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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거짓말
  • 안산신문
  • 승인 2020.02.12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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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 / 문학과지성사>

작가 정이현의 <오늘의 거짓말>은 2004년부터 집필한 단편소설 열 편을 엮은 소설집이다. 작품들은 90년대를 관통한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90년대, 막 20대에 들어선 청춘들은 바로 위 선배들의 치열한 민주화 투쟁으로 정치적 안정과 더불어 문화적 풍요로움을 누린 세대다. 1972년생인 작가도 90년대 청춘으로 그녀의 작품은 심한 사회적 저항 없이 발랄하고 톡톡 튀는 매력이 있다. 하지만 거저 얻은 행운에 90년대 청춘들은 미안해했고 나름대로 자신들의 아픔과 고독을 공유하지 못했다. 어느 시대이건 불행한 사건은 있다. 그것으로부터 헤어 나오기까지 많은 아픔과 고독을 견뎌야 하는 것은 결국 각자의 몫으로 남는다.
  그런 의미에서 10편의 단편 중 2006년 현대문학상 수상작품인 「삼풍백화점」은 자전적 이야기로 작가에게는 의미 있는 소설이다. ‘삼풍백화점이 무너진 동시에 그 주변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춘을 보낸 나의 삶이 무너져 버린 것 같다’라는 작가의 고백은 그 사고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로서 절대적으로 공감이 간다.
  「삼풍백화점」의 주인공은 대학 졸업 후 특별한 직장 없이 지내다 우연히 집근처 삼풍백화점에서 일하고 있는 고교동창을 만나게 된다. 어느 날 그녀의 부탁으로 일일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주인공은 사소한 실수로 까다로운 사모님의 항의를 받게 되고 동창이 강남의 부유한 사모님을 상대해야만 하는 백화점 직원임을 깨닫는다. 그 일로 둘은 멀어지고 한참 후 삼풍백화점을 다시 찾은 그녀는 동창을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바로 그날 삼풍백화점은 무너진다. 사치와 향락에 찌는 대한민국의 민낯을 보여준 거라고 쓴 칼럼을 보고 신문사에 전화해서 그 안에 누가 있었는지 다 알고 있냐며 오열하는 모습은 참으로 안타깝고 씁쓸했다.
  「타인이 고독」의 주인공은 8년 연애하고 결혼 1년을 채우지 못한 채 이혼한다. 이혼 과정에서 금전적 문제도 책임져야할 아이 문제도 없어 타인의 눈에는 그저 참 쉬운 이별로 비춰졌다. 하지만 전처의 반려견 문제로 다투면서 담담히 받아들인 이혼이 사실은 상처투성이였다는 걸 보여주고 타인의 고독, 하지만 그것은 곧 나의 고독임을 작가는 말하고 있다.
  「어금니」에서 주인공은 오랫동안 미뤄온 치과 진료대기 중 대학생 아들의 교통사고 전화를 받는다. 동승자인 미성년 여학생은 즉사하고 아들은 경상이다. 더 큰 문제는 아들의 음주운전과 미성년 여학생과의 성매매 사실이다. 하지만 여학생의 할머니와 서둘러 합의하는 등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부는 모든 인맥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한다. 중상층의 사회적 지위가 있는 이들이 절대 양보할 수 없는 한 가지는 진실보다는 자기 자식 보호와 자신들의 이미지다. 하지만 절대로 타협할 수 없는 죄책감이 통증이 되어 어금니에 남는다.
  소설집의 제목이기도 한 「오늘의 거짓말」의 주인공은 인터넷 쇼핑몰에서 허위로 후기를 작성하여 올리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어느 날 층간 소음 때문에 윗집을 방문한 그녀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똑 닮은 노인이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럴 리가 없지만 그 노인이 실제로 박대통령인지 아닌지 의문을 품게 되고 무엇이 진실인지 잠시 헷갈린다. 거짓말 같은 진실. 더군다나 그 집에는 그녀가 아주 조용하다고 올린 러닝머신이 놓여 있는 걸 보게 된다.
  이밖에 「그 남자의 리허설 」 「비밀과외」 「위험한 독신녀」 「빛의 제국」 「어두워지기 전에」 도 흥미롭다.
  정이현의 소설은 재미있고 쉽게 읽힌다. 그러면서도 아픔과 위로가 함께 있다. 90년대 청춘을 관통한 이들과 서태지와 엑스세대가 무엇인지 알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전인숙 <중앙도서과 시민서평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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