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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경제학
  • 안산신문
  • 승인 2020.01.1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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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 <안산제일복지재단 수석이사>

알렉산더 버트야니는 그의 저서 무관심의 시대에서 “인간은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한 명의 개인은 자신의 세계의 매일 아니 매초를 바꿀 수 있다. 때문에 인간은 누구나 세상에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내면을 바꾸는 것을 성찰이라고 한다면 환경을 바꾸는 것을 적응 또는 혁신이라고 한다. 왜 바꾸려고 하는 가? 살기위해서다. 인간은 삶이 평안하고 행복하길 간절하게 소망한다. 경제(經濟) 한자로 풀어보면 날經 건널濟이다. 베틀의 실을 가지런하게 정리하는 經은 그대로 질서이고 기준이다. 濟는 물을 건너는 모양이다. 기근과 가난 등에서 구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대로 웰빙이다. 결국 경제는 사회를 안정시키고 국민을 살리고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그 바탕에 생산. 분배. 소비의 사이클이 있는데 돈의 흐름이다. 돈의 흐름이 막힘없이 골고루 가정이나 기업, 국가에 원활하게 돌아갈 때 사회는 안정이 되고 국민은 행복해진다. 누군가가 흐름을 막고 독식을 하려고 할 때 사회는 격차와 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본래 경제학은 정치경제학으로 시작되었다. 정치가 곧 경제인것이다. 그러므로 정치를 잘한다는 것은 경제가 잘되게 하는 것이다. 물이 흐르는 곳을 내 또는 강이라고 하지만 돈이 흐르는 곳을 시장이라고 한다. 시장은 거래를 통하여 돈이 필요에 따라 흐르게 된다. 시장은 필요로 하는 수요와 필요를 충족시키는 공급이라는 시소에 의해 균형을 만들고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수요는 욕구의 전체 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욕구와 전혀 관계없는 수요가 있다. 죽음이다. 누가 죽는 것을 원하겠는가? 죽음을 피하고 싶는 것이 오히려 인간의 욕구이다. 그러나 죽음은 신의 영역이다. 누구도 거스릴수 없고 피할 수 없다. 그 때를 알 수 없는 불확실성이 100%이다. 당연한 일임에도 누구나 설마 나에게는 닥치지 않을 일처럼 생각하며 살아간다.
  죽음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경제적 거래로서 적절한 유산처리, 죽음에 이르는 질병에 대한 대응, 살아있는 동안의 얻고자 하는 즐거움 등에 보다 바람직한 금전적 지출을 어떻게 할것인지를 다루는 것이 죽음의 경제학이라고 KDI경제정보센터는 자료는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노령사회에 필요한 다양한 산업의 영역과 경제적 의사결정 과정의 확대가 불가피함을 제기하였다.

이것은 실물경제와 관련된 극히 합리적인 경제적 사고이다. 하지만 죽음의 경제학이란 다소 우울한 용어를 굳이 빌려쓰는 것은 단지 노령사회의 경제적 영향이란 카테고리를 벗어나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개인의 이기가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닌 개인의 욕심으로 다른 사람에게 불이익을 주고 불행하게 만드는 일은 어리석은 일이다. 노자는 인간의 세가지 즐거움(三樂)을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는 것이라고 했는데 정말 즐거울까? 더불어 잘먹고, 더불어 건강하고, 더불어 평안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즐거움이 아닐까?
  죽음은 인간에게 가장 확실한 과정이다. 때문에 삶의 과정이 행복해야 죽음도 행복하다. 100세까지 살 수 있다고 하지만 억만년의 시간의 흐름에 점하나 찍을 뿐이다. 지인의 장례식에 조문을 가느라 관례처럼 검은 옷에 검은 넥타이를 매고 갔는데 의외였다. 영정사진을 둘러싸고 있는 가지각색의 장미와 조문을 위한 꽃역시 빨간 장미였다. 입관사진을 보았는데 평소 고인 좋아하셨던 우아한 한복에 그대로 잠들 듯 누어계셨다. 뿐만 아니라 살아계신 동안 가족들과 직원들과 이웃들, 교회를 섬기시고 베푸셨던 일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지고 기억될 것이다.

더 긴 삶을 살지 못하셨지만 그 죽음을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한편, 당신의 죽음을 앞두고 500억을 당신의 모교인 서울대학교에 인공지능연구를 위해 기증하시고 작년 봄에 홀연히 가신 대덕전자의 김정식회장님을 회상한다. 생전에도 당신의 소유를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을 마련하라고 하셨던 분이다. 그래서 복지재단과 기술재단을 만드시고 지역사회와 학교, 학회, 사회복지시설에 아낌없이 후원하시면서도 드러내지 않으시고 엄하면서도 겸손하셨던 분이었다. 몸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지만 영원한 삶으로 사람들 속에서 수천 수만배의 결실을 맺을 것이다.
죽음의 경제학은 오히려 더 많은 생명을 살리는 경제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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