼마나 많은 기부천사들이 다녀갔을까?
이 맘 때쯤이면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 중 하나가 얼굴 없는 기부천사에 대한 궁금증이다. 전국의 방방곡곡마다 이름을 밝히지 않고 기부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 안산시에도 많다. 이러한 기부천사들이 있어 암울한 이 사회가 따스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 사는 맛을 느끼게 해주고 있다.
가장 관심을 끌고 있는 기부천사는 전남 전주의 기부천사이다. 주인공은 해마다 성탄절 전후로 그림자처럼 나타나 기부를 하고 있다. 얼굴 없는 그림자 기부천사의 정체를 아직도 누구인지 모른다. 작년까지 무려 19년째 20여회에 걸친 기부를 하고 있다. 올해엔 그 기부천사가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기부금을 몰래 놓고 갈지 벌써부터 궁금증이 증폭되고 있다. 그 기부천사가 두고 간 성금 총액은 무려 6억834만660원에 달한다고 한다.
지난 해 그림자 기부천사의 전화를 받은 주민복지센터의 담당자의 말을 빌리면 용건만 간단하게 전한 뒤 전화를 끊어 감사의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수화기 속의 목소리를 추정, 40~50대의 중년 남성이 아닐까하는 짐작밖에 하지 못하고 있다. 주인공은 짐작 속의 남성이 아닐 수도 있다. 19년째 이어져 온 그림자 기부천사의 선행은 익명의 기부자를 늘게 하는 나비효과와 같은 천사효과까지 일으켰다. 
대구의 키다리 아저씨 부부도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이 부부가 익명으로 기부한 금액은 모두 9억6000여만 원이 된다고 한다. 한겨울 우리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주는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런 반면, 며칠 전 청와대의 전 대변인이 텔레비전 뉴스에 나타났다. 뜬금없이 투기 논란의 중심에 있던 문제의 건물을 매각한다는 것이었다. 매각된 건물의 차액을 기부한다는 이야기였다. 전 대변인은 이 건물로 인해 대변인 직에서 불명예스럽게 물러나고 말았다. 당사자인 본인은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러나 차액을 기부한다고 했을 때, 그림자 기부천사들의 모습이 절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소문 없이 기부를 하면 얼마나 좋게 보였을까? 다행히도 그 기부행위가 알게 모르게 입소문으로 퍼지면 불명예 퇴진의 오욕이 조금이라도 회복되지 않을까? 이 시점에서 기부 이야기를 꺼낸 것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내년 총선과의 의혹을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오이 밭에서는 신을 고쳐 신지 말라, 배 밭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이제 겨울도 한겨울로 들어서고 있다. 몸으로 느끼는 추위보다 가슴으로 느끼는 추위가 우리를 더 움츠러들게 만든다. 아직도 우리 주위엔 어려운 이웃들이 많다. 복지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독거노인, 기초 수급자, 저소득가정, 소년소녀 가장 등 소외계층들이 많다. 특히 겨울이 되면 생활비 부담이 높아지고 일자리가 부족해 소외계층에게 더 특별한 관심과 적극적인 보호가 필요하다. 
12월 9일 오전, 시청 앞 사랑의 온도탑 온도가 30도를 근접하고 있다. 사랑의 온도탑을 뒤로 하며 성금이 넘쳐 조기마감 소식을 들으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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