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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종길의 여행이야기 <62>여행에서는 설렘이 있어야 한다.
  • 안산신문
  • 승인 2020.02.19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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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운사 앞쪽에 흐르는 개천을 따라 선운산으로 오르는 길은 걷기 편안하고 주변 경관도 수려하여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새로운 것을 만나는 것은 설레임이다. 해보지 않았고 가보지 않은 길을 간다는 것은 설레임이다.  - 김아람의 시 ‘설레임’ 중에서-
  
   여행에서는 설렘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 설렘은 두근거림이다. 누군가를 만나거나 무슨 일을 하거나 어디를 가려고 할 때의 두근거림은 약간의 걱정이 동반하기는 하지만 긍정적인 감정이 지배한다. 그래서 설렘은 삶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내가 일하는 곳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출근이 즐거워지고 내일이 또 기다려지는 것처럼. 어떤 여행이 사람을 설레게 할까? 보통 쉽게 갈 수 없는 특정 목적지이거나, 누군가가 이름난 호텔에 초청하였거나, 잘 모르는 낯선 여행지로 떠날 때 생기는 감정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누구와 가는가가 중요하다. 여기에다 누구도 쉽게 상상할 수 없는 엉뚱한 여행을 기획했을 때 설렘의 크기는 더 늘어난다. 이런 조건을 다 갖추어도 설레지 않을 수 있다. 어떤 때는 여행에 대한 기대가 설렘으로 바뀌어 느껴지기도 한다. 기대는 이성에 기반을 둔다면 설렘은 감성적이어서 다르다. 그러니까 설렘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다. 물론 설레지 않는다고 잘못된 여행이 아닌 것처럼, 설렌다고 반드시 성공적인 여행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그렇지만 여행 전에 특히 떠나기 전날 밤에 설렌다면 성공은 적어도 반 이상 보장된 것이리라.
   얼마 전 성인 남자 다섯 명이 여행을 갔었다. 다 5, 60대였다.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고교동창이나 고향 친구들이 떠나는 여행일 것이라는 상상을 하게 된다. 어떤 사람은 “술 좀 마시겠네.”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구성이다. 평소에 필자에게 형님 하는 한 아파트 단지에 사는 이웃이 슬픈 일이 있어 같이 이야길 나누다가 이심전심으로 “여행을 한번 합시다.” 하게 되었었다. 이 순간 ‘힐링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필자가 계획을 잡기로 하였다. 그런데 이웃들이 한 명 두 명 늘어나 며칠 만에 다섯이 되었다. 필자를 중심으로 생각하자면 서로 잘 아는 사람들이라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여행을 다닌 경험이 없는 사이였다. 그러니까 동네 사람 다섯이 여행하는 일이 갑자기 벌어진 것이었다. 여행도 구체적인 논의없이 즉흥적으로 결정되었고, 여행의 구성원도 의도된 바 없이 늘어난 것이었다. “그런데 왜 설레고 여행이 기다려지지?”
   고창으로 여행지를 잡았다. 우선 차분하고 깔끔한 곳이 많아 ‘힐링 여행지’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오는 여행으로 거리도 적당하였기 때문이었다. 함께 여행한 적이 없었기에 각자의 취향을 잘 몰라 편안한 여행을 지향하였다. 또 지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 많다는 점도 고려되었다. 그리곤 현장에서는 천천히 걸으면서 볼 수 있는 코스를 찾았다. 지도를 보고 숙소까지 가는 동선과 체류 시간까지 참작하였다. 다 기본적인 사항들이다. 선운산의 선운사를 첫 방문지로 정했다. 천년고찰의 고즈넉함과 걷기 좋은 길이 있어서다. 날씨가 따듯하니 잘 하면 천연기념물인 동백군락에서 이른 꽃을 볼 수도 있을 거라는 작은 기대도 했다. 고창이 풍천장어로 유명한 것은 바다와 연결된 자연하천 인천강이 있어서인데 선운사와는 지근거리에 있다. 여기서 점심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책마을 해리에 책과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일까지 다 체험할 수 있는 시설과 자료를 갖추고 있었다. 재미있는 ‘책감옥’까지 있었다.

    다음 목적지로는 무장 읍성을 골랐다. 일반 관광객이 잘 가지 않는 곳이다. 한때 번성했던 읍내였지만 오래되고 크게 훼손된 옛 성터와 쇠락한 주변 마을이 남아 ‘쓸쓸함’과 역사적 ‘무상함’까지 느낄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곳 성은 동학농민혁명군이 무혈입성한 곳이고, 혁명이 시작을 알리는 기포지도 무장면이었다. 성벽을 복원 중이거나 마쳤다면 성벽 위로 걸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다음은 해리면에 있는 ‘책마을 해리’였다. 폐교 나성초등학교를 아름다운 도서관과 박물관 등 아기자기한 책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곳이어서 선택했다. 작은 출판사와 독립서점 그리고 게스트하우스까지 갖추었으니 책 여행을 떠나는 이들에겐 이상적인 장소였다. 잠시라도 동심으로 돌아가 순수한 마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까운 곳에 긴 모래 해안은 가진 명사십리까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강한 서풍을 마주하고 해안 산책도 할 수 있으니 겨울 바다까지 맛볼 수 있었다.
   여기까지 다니다 보면 시장할 터이니 해리면 남쪽에 있는 상하면에는 구시포항이라는 작은 포구의 식당가를 찾기로 했다. 본디 주꾸미로 잘 알려진 곳이다. 제철은 아니지만, 혹시 하는 기대가 있었고, 아니면 다른 해산물 먹거리들이 많을 거라는 확신을 했다. 이곳에서 약 5분 거리에 있는 상하농원을 숙소로 예약하였다. 아주 깔끔한 침구가 있어 모처럼 많은 걸음걸이를 한 여행객이 평화롭게 잠을 청하기에는 이상적이었고, 건강한 식재료로 만든 아침 식사까지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다. 또한, 농원 내에는 동물농장과 각종 체험시설 등이 있어 아침 산책으로는 최고의 장소였다. 그리고 오전 여행지로는 고인돌 유적지를 꼽았다. 운곡습지까지 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한 곳만을 고르라면 단연 고인돌이었다. 고인돌 유적지 입구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이 분포한 언덕길까지 오르내리는 것도 도시인들에게는 꽤 긴 거리라 판단했다.
   떠나기 이틀 전에 동네 카페에서 만났다. 많이 걸을 테니 편안한 신발과 외투를 주문하였고 갈 때는 선운사 나들목에서 내리고 올 때는 고창에서 서해안고속도로 타자는 계획까지 설명하였다. 그러자 일행 중 한 명이 설렌다고 하였다. 그러자 모두 “저도 저도” 하였다. 사실 필자도 여행계획을 짜는 동안 내내 설ㅤㄹㅔㅆ다. 그러니 의기투합이 자연스럽게 되었고 나머지는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다분히 즉흥적이고 조금은 낯선 사람들과 무작정 떠나지만 모두 선한 마음으로 격이 없이 함께한다는 점에서 모처럼 두근거림을 느꼈다고 하였다. 고창에서는 어땠는지 궁금한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하면 “내내 행복했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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