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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감시자
  • 안산신문
  • 승인 2020.01.08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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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중 <꿈의교회 담임목사>

며칠 전에 운전을 하다가 큰 사고가 날 뻔 했습니다. 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에 좁은 골목에는 횡단보도가 나있는데, 신호를 무시한 어느 누군가가 갑자기 튀어나왔기 때문입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급브레이크를 밟았고, 아마 그 사람도 무척이나 놀랐을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좁은 골목에 있는 건널목은 신호를 무시하고 건너기 일쑤입니다. 아무래도 보는 눈이 적으니까 방심하고 그냥 건너기가 쉬운 것입니다. 반면에 대로변에 있는 횡단보도는 신호를 잘 지켜서 건너는 사람이 많습니다. 보는 눈도 많을 뿐만 아니라, 혹여나 교통 지도 단속을 나온 경찰관에게 걸릴 수 있다는 생각에서일 것입니다.
  어떤 실험에서도 사람들의 극명한 반응을 볼 수 있었습니다.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무단횡단을 할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실험이었습니다. 5분이라는 일정 시간을 두고 무단횡단을 하는 사람들을 세어보니까 무려 81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정도라면 아무도 의식을 안 하고 아주 자연스럽게 무단횡단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잠시 후, 이와 반대되는 대조군 실험을 합니다. 어떤 남자가 “무단횡단에 대한 사회학적 조사 중”이라는 표지판을 들고 서 있게 한 뒤에 사람들의 반응을 살펴봤습니다. 그랬더니 사람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표지판을 들고 있든지 말든지 그저 내 갈 길을 가겠다’ 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횡단보도로 방향을 틀어 길을 건넌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누군가 나를 의식하고 있다’라는 차이에서 발생한 현상이었습니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디선가 나를 실험의 대상으로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은 똑같은 길을 걸어가는데도 어제와는 다르게 오늘은 올바른 길로 찾아가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감시자의 역할은 어떤 의미에서 조금 더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인간으로 개선시킬 수 있습니다. 누군가 나를 지켜보는 것이 어떤 상황에서나 모두 부정적이지는 않다는 말입니다.
  2020년 새해가 시작된 지도 벌써 며칠이 지났습니다. 해마다 연초에는 서로에게 이런 덕담을 주고받곤 합니다. “부디 올해는 계획과 목표가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굳게 먹은 마음이 사흘을 못 갈 정도로 사람의 마음이란 쉽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찌하겠습니까? 이렇게 흔들리는 갈대와 같이 연약한 것이 사람이라는 존재라면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애쓰고 발버둥 쳐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혹여나 작심삼일로 그친 목표가 있다면 다시 한 번 새롭게 도전해도 충분한 때입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내 도전을 가까운 사람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가까운 사람을 나의 감시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때때로 하기 싫은 생각이 들 때,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라는 사실만으로도 느슨하게 풀어진 것들을 다시 쪼여 멜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혹시나 나도 모르게 아무 의식 없이 가고 있을 때, 그 사람들이 나의 감시자가 되어서 어긋나게 가는 길을 인도해줄 것입니다.
  연초에 세우신 계획? 잘 진행되고 계십니까? 새해의 계획과 목표는 외부 환경의 조건이 좋다고 될 일이 아닙니다. 적당한 감시자를 만들어봅시다. 그 감시자에게 나를 자극시켜달라고 이야기해봅시다. 그 귀찮음이 나중에는 감사로 바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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