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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웃의 식탁
  • 안산신문
  • 승인 2020.01.08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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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민음사>

 과거에는 함께 어울리며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였으나 시대가 달라졌다. 타인과 어울리기보다는 자신만의 여가생활을 보내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혼족 문화’, ‘1인 가족’이라는 키워드가 우리에게 익숙해졌다. 이처럼 개인주의 문화의 확산으로 인해 1인 가구의 증가와 더불어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가 이곳저곳에서 만들어지고 심지어는 책으로 출간되기도 한다.
  “홍단희가 일컫는 ‘잠깐’이라는 말도 개인차가 얼마나 심한지, 누구에게든 부담 없게 들리는 잠깐이라는 순간도 모이고 뭉치면 그것이 삶에 어떤 크기와 무게로 다가오는지 요진은 모르지 않았다.” (12쪽)
  ‘집 안’은 ‘집 밖’과의 단절&#12539;분리된 곳으로 온전한 모습의 나를 마주할 수 있으며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사생활을 존중받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웃과의 만남은 ‘개인’의 시간을 투자하는 피로한 일이다. 소설 속의 홍단희가 일컫는 ‘잠깐’의 시간도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이웃 간의 소통 단절로 인한 ‘층간 소음’ 등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는 일이 이곳저곳에서 발생한다. 층간 소음이 적은 아파트를 고르는 꿀팁 등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네 이웃의 식탁>은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이라는 다소 파격적인 가구 형태를 통해 어쩌면 당연한 현 공동체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소설은 전은오와 서요진이 ‘꿈미래실험공동주택’에 신규 거주자로 입주함과 동시에 이야기가 시작된다. ‘꿈미래실험공동주택’은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인 저출산을 해결하고자 젊은 부부를 대상으로 마련된 공동주택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족을 제외한 3가구와 함께 살아간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는 관절과 같은 것이라 활액이 없이는 삐걱거리며…”(28쪽)
  소설 속의 한 문장이 이들 공동체 전체를 대변하고 현재 우리 사회 축소판을 보여준다. 새 입주자이자 남편인 전은오는 집에서 시율이를 돌보며 양육을 담당한다. 아내 서요진은 약국에서 일하며 가장의 역할을 한다. 남편이 집에 있고 아내가 밖에 나가는 객관적 사실 자체로 따라붙는 수많은 질문들이 불편하지만 익숙한 듯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이들 네 가구는 공동육아, 공동 카풀, 공동식사, 공동 분리수거 등 일상적인 측면에서조차 부딪히는 일이 많다.
  “아이를 위한다는 구실로 일상에서 가벼운 것부터 하나둘씩 무리수를 두다 결국 수치라는 걸 모르게 되고 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걸까…”(148쪽)
  공통점이라고는 다들 아이가 있는 것뿐인 사람들에게 중심 화제는 늘 공동육아의 측면이었고 충돌이 가장 잦은 부분이 되었다. 서로의 관심사와 문화향유도, 사회에 대한 관심 정도는 이들의 공동육아를 위해선 굳이 알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네 가구 중 가장 활발하고 섬세하게 공동체를 주도해가는 부녀회장 스타일 그 자체인 홍단희, 육아와 일을 병행하며 밤낮으로 마감에 시달려 공동의 규율을 어기며 살아가는 조효내, 겉으론 행복한 가정인 것 같으나 SNS에 의존하며 살았던 강교원. 이들의 삶은 잘못되지 않았다. 그저 이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선택한 최선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존재는 날마다 조금씩 밑그림으로 위치 지어지고 끝내는 지우개로 지워지더라도.”(67쪽)
  결국 이들 네 가구 중 세 가구는 정해진 입주조건을 지키지 못하고 공동주택을 떠나게 된다. 공동주택 사업이 시작된 본질과 목적이 모두 무용지물이 된 것이다. 남편, 아내, 아이들, 이웃들로 인해 묻혔던 그들의 존재가치가 다 드러나 공개되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의 미래와 꿈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위선 되고 허황된 출산장려책을 내놓은 국가는 출산을 그저 국민들의 머릿수 늘리기로 본 것이 아닐까. 그들이 생각한 맞춤, 양보, 유연한 사회적 합의는 아름답고 따뜻하게 포장된 공동체의 모습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 네 가족이 보여준 공동체의 모습은 현실 그대로를 보여준다. 이들 가족 모두에게는 사회적인 무엇인가가 묻어있다. 사회가 반영된, 그 사회가 낳은 사회적 결과가 아닐까.
  이들이 보여주는 삶의 모습은 암울한 우리 사회의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언제까지나 나‘혼자’의 삶은 불가능하다. 개인은 사회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고 낯선 사람과의 만남은 끊임없이 이뤄진다. 이에 따라 우리는 ‘소통’을 원하게 되었고 변화의 긍정적인 발판을 계속해서 만들어가고 있다. 이웃 주민과 함께하기 위한 소통의 창구가 늘어가고 있는 것이 그렇다. 네 이웃의 식탁, 먹방을 보며 홀로 식사하는 분위기가 옳은 사회일까? 독자의 시선에 맡긴다.

정수화 <중앙도서관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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